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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찬드 Oct 30. 2024

Ep 30. 함반토타, 대자연 속 야외 온천

[와일드 스리랑카] 뚝뚝 타고 스리랑카 일주 3,375km 함반토타

함반토타 해변에 도착하기 전부터 인도양의 체취가 느껴졌다. 하늘은 팔을 펼친 것처럼 넓은 품으로 이끌었다. 가로수의 키는 작아지고 시야가 탁 트였다. 바다의 비릿한 온기가 밀물처럼 밀려왔다. 구글 지도에는 상당히 넓은 염전이 보였다. 지도를 따라갔지만 호수만 보일 뿐이었다. 뚝뚝의 속도를 줄이고 자세히 보자 호수가 아니라 염전이었다. 창고 앞에 소금이 하얀 모래처럼 쌓여있는 것이 아니라 물이 찰랑거리는 염전은 마치 잔잔한 호수 같았다.     


함반토타 시내에 들어서자 교차로가 보이고 통행량이 늘었다. 출근하는 직장인과 등교하는 학생이 빠르게 걸었다. 어떤 차는 클랙슨을 울렸다. 오래된 마트에서는 채소와 과일을 진열하고 있었다. 카센터와 통신사도 영업 준비 중이었다. 지극히 평범한 소도시의 일상이었고, 낯설었다. 여행자를 위한 시설은 보이지 않았다. 다른 해안 도시와 다르게 관광보다는 상업과 경제 활동에 집중하는 분위기가 확연히 와닿았다.   

  

시내를 지나 함반토타 항구에 이르렀다. 해산물 경매나 어시장을 기대했지만 보이지 않았다. 가판대에서 빠르게 사고판 흔적이 보였다. 따로 어시장 건물을 두지 않거나 멀리 떨어진 것 같았다. 항구에는 작은 배가 벌집처럼 정박해 있었다. 나는 뚝뚝으로 최대한 가까이 가기 위해서 이리저리 입구를 찾았다. 트럭이 드나들 것 같은 입구에서 주차료로 400루피를 주고 들어갔다.


예상대로 트럭 몇 대가 주차되어 있었고 다른 뚝뚝은 보이지 않았다. 한쪽에선 어부들이 줄담배를 피며 일을 마무리하고 있었다. 나는 그들의 눈치를 살피며 천천히 뚝뚝을 몰았다. 한 남자가 슬쩍 고개를 들어 쳐다볼 뿐 더 이상 관심을 가지지 않았다. 나는 정박한 배 바로 앞으로 갔다. 배 안이 훤히 들여다보였다. 뚝뚝을 배 옆에 나란히 세우고 어부들에게 다가갔다. 뭐라고 말을 걸어야 할지 떠오르지 않아서 물고기를 구경하며 어부의 시선 안으로 성큼 들어갔다.     

“어디서 왔어요?”

“한국에서 왔어요. 이 물고기는 뭐예요?”

“참치잖아요. 살래요? 1kg에 1,000루피”     


그는 참치를 파는 것 말고는 관심이 없다는 듯 선뜻 흥정을 걸어왔다. 우리나라 일식집에서 해체쇼에 쓰는 대형 참치는 아니었지만, 내 허벅지 만한 참치를 고등어 팔 듯이 대하는 모습은 재미있었다. 생각해 보니 가격도 몹시 저렴했다. 내장과 뼈, 머리를 버리고 남은 수율이 50퍼센트라고 해도 참치를 배 터지게 먹을 수 있을 것 같았다. 언젠가 어시장에서 장을 봐 해산물 파티를 해야겠다고 생각했다.    

 

항구를 지나 함반토타 해변에 들렀지만 황량하기 그지없었다. 함반토타는 관광보다는 휴식, 정말 조용히 지내고 싶은 사람에게 적당한 도시처럼 보였다. 간혹 무료할 때면 얄라 국립공원이나 우다왈라웨 국립공원에 다녀오긴 좋을 것 같았다.     


함반토타 시내를 일찍 떠나기로 하고 함반토타 북쪽에 있는 마두나갈라 온천(Madunagala Hot Springs)으로 향했다. 이곳을 찾은 것도 당연히 R이었다. 해안 도시라고 해서 해안가에만 볼거리가 있는 건 아니었다. 마두나갈라 온천이 시작된 시기는 정확하게 알 수 없지만 인근 주민들에게는 치유의 샘으로 전해온 천연 온천이다. 후기를 살펴보면서 더운 나라에서 온천을 즐긴다는 사실이 흥미롭긴 했지만 큰 기대를 가지지는 않았다. 나는 온천의 민족이라고 할 만큼 뜨거운 물이 펑펑 솟는 나라에서 자랐고, 온천의 효능은 더 이상 신비롭지 않았다. 또 적도 부근의 뜨거운 자외선은 시원한 냉탕을 간절하게 했지 뜨거운 온천은 상상도 해 본 적이 없었다.


그래도 온천으로 가는 길은 재미있었다. 온천 바로 옆에 리디야가마 사파리 공원(Ridiyagama Safari Park)이 있기 때문인지 공작, 도마뱀, 원숭이 떼가 출몰했다. 뚝뚝을 타고 여행한 지 열흘이 지난 이후로 나는 줄곧 하나의 거대한 동물원 안에 들어온 기분이 들었다.    

 

온천 입장료는 100루피, 하지만 외국인 입장료는 10배인 1,000루피였다. 값싼 뚝뚝을 타고 다니며 하루에 1~2만 원짜리 방에서 자는 우리에게 꽤 부담스러운 금액이었다. 특히 열 배의 격차는 마음을 조금 상하게 했지만 곧 받아들였다.    

 

인도에서도 외국인이 10배, 20배 더 내는 일은 빈번했다. 누군가는 이를 두고 욕을 하고, 또는 안 가고 말겠다고 한다. 하지만 나는 이 불편한 요금이 나름 합리적이라고 생각한다. 외국인 여행자는 한 나라의 유적지에서 피를 흘리지 않았고, 관광 명소를 만들기 위해 노동하지 않았다. 또 유지하기 위해 세금을 내지도 않는다. 마두나갈라 온천이 역사적인 명소는 아니지만 이곳을 지키고 가꿔온 스리랑카 사람들의 희생과 노력이 있었다는 것은 분명하다. 나는 이곳을 떠나면 이곳이 어떻게 되든 말든 상관없이 살 것이기에, 이 온천의 과거와 현재와 미래를 위해 조금 더 요금을 낸다. 다만 이러한 요금 차별 정책이 외국인 여행자에게 부담을 주거나 기분을 상하게 할 정도는 아니어야 한다. 여행만큼 완벽한 마케팅은 없다. 여행자는 미래의 확실한 동맹이다.    

 

비싼 입장료가 무색하지 않게 신경 쓴 정원이 나타났다. 한 무리의 여자 아이들과 부모가 온천을 마치고 나오고 있었다. 들뜬 마음으로 고개를 돌리자 온천이 보였다. 제주의 돌담처럼 생긴 온천에서 남자 두 명이 물을 끼얹고 있었다. 웃통은 벗은 남자들은 사롱을 걷어 올리고 플라스틱 바가지를 머리 위로 부었다. 분명히 온천이라는 것을 알고 왔지만, 목욕하는 선녀를 처음 본 나무꾼처럼 생경한 광경이었다. 지글지글 끓는 곳에서 뜨거운 물을 거품 묻은 머리에 뿌리다니. 우리가 뜨끈한 국밥 앞에서, 불가마 찜질방에서 허리를 지질 때 ‘아, 시원하다’라는 반어법이자 꼭 알맞은 표현이 그들의 표정에서도 묻어났다.     


나도 웃통을 벗고 바가지를 집어 들었다. 가까이 가보니 더욱 놀랐다. 천연 야외 온천은 돌담을 사이에 두고 서로 온도가 다른 5개의 탕이 있었다. 30도 중반에서 50도까지 다양했다. 한 곳 씩 돌아가며 물을 끼얹었다. 아, 이국에서 쌓인 피로가 싹 가시는 시원한 기분, 낮고 굵은 중저음으로 으으으, 하고 길게 신음이 흘렀다. 내가 입은 사롱은 흠뻑 젖었지만 개의치 않았다. 그때 먼저 씻고 있던 남자가 말을 걸었다.     


“샴푸 빌려줄까요?”

“아니요. 괜찮아요. 그런데 여긴 자주 오세요?”

“자주 와요. 그러니까 샴푸랑 비누도 챙겨 오잖아요. 그런데 어디서 왔어요?”

“한국에서 왔어요. 온천 신기하네요. 이런 곳이 있을 줄 몰랐어요.”

“효험이 좋다고 알려졌어요. 멀리서도 찾아올 정도예요. 믿거나 말거나지만. 그런데 왜 중간 온천은 안 봐요? 거기가 대자연인데, 어머니의 샘물이에요.”     

엇, 그제야 돌담 가운데 있는 작은 공간이 보였다. 가까이 다가서서 까치발을 들고 속을 들여다보았을 때 깜짝 놀랐다. 송골송골, 보글보글 물방울이 아주 깊은 곳, 끝을 알 수 없는 곳에서 올라오고 있었다. 작은 물방울은 수면에 다다르며 점점 크게 보였다. 이 작은 물방울이 돌담을 타고 흘러 온천을 이루는 것이다.     


나는 이때 대자연의 영어 표현인 ‘mother nature’가 무엇인지 뇌리에 선명하게 각인됐다. 저 작은 물방울이 바로, 넓고 다채롭고 순수한 무한의 생명력을 잉태하고 양육하는 어머니의 힘, 대자연의 시작이었다. 첨단 기술로 이룬 문명과 오랫동안 쌓인 집약적인 지식이 손 닿을 곳에 있지만, 오늘은 산 교육만이 가르칠 수 있는 것이 무엇인지, 그 힘을 느낄 수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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