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와일드 스리랑카] 뚝뚝 타고 스리랑카 일주, 3,375km 카타라가마
코끼리를 만난 건 행운이었다. 이것으로 두 차례에 걸친 스리랑카 여행 중 최고의 순간이 만들어졌다. 카타라가마에 도착할 때까지 흥분은 가시지 않았다. 숙소인 세노라 호텔(Hotel Senora)은 객실이 많고 넓은 주차장을 보유하고 있지만 많이 낡은 곳이었다. 오래된 가구와 푹 꺼진 침대 시트, 방음이 잘되지 않는 방을 보자 R이 머뭇거렸다. 나도 그랬다. 비교적 저렴한 곳 중에서 시설이 괜찮아 보이는 곳을 애써 골랐는데 기대에 미치지 못했다. 어쩔 수 없는 일. 그럭저럭 하루만 잘 넘기면 된다는 생각으로 얼른 털어버렸다. 그런데 지금까지 다닌 숙소와 다르게 세노라 호텔의 투숙객은 대부분 스리랑카 사람들이었다. 가끔 인도 사람들이 보였지만 서양인은 별로 보이지 않았다. 오래 머무는 외지인도 없을 것 같았다. 이것은 카타라가마가 휴양지나 관광 도시가 아니라는 의미였다.
나는 처음에 카타라가마를 하루 쉬어가는 중간 지점의 소도시 정도로 여겼다. 하지만 R은 카타라가마가 스리랑카에서 얼마나 중요한 의미를 가진 곳인지 잘 알고 일부러 이곳을 일정에 넣었다. 카타라가마는 힌두교, 불교, 이슬람교의 성지가 모인 신전 컬렉션 같은 곳이다. 그래서 ‘카타라가마 홀리 생크추어리스(Kataragama Holy Sanctuaries)’라고 부르는데, 우리말로 하면 ‘카타라가마의 신성한 신전들’이란 뜻이다.
이 중에 카타라가마 데왈라야(Kataragama Dewalaya)는 힌두교, 불교, 이슬람교에서 모두 성스럽게 여기는 성지이다. 힌두교에서는 전쟁과 지혜의 신으로 여기는 스칸다 (Skanda)를 이곳에서 숭배한다. 스칸다는 주로 인도 남부나 스리랑카 타밀족에게 추앙받는 신으로 악이나 사고로부터 가족을 보호하고 영적 깨달음으로 이끈다고 한다. 힌두교를 믿는 타밀족은 스리랑카에서 낮은 비율을 차지하고 있지만 이곳에서는 마치 인도에 온 것처럼 수많은 타밀족을 볼 수 있었다.
데왈라야는 불교에서도 중요한 성지다. 부처님이 이곳에서 설법을 전파했다고 믿기 때문이다. 많은 불자는 부처님의 가르침을 따르고 깨달음을 얻기 위해 이곳에 온다. 불자들의 긴 행렬을 지켜보며 이곳이 불교국가 스리랑카에서 갖는 의미를 짐작할 수 있었다.
이슬람에서는 성인 키즈르(Khizr)를 기리는 성지로 여긴다. 오래 전부터 스리랑카 동부와 남부의 무슬림은 이곳을 성지 순례했다. 지금도 이슬람을 믿는 사람들은 이곳을 자신들의 성지로 받아들이고 있다.
이처럼 세 종교는 같은 성지를 두고 서로 다르게 해석한다. 하지만 다름을 배척하지 않는다. 차이를 받아들인다. 신념을 강요하지도 않는다. 카타라가마가 특별한 점이 바로 이것이다. 카타라가마는 ‘종교와 문화의 다양성과 공존’을 상징한다.
데왈라야 앞에는 벌써 많은 사람이 모여 있었다. 신발을 벗어 보관소에 맡기고 맨발을 땅에 디뎠다. 까칠한 모래와 모래에 섞인 진득한 찬 기운이 느껴졌다. 건너편에는 쟁반처럼 넓은 소똥과 바나나 같은 개똥이 드문드문 보였다. 갑자기 비가 세차게 내렸다. 모래에는 금방 고랑이 생기고 물이 흘렀다. 나는 대지를 박차듯이 걸었다. 수많은 순례객이 맨발을 드러내고 자신의 신 앞에 섰다. 불자들은 크고 풍성한 보리수나무 아래에서 머리를 숙였다. 보리수 잎은 스님이 낭독하는 법문처럼 사그락거렸다.
한쪽에서는 코코넛 스매싱(Coconut Smashing Ritual)이 한창이었다. 코코넛을 산산조각 내는 이 의식은 인간으로서의 자아를 깨는 자기 정화와 겸손을 의미한다. 또 여러 가지 악을 제거하고 소원을 빌며 신에게 코코넛을 바치는 오래된 전통이다. 사람들은 코코넛에 불을 붙인 후 기도했다. 기도가 끝나면 코코넛을 머리 높이 든 다음 있는 힘을 다해 땅으로 던졌다. 둔탁한 파열음과 함께 코코넛의 파편과 코코넛 속에 든 물이 사방으로 튀었다. 코코넛을 던진 사람의 표정도 밝게 펴졌다. 이 모습을 지켜보는 게 재미있었다. 따라 해보려고 했지만 이미 넘치는 관심을 받고 있어서 다음으로 미루기로 했다. 과일 바구니를 봉양하는 사람들이 보였다. 플라스틱 바구니에는 바나나, 수박, 파인애플, 파파야 등 여러 과일이 다소곳하게 담겨 있었다. 무교인 나는 이해할 수 없는 기쁨과 경외가 이들에게 충만한 것 같았다.
많은 사람이 데왈라야에서 500m 정도 떨어진 키리 베헤라 사원(Kiri Vehera Temple)으로 우르르 이동했다. 키리 베헤라 사원은 기원전 6세기 스리랑카 고대 왕국의 왕인 마하 세나(Maha Sena)에 의해 세워진 것으로 알려졌다. 부처님도 이때 이곳을 방문하여 설법을 전파했다고 해서 스리랑카는 물론 세계적으로도 중요한 성지이다. 키리 베헤라 사원으로 가는 큰길은 불자뿐 아니라 힌두교, 이슬람교 신자들이 섞여 북새통을 이루었다. 길가에서는 과일 바구니나 꽃을 팔았다. 그때 어떤 사람이 R에게 꽃 한 송이를 나눠주었다. R은 그 꽃을 들고 사람들 사이에서 총총걸음으로 신전까지 걸었다. 하얀 반구형의 스투파가 나타났다. R은 꽃을 내려놓으며 기도했다.
여행을 마치고 나중에 알게 되었는데 카타라가마는 스리랑카에서 손꼽히는 페라헤라(Perahera)로 유명했다. 페라헤라는 스리랑카 전역에서 벌어지는 종교 축제로 퍼레이드를 비롯한 퍼포먼스가 몇 날 며칠 동안 끝없이 펼쳐진다. 페라헤라의 규모와 시기는 해당 지역의 역사, 문화에 따라 다르다. 콜롬보나, 캔디처럼 역사 깊은 대도시나 주요 관광 도시의 페라헤라가 주목받는 데 비해 카타라가마는 조금 엉뚱하다는 생각기 들었다. 하지만 다른 지역과 다르게 불교, 힌두교, 이슬람교를 아우르는 독특성은 7월 말, 8월 초 사이에 순례자나 관광객을 불러 모은다고 한다. 이 기간만큼은 카타라가마는 작은 도시가 아니라 세상에서 가장 품이 크고 따뜻한 도시이다.
나는 아직 종교가 무엇인지, 종교의 절실함에 대해서 잘 알지 못한다. 다만 여행 중 지켜본 힌두교, 이슬람교, 불교 신자들의 열성에 놀라지 않을 수 없었다. 조금 더 깊게 들여다보았을 때는 종교에 의지하는 간절함이 너무도 달라 어지러운 적도 있었다. 누군가에게 종교는 치유이며 용서이며 디딤돌이었다. 또 누군가에게는 유일한 원망의 대상이자 삼킨 통곡이었다. 나는 아직 어느 쪽도 아니라서 차라리 다행이라고 여길 때도 있었지만, 바라는 일이 있거나 위기가 닥칠 때면 얼른 손을 모아 이기적으로 기도했다. 대상이 어떤 신이었는지는 모르겠다. 그렇다면 나는 종교가 있는 것일까 아닐까. 신을 믿는 것일까 아닐까.
그동안 각 종교의 본산이라고 할 수 있는 곳을 여러 번 여행했다. 힌두교의 본산이라고 할 수 있는 인도의 고대 도시, 티베트 불교를 이어가는 라다크, 시크교의 성지 암리차르, 이슬람국가 파키스탄 이슬라마바드의 파이잘 모스크, 불교의 4대 성지 중 보드가야와 사르나트, 독실한 불교국가 태국. 그런데 어디에서도 내게 전도하는 사람은 한 번도 만나지 않았다. 자신들과 행색이 다르고 관습이나 기도법을 잘 알지 못해도 나무라지 않았다. 종교로 세력을 암시하는 사람은 없었다. 나는 하나의 종교를 선택해 귀의한다고 말하진 못하지만 종교의 순역할은 믿는다. 어디에서 무엇을 보고 기도하든 조금 더 나아지려는 노력과 희망을 잠깐이라도 가진다면, 그래서 잠깐이라도 평안해지고 옳고 이로운 행동을 결심한다면 종교가 제 역할을 충분히 한 것 아닐까. 아마 어떤 경전에도 그것이 가장 중요한 교리로 쓰여있을 것 같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