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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하이디 Jan 05. 2024

어쩌다, 술


남편은 어제와 그저께 쉬었으니 오늘 저녁에는 틀림없이 술을 마실 것이다. 남편이 가장 좋아하는건 술이다. 거의 이틀에 한번씩은 술을 마신다. 소주 한병과 맥주 두캔이 그의 정량이다.


맥주 한병을 여섯식구가 나눠마시고 모두  취해서 일렬로 누워야하는 집안에서 살았던 나에게 술 잘하는 남편은 낯설면서도 신기했다. 뭣 모르던 젊은시절에는 남자라면 술도 좀 마실줄 알고 담배도 피울줄 알아야 한다고 생각했다. 그래서 술을 잘마시는 남편이 싫지 않았고, 짧았던 연애기간에도 우리는 만나면 주로 함께 술을 마셨다. 하지만 그의 술사랑이 결혼생활내내 나를 얼마나 외롭게 만드는지는 결혼 후 한달도 채 안되어서 알게 되었다.


맞벌이였던 신혼시절, 우리는 일주일을 서로 바쁘게 지내고 주말저녁에는 늘 집에서 삼겹살에 소주를 마셨다. 2시간 정도 술을 마시고나면 남편은 일찍 침대에 누웠다. 물론 혼자서. 나는 주방과의 경계가 모호한 좁은 거실에 앉아 혼자 TV를 보다가 밤늦게 잠자리에 들면 남편은 그제서야 잠이 깨서 거실로 나왔다. 그렇게 신혼의 주말저녁을 우리는 한집에서 각자 보냈다.


© thecreativv, 출처 Unsplash



남편은 일주일 중에서 그 주말저녁이 제일 편안하고 행복한 시간이었다고 회상하지만, 저녁밥상을 치우고 이른 밤 혼자서 멀뚱히 TV앞에 앉아있었던 새댁은 혼자 있을 때의 외로움보다 함께 있을 때의 외로움이 훨씬 크다는걸 그때 처음 알았다.


남편은 평소에 말이 별로 없다. 아니 말하는 걸 불편해한다. 하고싶은 말을 마음에 담아두고서 하루를 못넘기는 나는 남편의 마음속 얘기들을 들으려 끊임없이 (주고받는) 대화를 시도했지만 그의 입은 끝까지 열리지 않았다. 내가 대화를 하려고하면 그 자리를 피하고 싶어했고, 마지못해 내 얘기를 다 듣고 나서도 "음, 알았어."하는 한마디 뿐 자신의 얘기는 꺼내놓지 않았다.


그때나 지금이나 그런 남편과 그나마 이런저런 얘기라도 나눌 수 있는건 술을 마실 때 뿐이다. 적당히 취기가 오르면 직장생활 이야기이며 가족들 이야기, 친구들 이야기, 또 기분이 좋을 때는 가벼운 농담도 주고 받는다. 하지만 그게 전부다. 우리 부부가 이대로 괜찮은건지, 내 마음을 이야기 하고 그의 마음을 알려고 들면 그순간부터 남편은 입을 닫아버린다. 그래서 늘 기분좋게 시작한 술자리는 번번히 막막함과 어색한 분위기만 남기고 끝나버린다.


낯선 나라의 좁은 기숙사에서 남편에 대한 서운함과 외로움이 차올라 혼자서 와인 한병을 다 비우고, 빈속에 들이부은 술을 고스란히 다시 게워낼 동안 끝내 한번도 열리지 않던 방문을 보면서 술은 전적으로 그이만을 위한 일방통행로임을 깨달았다.


그럼에도 나는 남편과 술을 마신다. 술에 취해 흐트러지는 모습이 싫어 남편이 술 마시는걸 싫어하면서도, 그와의 술자리가 번번히 허무함과 막막함만 남기고 끝나버리는데도, 그나마 유일하게 함께 하는 것이 술 뿐이기에 또 술자리에 마주앉는다. 어쩌면 술을 마시며 행복해 하는 남편의 모습을 보면서 우리 부부 사이에서 내가 느끼는 위기감을 덜어내고 있는지도 모르겠다.


그렇게 나는 술 때문에 헤어지고 싶으면서도 술 때문에 여태 헤어지지 않고 살고 있다. 어쩌다보니 술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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