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이델베르크에서 뮌헨으로 오는 기차안에서 큰아이 유치원 친구 엄마인 A에게 메일을 보냈다. 물론 뮌헨에 사는 독일사람이다. 22년전 뮌헨을 떠나면서 교환했던 이메일 주소로 그동안 두어번 메일을 주고받았었다. 항상 메일의 말미에는 뮌헨에 가면 꼭 한번 만나자는 얘기를 빼놓지 않았지만, 사실 진짜 만날 수 있을 거라고는 생각하지 못했었다. 그런데 정말로 오늘 만나기로 했다. 어쩌면 뮌헨 일정중에서 가장 긴장되고 설레는 일인 것 같다.
약속시간과 장소를 정하는데 지금도 예전의 그 집에서 아직 살고 있다면서 집으로 오라고 했다. 한국에서 미리 준비해 온 선물(한복 와인커버)과 어제 산 와인 두병을 들고 갔다. 예전에도 한번 놀러가 본 적이 있어 동네와 집을 쉽게 찾았다. 벨을 누르자 문을 열어주어 계단을 올라가는데 몇 층이었는지가 기억나지 않았다. 문 앞에 붙은 이름을 하나씩 확인하며 윗층으로 올라가는데 A가 문밖에 마중을 나와 있었다.
22년만에 만났지만, A는 예전 모습 그대로였다. 얼굴에 주름은 좀 늘어나 있었지만, 예전의 편안하고 인자한 미소는 그대로였다. 서양식으로 인사하려던 생각은 아니었는데 보자마자 너무나 반가워 얼싸 안았다. 정말 반갑고 감격스러웠다.
큰애가 다녔던 유치원은 학부모들이 자치적으로 운영하는 사립 유치원으로 엄마가 해야할 일이 유독 많았다. 돌아가면서 반 아이들의 간식을 준비해야 했고, 한달에 한번씩은 밤 늦게까지 이어지는 학부모회의에 참석해야 했고, 여름마다 열리는 썸머 페스타를 위해서 음식을 준비하기도 했었다. 말도 서툴고 의지할 사람도 없을 때 A는 나에게 가까이 다가와 준 사람이었다.
내가 먼저 우리 집에 초대를 했고, 뒤 이어 그 집에도 초대를 받아서 갔었다. 간혹 외국인들에게 비우호적인 독일 사람들도 있었지만, A는 우리를 편견없이 대해줬고 한국문화에 대해서도 관심을 보였었다. 한국으로 돌아오기 전에는 A의 식구들 이름을 한글로 써주었더니 무척 신기해했었다.
독일어도 다 잊어버렸고 영어도 잘 못하는데 무작정 A를 만나기로 하고나서는 걱정이 이만저만이 아니었다. 막상 만나면 무슨 얘기를 어떻게 나누어야 할 지 날짜가 다가올수록 걱정이 커졌었다. 그런데 예전과 하나도 변하지 않은 그 편안한 미소를 보는 순간 모든 걱정은 사라지고 그저 반갑고 좋기만 했다.
A는 우리를 위해서 쿠켄을 구워놓았다며 커피와 함께 내놓았다. 맛있었지만 얘기를 나누느라 쿠켄의 맛은 사실 제대로 느끼지 못했다. 아니 솔직히 말하자면 독일어를 알아들으려고 온 신경을 곤두세우느라 쿠켄 맛을 느낄 겨를이 없었다.
말도 잘 안통할텐데 무슨 얘기를 나눌 수 있을까 했던 걱정은 괜한 것이었다. 우리는 아이들 얘기, 부모님 얘기, 심지어 연금이나 출산률 등 사회문제까지 쉬지않고 참 많은 얘기를 나누었다. 물론 반은 알아듣고, 반은 눈치로 이해하는 상황이었지만 22년만에 만나서도 할 얘기가 많은게 너무 신기하고 재미있었다.
이틀 전 지인들을 만나는 걸 피곤해 했던 딸내미는 같이 가서 인사만 하게 하고는 먼저 가게 했다. 재택근무 중이던 A의 남편과도 인사를 나누었다. 역시나 별로 변하지 않은 모습이 너무 반가웠다. 아이의 친구와 아빠는 저녁에 다시 만나기로 하고 A와 산책을 나갔다.
두 세시간 정도 만나고 헤어질거라 예상했는데, A는 나와 저녁까지 함께 시간을 보낼 생각이었던 모양이었다. 평소 자신이 좋아해서 자주 걷는 길이 있다며 나를 데리고 갔는데, 강 옆으로 나 있는 숲길이 정말 좋았다. 나도 A도 똑같이 걷는 걸 좋아하는 걸 보면 두사람이 취향이 비슷해서 예전에도 다른 사람들보다 더 친하게 지낼 수 있었던게 아니었나 하는 생각이 들었다.
그런데 역시나 문제는 의사소통! 내가 실제로 알아듣는 것에 비해 리액션을 너무 잘했는지, A는 말이 점점 빨라지고 대화내용도 심오해져 갔다. 고개를 끄덕끄덕 하다가 난데없이 질문이 날아오면 난감해지는 상황이 몇 번 반복되었다. 머리가 아프기 시작했다. 게다가 그들은 나처럼 시간에 맞춰 식사를 하지 않는지, 오전에 쿠켄을 조금 먹고는 오후 4시가넘도록 식사를 할 생각을 하지 않았다.
배는 고프고 머리는 아프고 슬슬 힘들어지기 시작했다. 집안에서는 그래도 집중하면 조금 들리던 독일어가 밖에 나오니 집중이 안되어 잘 들리지 않았다. 그렇게 한참을 걸어서 영국정원의 비어가르텐에 도착했다. 뮌헨을 떠난 후 가장 그리웠던 곳인 비어가르텐을 제대로 즐길 수 없었다. 음식을 주문해서 서로 나눠 먹을거라 생각해서 달랑 소세지 세개만 골랐는데, 각자 자기가 고른 것만 먹는 것이었던 모양이었다. 그렇게 나는 하루종일 굶고, A가 닭 반마리와 감자샐러드 한접시를 다 먹는동안 소세지 세개만 먹었다. 맥주도 없이...
조금 지나니 A의 남편과 큰애 친구가 일을 마치고 합류했다. 22년만에 보는 아이는 어느새 청년(아저씨?)이 되어 있었다. 어렸을 때의 얼굴에 수염이 나 있었다. 신기하기도 하고 우습기도 하고, 무엇보다 너무 반가웠다. A와는 쉬지않고 얘기를 나누었는데 막상 여럿이 모이니 딱히 할 얘기가 없었다. 더구나 오늘이 A의 휴가 마지막날이라고 하고, 아이도 내일 일찍 암스테르담으로 일하러 가야한다고 해서 눈치껏 일어섰다.
헤어지면서 몇번을 안고 또 안으며 아쉬운 작별인사를 나누었다. 한국에서 꼭 다시 만나자고 말했지만, 정말 또 만날 수 있을까 하는 마음이 들었다. 그래서 이번의 만남이 너무나 소중하고 감사했다. 뮌헨에 내가 좋아하는 사람들이 건강하게 잘 살고 있다는 생각을 하니 마음이 흐뭇했다. 뮌헨이 더 친근하고 특별하게 느껴졌다. 더불어 나를 반겨주는 사람들을 보니 내가 그래도 잘 살았었구나 하는 마음도 들어 뭉클했다. 그들이 모두 이곳에서 아주 오래도록 행복하게 살았으면 좋겠다.
하루종일 혼자서 놀았던 딸내미를 만나 함께 숙소로 돌아왔다. 기분이 좋아서 자꾸 히죽히죽 웃는 나를 보며 딸내미도 따라 웃었다. 딸내미는 지금 내 마음이 얼마나 벅차오르는지 알까? 사람한테서 받는 위로가 얼마나 큰 지를 알까?
A도 나와 같은 마음이었을까? 오늘 나를 다시 만난 소감이 어땠는지 궁금하다. 혹시 말을 잘 못알아들어서 내가 실수를 한 건 없었을까? 말도 다르고 문화도 달라 모든게 조심스럽긴 하지만, 그래도 마음은 서로 같았을 거라고 믿는다. 나를 기억해주고 반겨주는 사람들을 위해서 나도 더 좋은 사람이 되어야겠다. 지금 내 마음이 몽실몽실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