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와일드 스리랑카] 뚝뚝 타고 스리랑카 일주, 3,375km 아루감베이
첫 번째 엘라 여행을 마쳤을 때는 택시를 타고 우다왈라웨를 거쳐 남부 해안 도시 미리사로 갔었다. 이번에는 뚝뚝을 운전해서 남동부 모서리에 있는 아루감베이로 가기로 했다. 이곳에서부터 남부 해안가를 따라 다시 콜롬보까지 갈 계획을 세웠다.
엘라를 벗어나기 위해 내리막 커브 길을 달렸다. 중부 고산지대를 벗어나 뜨겁고 넓은 평원 속으로 향하고 있다. 라트나푸라, 립톤싯(하푸탈레), 누와라엘리야, 엘라 4개 지역을 거쳤을 뿐인데 지난 시간이 참 길게 느껴졌다. 생각할 거리가 많은 상징적인 곳과 생경하고 고된 경험이 조금씩 몸을 무겁게 했다. 뚝뚝이 말썽을 일으켜 마음도 졸였다. 게다가 추운 날씨는 사람을 더 웅크리게 만들었다.
하지만 시간이 지나면 그중에 좋은 것만 남는다. 여행이 끝나면 좋았던 것에는 무게가 생긴다. 천천히 가라앉아 지난 경험 위에 낙엽처럼 쌓인다. 무게를 갖지 못한 것은 생각보다 쉽게 휘발되어 사라지고 만다. 그래서 몸의 여행은 집으로 돌아올 때 끝나지만, 여행자의 여행은 여행을 복기할 때 비로소 마칠 수 있다.
이런저런 상념에 사로잡혀 단숨에 1,000m에서 100m 저지대로 내려왔다. 평원 지역인 웰라와야(Wellawaya)에 이르자 반듯한 사거리가 나타났다. 뜨거운 태양이 간밤의 이슬에게 입김을 불었다. 도롯가 옆 짙은 가로수는 물기를 털고 차츰 연한 옷으로 갈아입었다. 그리 오랜 일도 아닌데 보송보송한 공기가 반가웠다. 해가 정수리 위로 올라가면 숨이 턱턱 막히겠지만 일단 가슴을 쭉 내밀고 어깨를 폈다. 햇볕을 흡수해 다시 바스락거리고 싶었다. 지평선까지 곧게 뻗은 도로 주변도 시야가 트였다. 논일하는 농부와 앞서가는 버스가 보였다. 이따금 새 떼가 뚝뚝을 추월했고 소 떼가 똥 냄새를 풍겼다. 이렇게 새로운 것이 사뭇 이전과 다르게 와 닿을 때면 오늘 아침 일도 더 빨리 옛일이 되어버린다. 그래도 나는 다가올 일보다 낙엽처럼 쌓인 추억이 더 귀하고 가여워서 자주 꺼내 쓰곤 했다.
엘라에서 아루감베이까지 거리는 140km. 뚝뚝의 1일 권장 이동 거리인 100km를 훌쩍 넘는다. 뚝뚝에 무리가 가지 않도록 천천히 달리기로 했다. 2시간 넘게 달려 절반쯤 왔을 때 모나라갈라(Monaragala) 지역에 있는 여왕의 석조 연못(Galabedda Biso Pond)이 나타났다. 후기로 미루어 봤을 때는 스리랑카의 고대 문화를 유추할 수 있는 가치 있는 유적이었다. 하지만 교통표지판보다도 작고 낡은 이정표 하나만 덩그러니 놓여 있었다. 여기에 오겠다고 미리 작정하지 않았다면 분명히 놓쳤을 것이다. 이곳에 오게 된 것도 R의 세심한 관찰력 덕분이었다. 목적지인 아루감베이에서 해야할 일, 가보고 싶은 곳을 알아보는 것만 해도 벅찬데 R은 어떻게 경로 중간에 놓인 작은 유적을 발견했을까. R의 관심은 뚝뚝 로드트립의 이점을 극대화시켜 주었다. 우리는 잠시 뚝뚝을 멈추고 여왕의 석조 연못으로 갔다. 길은 길게 자란 잡초로 가려 있어 가장자리로 아슬아슬 걸었다. 모습을 드러낸 연못은 초라하지 않았다. 이런 유적이 너무 많아서 상대적으로 푸대접하는 걸까. 그런 게 아니라면 이 길을 지나는 외국인 여행자를 위해서라도 조금 더 대우해주면 좋을 것 같았다.
여왕의 석조 연못이 언제 만들어졌는지 정확한 시점은 알 수 없지만 아누라다푸라 시대로 알려졌다. 아누라다푸라 시대는 기원전 4세기 말부터 기원후 11세기 초에 이르는 억겁의 시간이다. 그래서 연못은 고대문명이나 관개 시스템과 농업 기술을 해석하는 중요한 유적이다. 그리고 바위와 돌에 새긴 정교한 장식은 이곳을 왕족이나 귀족이 사용하던 시설로 추정할 정도로 아름답고 고상함이 느껴진다. 적어도 천 년이 넘은 이곳에서 고귀하고 지체 높은 여인들이 물놀이하거나 몸을 씻었을 것이다. 잘 모르는 내가 봐도 서민들을 위한 곳은 아니었다.
그런데 한 쪽에 익숙한 공간이 보였다. 돌로 만든 발자국이 돌출되어 있었는데 양발의 간격이나 방향이 어디서 본 것처럼 익숙했다. 발자국 조금 아래에는 무엇인가가 흐르는 통로도 보였다. 쪼그리고 앉는 수세식 화장실이었다. 화장실 주변도 성스럽게 장식되어 있었다. 이곳은 왕족이나 귀족이 쓰던 곳이 확실했다. 이런 이유로 사람들은 여왕의 석조 연못이라는 이름 대신 여왕의 화장실이라고 부르기도 한다. 우리가 이곳에 온 이유도 재미있는 이름 때문이었다.
다시 길을 나섰다. 길의 분위기가 확 달라졌다. 처음으로 주요 관광 도시에서 벗어나서 인구 밀도가 낮은 소도시로 향하기 때문이다. 거리를 가득 메우던 차와 뚝뚝은 보이지 않는다. 마을도 길가에서 떨어져 조용히 숨을 죽였다. 간간히 버스와 차가 지나갔다. 뚝뚝은 보이지 않았다. 뚝뚝을 타고 도시 간 이동할 사람은 별로 없기 때문이다. 운전대를 잡은 손은 처음으로 느긋했다. 경사진 길도 없고 커브도 완만해서 기어를 변속하거나 속도를 조절하지 않고 그저 앞으로 달릴 뿐이었다. 어느 순간 인적이 드물어지더니 숲이 울창해졌다. 작은 연못이나 저수지도 별처럼 흩어져 있었다. 그속에서 헤엄치는 물소와 날개를 펼친 공작이 우리를 목격했다. 어느새 뚝뚝은 또 새로운 세상인 라후갈라 국립공원(Lahugala National Park)으로 들어섰다.
라후갈라 국립공원은 아루감베이에서 약 20km 정도 떨어진 작은 국립공원이다. 입구에는 작은 초소와 지그재그로 놓인 장애물이 차나 버스의 속도를 늦추었다. 하지만 뚝뚝을 세워 검문하지는 않았다. 우다왈라웨처럼 관광객이나 지프 사라피는 없었다. 이곳은 동물이 인간의 이웃처럼 모여 사는 마을이었다. 숲속에는 멧돼지나 사슴, 몽구스, 원숭이는 물론 코끼리도 살고 있을 것이다. 밤이 되면 도롯가까지 나와 놀이터처럼 놀지도 모른다. 수많은 새도 눈길을 빼앗았다. 한 무리의 새가 나타나 마치 뚝뚝을 쫓아오듯 같은 속도로 날며 비상과 하강을 반복했다.
땅이 물에 살짝 적셨다고 해야 하나, 물에 잠겼다고 해야 하나. 많은 연못과 호수는 지표면과 별 차이 없이 넘실거렸다. 물 밖으로 드러난 나무와 풀로 원래 물 높이를 가늠했다. 여러 작은 돌다리가 이런 아슬아슬한 지점을 연결해서 길을 이었다. 엘라에서 출발한지 4시간이 지나고 아루감베이에 가까웠다. 그때 사람들이 모여 숲속에 차오른 물을 가리키고 있었다. 나무가 삐쭉삐죽 박혀 있었다. 뚝뚝을 세우고 다가갔다. 한 남자가 말했다.
“저기 보여요? 악어가 숨어 있어요.”
그는 간결하게 상황을 전달했다. 그리고 그의 아들과 딸에게 악어를 보여주기 위해 애썼다. 악어를 찾기 힘들었다. 흙탕물과 풀숲 사이에서 코와 눈만 내밀고 은신 중인 악어는 배가 고플지도 모른다. 우리를 먹이로 생각하진 않겠지. 악어가 달려오는 데 얼마나 걸릴까. 차라리 악어가 보이면 덜 불안할 것 같았다. 남자가 가리킨 곳을 숨은 그림 찾듯이 샅샅이 살폈다. 악어가 보였다. 악어를 처음 본 건 아니지만, 동물원의 철조망이나 안전한 사파리 지프 없이 대치 중인 건 처음이었다. 미국 골프장에서 악어가 나타나거나 러시아에서 곰이 현관문을 두드리는 영상이 떠올랐다. 내가 동물과 너무 멀리 살았던 걸까. 스리랑카 악어는 물길 따라 숲 따라 언제 어디서든 모습을 드러낼 것이다. 생각이 거기에 미치자 한 걸음 물러서 바닥을 살폈다. 얼른 뚝뚝을 타고 싶었다.
얼마 후 다시 길을 나섰다. 아루감베이 시내에 들어서자 다른 곳에서 볼 수 없었던 염소 떼가 길을 막았다. 포투빌 석호 위로 새 떼가 반기듯 원을 그렸다. 뚝뚝은 외롭게 달리지 않았다. 우리는 스리랑카 속으로 가는 중, 동물들의 눈엔 이방인이 아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