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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찬드 Oct 21. 2024

Ep 22. 엘라의 낮(우체국에 전하는 감사 인사)

[와일드 스리랑카] 뚝뚝 타고 스리랑카 일주, 3,375km 엘라

엘라의 낮은 소박하게 정겹고, 은밀하게 친절하다. 스리랑카에서 가장 유명세를 타는 관광지가 엘라다. 하지만 소도시의 모습도 갖추지 않은 아담하고 고요한 마을에 가깝다. 엘라는 튀지 않고 꾸준하다. 나름의 화려한 밤이 끝나도 낮잠 자듯 셔터를 내리지 않는다. 해가 뜨면 생업과 일상이 시작된다. 엘라의 여행자거리는 방콕의 카오산로드나 하노이의 맥주거리와 다르게 소소한 보통의 민낯이다. 그래서 이곳에서는 실없지 않을 수 있다. 소품 가게나 편집숍을 구경하고 점심 장사에 열을 올리는 가게에서 밥을 먹는다.     


시원한 아침 바람을 곁들인 골든 캐빈(golden cabin)의 조식은 듣던 대로 알차고 맛있었다. 룸에 딸린 작은 발코니로 아침 식사를 날라 준 손이 참 고맙다. 하루는 아침을 먹고 뚝뚝에 앉아 핸들을 잡았다. 뚝뚝은 가파른 언덕에서 낮은 쪽을 향해 주차되어 있었다. R과 B를 태우고 후진으로 빠져나가는 건 어렵기 때문에 혼자 미리 빼두는 게 좋을 것 같았다. 시동을 걸고 후진 기어를 넣었다. 브레이크에서 발을 살짝 떼며 액셀을 당겼다. 뚝뚝이 앞으로 내려갔다. 액셀을 조금 더 세게 당겼다. 그러다 힘이 넘쳤는지 뚝뚝은 뒤로 튕기듯 움직였다. 브레이크를 힘껏 밟았지만 이미 배수구에 뒷바퀴 하나가 빠지고 말았다. 벽돌이 떨어진 것처럼 큰 소리가 났다. 여러 사람이 몰려왔다. 그들은 안간힘을 쓰며 뚝뚝을 들고 배수구에서 빼냈다. 그때 배수구 건너편에 주차된 차가 보였다. 배수구에 바퀴가 빠지지 않았다면 그 차가 박살났을 것이다. 사람들은 내가 럭키가이라며 위로했다. 아무도 나를 질타하거나 주의를 주지 않았다. 그래서 나는 고마우면서도 더 부끄러웠다.     


단골 식당이 있다면 메이티 헛(Matey Hut)이다. 첫 여행에서 묵었던 리차드 홈스테이 가는 길에 있는 작고 허름한 식당이다. 밖에서 보면 전혀 식당 같지 않은, 식당이어서는 안 될 곳이다. 너무 가파른 비탈길 옆에 붙은 판잣집처럼 생겼기 때문이다. 하지만 이 좁고 위험한 공간은 늘 손님으로 가득했다. 여느 식당과 마찬가지로 꼬뚜와 데빌과 볶음밥을 팔았다. 나중에 생각해도 스리랑카에서 다닌 식당 중 세 손가락 안에 들 정도로 맛있었다. 그래서 세 번 갔다. 간혹 오늘은 뭘 먹을까, 몇 시간 전부터 들뜬 적도 있다. 음식 맛만 좋았냐면, 아니다. 영리한 직원의 부담스럽지 않은 친절도 한몫했다.


“주문이 밀려 있어요. 한 20분쯤 걸릴 것 같은데, 기다려 줄래요? 더 넓은 자리가 생기면 옮겨 드릴게요. 아, 음료수는 서비스예요.”


그의 응대가 전채 요리처럼 입맛을 돋우었다.

얼마 전 10년 전에 스리랑카에 다녀 온 선배가 이렇게 말했다.


“그 뭐냐, 누와라엘리야에서 다리 밑 언덕에 있는 식당 알아? 거기가 진짜 맛있었는데. 난 그 식당만 생각나.”

“선배, 왠지 어딜 이야기하는지 알 거 같은데, 그 식당 엘라에 있어요. 저도 거기 엄청 좋아해요.”


선배는 여행지는 헷갈려도 메이티 헛은 기억했다. 나도 그럴 것 같다.


메이티 헛에서 허기를 달랬다면 엘라 우체국은 인류애를 충전시켜 주었다. 스리랑카에 처음 왔을 때, 인도 남부를 한 달 동안 여행한 후였다. 인도에서 산 여러 기념품과 옷, 콜롬보 베어풋에서 산 러그와 차를 합쳤더니 부피가 상당했다. 본격적인 스리랑카 여행을 시작하기 전에 짐을 줄이기로 했다. 그래서 콜롬보 포트 지역에 있는 우체국(General Post Office)에서 한국으로 국제 소포를 보냈다. 서류를 작성하고 영수증을 받았다. 9,650g을 보내는 데 20,550루피가 들었다.



며칠 후 콜롬보를 떠나 캔디를 여행 중일 때 모르는 번호로 전화가 걸려왔다. 전화 올 일이 없으니 무시했다. 하지만 발신자는 포기하지 않고 계속 부재중을 남겼다. 마침내 통화 버튼을 눌렀다.


“미스터 문, 여기는 우체국인데요. 엑스레이에 배터리가 잡혔어요. 소포를 보낼 수 없어요.”


내가 들은 말은 여기까지였다. 우체국 직원은 분명히 뭔가 더 설명하려고 했지만 주변이 너무 시끄러워서 통화하기 어려웠다. 내 전화 영어 실력도 이 상황을 매끄럽게 정리할 만큼 좋지도 않았다. 통화를 마친 후 머릿속이 복잡해졌다. 인도 남부 10여 개 도시를 여행하며 산 기념품, 그중에서도 R의 사리가 떠올랐다. 직접 고급 원단을 고르고 재봉사를 찾아가 맞춘 인도 전통 옷이었다. 실수로 넣은 비싼 고프로와 배터리는 아무것도 아니었다. 세상에서 유일한, 다시는 살 수 없는 여행의 흔적이 몽땅 사라지게 생겼다. 남은 일정을 포기하고 콜롬보로 돌아갈 수도 없는 노릇이었다. 출국 전에 콜롬보에 갈 수 있지만 그때는 주말이라 우체국 영업시간에 맞추기 힘들었다. 정말 우울했다. 여행할 기분이 아니었다. 정신을 차리고 스리랑카 우체국 대표 메일로 장문의 편지를 보냈다.


‘안녕하세요. 한국에서 온 여행자 미스터 문입니다. 얼마 전 콜롬보에서 보낸 소포에서 배터리가 발견되었다는 소식을 들었습니다. 제 실수입니다. 배터리는 버려도 좋습니다. 남은 소포만 한국으로 보내주세요. 그 박스에는 소중한 여행 추억이 담겨있어요. 꼭 부탁드립니다.’


답장을 기다리는 동안 캔디를 지나 엘라에 왔다. 틈날 때마다 송장번호를 추적했다. 소포는 여전히 콜롬보에서 계류 중이었다. 메일 답장도 오지 않았다. 답답했다. 그때 엘라 여행자거리에 있는 우체국이 보였다. 나는 쫓기듯이 우체국으로 들어가서 사정을 하소연했다. 우체국 직원이 하나둘 내 앞에 모였다. 그들은 어디론가 전화를 걸어 내 송장번호를 말했다. 몇 통의 전화를 주고받았다. 우체국 책임자도 나와 거들었다. 마침내 담당자와 연락이 닿았다. 나는 아주 간절하면서 단호하게 말했다.


“내 소포를 열어 봐도 괜찮아요. 배터리를 찾아서 버려주세요. 다른 문제가 생겨도 모두 내 책임이에요. 다시 접수해야 한다면 돈을 더 낼게요. 제발 한국으로만 보내주세요. 만약 콜롬보에서 짐을 찾을 수 있다면 그것도 좋아요.”


엘라의 우체국 직원들은 일이 잘 처리될 거라며 나를 안심시켰다. 그리고 며칠 후, 스리랑카 우체국으로부터 메일을 받았다.


‘안녕하세요. 귀하의 요청에 따라 오늘 카메라에서 배터리를 제거하고 재포장했습니다. (Dear Sir, As per your request we have removed the battery from the camera and repacked it today.)’

     

감동이 몰려왔다. 짓누르던 걱정과 죄책감이 사라지고 마침내 안도했다. 첨부파일을 열었다. 소포를 열고 배터리를 찾아 제거하는 사진이 보였다. 세심한 배려였다. 한참 후에 한국으로 돌아와 무사히 배달 된 소포를 받았다. 스리랑카 우체국에 감사 메일을 보냈다.     


이런 따뜻한 사연이 한 달 만에 다시 스리랑카로 이끌었는지도 모른다. 나는 스리랑카에 크게 빚졌다고 생각한다. 그래서 열심히 스리랑카를 부추기고 알리고 있다.     


다시 한번 스리랑카 우체국과 콜롬보와 엘라의 우체국 직원에게 진심으로 감사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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