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댁에 가는 기차 안이다. 일주일 차이로 시부모님 두분의 생신이 나란히 있어서 내려가는 길이다. 남편이 시댁 근처 가까운 곳에 펜션을 예약했단다. 몇년전 부부싸움을 크게 하면서 남편이 각자 알아서 살자고 말한 후부터 남편은 자기 부모님에 관한 일을 스스로 챙기려고 한다. 사실 말은 각자 챙기자고 하지만, 막내 며느리인 내가 어쩌다보니 집안의 유일한 며느리가 되어버려 거의 일을 혼자서 떠맡아 하고 있다.
하지만 남편은 내부모님에 대해서는 자신의 말에 확실히 책임을 지고 있는 것 같다. 이제까지도 친정 문제에 있어서는 남편의 역할이 그리 크지 않았지만 그 이후로는 더 관심을 갖지 않고 있다. 그렇게 이번 시부모님 생신에도 남편은 나에게 상의없이 펜션을 예약하고 일방적으로 통보를 했다. 그리고 그는 이틀전에 부모님댁에 먼저 내려가고 나는 기차로 혼자 내려가고있다. 남편이 알아서 부모님을 챙겨주니 한편으로는 편하기도 하고 기차를 타고 가는 것도 혼자서 여행하는 기분이 들어 나쁘지 않다.
시댁은 내가 태어나서 가 본 곳 중 가장 멀리 있는 진짜 시골집이었다. 지금은 새로운 길이 뚫려 세시간반 정도면 갈 수 있지만, 처음 결혼해서 갈 때는 고속버스를 타고 가서 시외버스로 갈아타고 다시 택시를 타고 들어가야하는 멀고도 먼 길이었다. 어쩌면 오래 걸리는 시간보다도 적응하기 힘든 시골집의 불편함과 그보다 더 힘든 시어머니의 끊임없는 잔소리 때문에 시댁 가는 길이 더 멀고 무겁게 느껴졌는지도 모르겠다.
이번에는 불편한 시골집으로 가는 것도 아니니 놀러가는 기분으로 다녀와야지 했는데도 역시나 며칠전부터 기분이 가라앉았다. 결혼한지 28년이나 되었으니 이제는 내집 네집이 따로 없어질 만도 한데 여전히 시댁으로 가는 발걸음은 무겁기만 하다.
결혼생활 내내 시댁은 남편의 아킬레스건이었다. 도시에 사시는 부모님과 형제들 모두 대학을 나와 번듯한 직장에 다니는 처가식구들과 비교해서, 시골에서 농사를 지으시는 시부모님과 형편이 그리 넉넉치 못한 형제들은 그에게 자격지심을 가지게 했고, 나는 이유없이 죄인이 되어 늘 그의 눈치를 봐야 했다.
남편은 집안에서 유일하게 성공한 자랑스런 아들이자 형제였기에 그에 대한 식구들의 관심과 기대는 그에게뿐만 아니라 나에게도 부담이 되었다. 물론 시댁식구 누구도 우리에게 대놓고 기대를 내비치거나 일부러 부담을 지우려고 하지는 않았다. 오히려 부모님은 행여라도 우리가 부담을 느낄까봐 늘 노심초사 하셨지만, 막내 며느리이면서도 우여곡절 끝에 외며느리가 되어버린 나는 어쩔 수 없이 스스로 부담을 가질 수밖에 없었다.
남편은 시댁에 갈 때가 되면 항상 예민해져 있어서 나는 시댁에 대해 대부분의 며느리들이 느끼는 불편함과 부담감을 표현하는 건 꿈도 꾸지 못했다. 시댁 방문을 앞두고는 그렇잖아도 마음이 불편한데 예민해진 남편의 기분까지 신경써야 하니 무거운 마음이 얼굴에 드러나고 그런 나를 보는 남편은 내가 시댁을 싫어하는 것으로 오해해서 나에게 더 냉랭해졌다.
마음을 열지 않는 남편과 다르게 나는 점점 시댁에 적응해갔다. 한번은 내 노력을 인정해주지 않는 남편이 답답하고 원망스러워서 시부모님께 하소연을 하고는 먹지도 못하는 술을 마시고 취해 쓰러진 적이 있었다. 그때 나를 측은하게 보시며 말없이 머리를 쓸어주시던 어머님의 손길에서 이제는 남편과 상관없이 시부모님과 끊어낼 수 없는 정이 쌓여가고 있음을 깨달았다.
기차가 시골역에 도착했다. 자그마한 대합실 출입문 안쪽에서 나를 기다리고 서있는 남편과 아버님이 보였다. 오는 내내 곱씹었던 남편에 대한 서운함이 두 사람을 보는 순간 어느새 반가움으로 바뀌었다. 양팔을 위로 들어 크게 흔들며 아버님께로 뛰어가 안아드렸다. 그런 나를 보는 남편의 얼굴도 환하게 밝아졌다. 남편의 마음을 얻기 위해 시부모님에게 다소 과장되게 반가움을 표현했던 것이 이제는 점점 진짜 마음이 되어가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