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터라켄의 일정을 하루 더 늘린 덕분에 알프스산을 충분히 즐긴 것 같은데도 막상 떠나려니 아쉬움이 남았다. 내 눈 앞의 그림같은 풍경을 언제 또 볼 수 있으려나 하는 마음에 주위를 둘러보며 한번 더 눈과 마음에 담았다. 그러고 보면 런던도 그랬고 파리도 그랬고 여기 인터라켄에서도, 가는 곳마다 이곳을 다시 올 수 있을까 하는 마음이 들어 작은 것 하나도 허투루 넘길 수 없었다. 아이 때문에 화가 나다가도 이 귀한 시간을 낭비할 수 없다는 마음에 참고 넘기곤 했었다.
하이텔베르크로 떠나는 날 아침, 일찌감치 채비를 해서 인터라켄 서역으로 나왔다. 어제 지인들에게 줄 선물을 사려고 했었는데, 아이가 아픈 바람에 사지를 못해서 기념품 가게를 둘러볼 생각이었다. 물가가 비싸도 너무 비싼 스위스에서 기념품을 사는게 잘하는 일인지는 모르겠지만, 가장 마음에 들었던 곳에서 뭔가 기념이 될 만한 것을 나에게도 지인들에게도 꼭 선물하고 싶었다.
사실 나야 직접 왔으니까 'SWITZERLAND'나 'INTERLAKEN'이 박혀있는 기념품을 가지고 싶지만, 지인들에게는 별로 의미가 없을 것 같아 실용적인 선물을 찾아보았다. 이것도 아니고 저것도 별로고, 가격이 적당하면서 마음에 쏙 드는 선물을 찾기가 어려웠다. 그러다가 발견한 것이 케이블카 위에서 보았던 마을의 풍경과 'SWITZERLAND'라는 글씨가 예쁘게 수 놓아진 주방 타월이었다.
그런데 가격이 무려 12스위스 프랑, 우리 돈으로 거의 이만원에 가까웠다. 집에서 쓰던 수건을 반으로 잘라서 주방 타월로 쓰고 있는 내게는 참 사치스러운 물건이었다. 하지만 여행와서 한가지 좋은(?) 점이라면 돈의 단위에 대한 개념이 없어진다는 사실! 12프랑이 머리속에서 금방 이만원으로 바뀌지 않는다는 것이다. 그래서 언니, 동생, 친구, 그리고 내가 쓸 것까지 4개를 샀다. 주방에 걸어놓으면 볼 때마다 알프스산의 그림같은 풍경이 떠오르겠지? 생각만 해도 참 좋다.
바젤로 가는 기차를 기다리며 역 앞에서 잠시 앉아 쉬었다. 빅맥 지수로 그 나라의 물가수준을 알 수 있다는데, 마침 근처에 맥도날드가 보여 아이가 먹고 싶어하는 감자튀김을 사러갔다. 빅맥 가격은 확인하지 못하고 감자튀김만 한개 포장했는데, 가격이 무려 5스위스 프랑(우리 돈으로 7000원), 케찹값은 별도로 1000원 정도였다. 역시 비싸긴 비쌌다.
기차를 타고 창밖으로 보이는 아름다운 튠호수의 풍경을 마지막으로 눈에 담으며 알프스를 떠났다.
안녕~ 알프스! 잘있어라~ 하이디!
하이델베르크로 가려면 바젤에서 기차를 갈아타고 만하임에서 또 한번 갈아타야 했다. 바젤역 자동발권기에서 표를 구입하려고 하니 자꾸만 창구로 가라는 메세지가 나왔다. 나중에 보니 국경을 넘어가는 거라서 그런지 기차표를 사려면 여권을 보여줘야 했다.
여행을 하는동안 제 시간에 점심을 먹은 적이 거의 없는 것 같다. 아침을 든든하게 먹고 하루종일 다니다 보면 점심은 번번이 거르고 이른 저녁을 먹게 되었다. 그 덕분에 여행와서 살이 좀 빠진 것도 같은데 아마도 기분 탓이겠지? 그렇게 쉽게 빠질 살이 아니다. 딸내미도 처음에는 아침을 챙겨먹는 걸 부담스러워 하더니 며칠 지나고부터는 주는대로 꼬박꼬박 잘 먹었다.
이번에도 기차타고 가는 동안 점심을 거르게 될 것 같아 간단하게 먹을거리를 사서 기차에 올랐다. 이번에 느낀거지만 기차안에서의 먹거리로는 과일이 단연코 최고였다. 과일을 썰어서 컵에 담아 파는데 다소 비싸긴 했지만, 깔깔한 입에 먹기에도 좋고 소화도 부담없고 여러모로 좋았다.
유럽여행을 와서 기차를 정말 원없이 타보는 것 같다. 비슷한듯 하면서도 제각각의 색깔이 있는 여러나라들을 기차를 타고 넘나들 수 있다는 사실이 참 부럽다. 기차를 타고 가는 동안에 여행기를 쓰고 사진을 정리하다 보면 어느새 다른 나라에 도착해 있었다. 그 시간이 전혀 지루하지 않고 오히려 좋았다. 그렇게 우리는 만하임에 도착했다.
하이텔베르크로 가는 기차를 갈아타려는데 바젤에서 탄 기차가 연착되어 갈아타야 하는 기차를 놓쳐버렸다. 기차값이 한두푼도 아니고 큰일이다 싶어 어떻게 따져야 하나, 영어문장을 미리 번역기로 돌려서 달달 외우며 안내센터로 갔다. 그런데 돌아온 답변은 허무하게도 그냥 다음 차를 타면 된단다. 괜히 긴장했다. 알고보니 만하임에서 하이델베르크까지 가는 기차는 S-Bahn, 우리의 경의중앙선처럼 근교 작은 도시를 다니는 전철같은 것으로 꼭 정해진 시간에만 탈 수 있는건 아니었다.
그렇게 우리는 하이델베르크에 도착했다. 하이델베르크는 독일 도시들 중에서 꼭 한번 가보고 싶었던 도시였다. 고등학교에 들어가서 처음으로 제2외국어로 독일어를 배울 때, 예쁜 목소리를 가지신 독일어 선생님이 하이델베르크에 대해 얘기해 주시며 '로렐라이 언덕'을 불러주셨었다. 그 때의 기억 때문에 40년 가까이 지난 지금까지도 내 마음속에 로망으로 남아있는 도시가 바로 하이델베르크였다.
하이델베르크에 들어서니 일단 마음이 편안해졌다. 독일에 잠시 살았었고, 조금이나마 독일어를 할 수 있다는 사실이 긴장감을 덜어주었다. 철학의 도시 하이델베르크를 빨리 돌아보고 싶었다. 호텔에 짐을 풀고 저녁을 먹으러 밖으로 나왔다. 피곤하기도 하고 뭘 먹어야 할지도 잘 모르겠어서 근처를 배회하다가 호텔 바로 옆에 있는 독일식 간이식당인 임비스로 갔다.
간단하게 소세지와 감자튀김을 주문하는데 점원이 영어를 전혀 할 줄 몰랐다. 세트로 살지 단품으로 살 지, 케찹을 뿌릴 지 마요네즈를 뿌릴 지, 먹고 갈 지 포장해 갈 지를 얘기하느라 주문이 길어졌다. 영어와 독일어를 섞어가며 한참을 얘기하는데도 젊은 청년들이 싫어하는 기색없이 계속 웃는 얼굴이었다. 기분이 좋아졌다. 그렇잖아도 마음 편한 독일이 더 마음에 들었다. 팁이라도 좀 주고 싶었지만 카드로 계산할 떄는 어떻게 팁을 주어야 하는지 잘 몰라서 머뭇거리다가 그냥 나왔다. 그 청년들이 하는 가게가 오래도록 번창했으면 하고 마음속으로 빌었다.
하이델베르크에서는 1박2일의 짧은 일정이라서 피곤한데도 불구하고 야경을 보기 위해 밖으로 나갔다. 여행 블로그에서 보았던 멋진 야경은 아니었지만, 네카어강에 잔잔하게 비치는 건넌 마을의 불빛이 참 예뻤다. 근사한 야경은 아마도 하이델베르크성 근처인 것 같은데, 밤길에 걸어가기에는 좀 먼 거리라서 근처만 구경하고 숙소로 돌아왔다.
여고시절부터 마음에 품어왔던 아름다운 도시 하이델베르크에 드디어 왔다. 내 안의 꿈을 하나씩 이루어 나가고 있는 지금 이 순간들이 너무나 소중하게 느껴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