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와일드 스리랑카] 뚝뚝 타고 스리랑카 일주 3,375km 탕갈레
이제부터 본격적으로 해안 도로 로드트립이 시작되었다. 남부 해안의 10여 개 도시를 거쳐 서부 해안 도시인 콜롬보와 네곰보까지 올라가는 긴 여정이다. 비록 함반토타에서 바다를 즐기지는 못했지만 온천에서 진기한 경험을 했다. 다음 도시는 탕갈레(Tangalle), 한때 인기를 끌었던 곳이다. 요즘은 미리사(Mirissa)에 밀려 조용하고 한적한 여행지로 알려졌다.
함반토타에서 탕갈레까지는 약 50km. 해안도로를 따라 앞만 보고 달리면 자연스럽게 다음 도시에 도착한다. 그동안 고산 내륙 지역의 구불구불하 고갯길을 하루에 100km 이상, 어떤 날은 170km 달리던 것에 비하면 한가로운 드라이브 수준이다. 이동 거리와 길의 난도가 준 만큼 여유가 늘었다. 한동안 새벽잠을 누릴 수 있을 것 같다.
탕갈레로 바로 들어가지 않고 탕갈레에서 북쪽으로 16km 떨어진 곳에 있는 사원에 들르기로 했다. 믿고 보는 R의 추천이었다. 해안 도시를 여행할 때 대개는 해안 중심 명소에 집중해서 다른 곳은 눈에 들어이기 쉽지 않다. 그런데 R은 늘 새로운 곳을 찾아낸다. 더군다나 관광, 오락, 휴양에 관한 것이 아니기에 더욱 지도를 살피고 정보를 찾는 R의 눈썰미가 놀랍다.
물기리갈라 사원(Mulgirigala Raja Maha Viharaya)은 탕갈레 해안에서 북쪽으로 16km 떨어진 곳이다. 우리말로 의역하면 바위 중심에 있는 위대한 사원으로, 2세기 경 아누라다푸라 시대에 암벽에 세워졌다. 종교적, 역사적으로도 상당히 의미 있는 유적지이면서, 수준 높은 동굴 벽화와 주변의 뛰어난 경관은 불자가 아닌 관광객에게도 놀라운 볼거리로 알려졌다. 이 사원을 용케 알아내고 구경에 나서는 여행자가 종종 있는데, 탕갈레에서 꽤 큰돈을 들여 뚝뚝이나 택시를 대절해야 한다. 뚝뚝을 렌트한 우리는 가던 길을 잠깐 돌아가면 될 뿐이었으므로, 뚝뚝 로드트립의 이점은 정말 엄청났다.
주차장에 도착해서 얼마간의 실랑이를 벌였다. 내가 볼 때는 공용 공터인데 누군가 나타나 주차요금을 징수한다. 액수는 중요하지 않다. 주차 요금도 명백한 거래이므로 내가 어떤 대가를 받을 수 있는지 짐작할 수 있는 최소한의 형식을 갖추어야 한다. 나는 여행 중에 돈을 뜯기 듯이 내진 않는다. 그녀에게 관리 주체를 묻고 신분증을 요구했다. 그녀는 다른 건장한 남자를 불렀고 분위기는 어색해졌다. 그때 이를 지켜보던 한 남자가 나타나서 한국말로 상황을 중재했다.
"한국에서 왔어요? 나는 한국에서 오래 일했어요."
"한국어 정말 잘하시네요. 스리랑카랑 한국은 친구죠. 반가워요."
"사원 구경 같이 할래요? 나는 이곳 가이든데 구석구석 잘 설명해 줄게요."
"이곳이 유명한 곳인가 봐요. 제가 잘 찾아왔네요. 그런데 저는 혼자 느긋하게 다니고 싶어서요. 미안해요.
"
그는 껄렁껄렁해 보이는 주차요금 담장자에게 뭐라고 말했고, 나도 눈치껏 경계를 풀고 주차요금을 냈다. 이들이 진짜 정부나 지자체에 고용되었건 아니면 무단 점유한 땅을 장사하는 사람이건, 내가 주차요금을 내지 않으면 사원에 들어갈 수 없다는 것쯤은 잘 알고 있다. 그런데도 가끔 이렇게 깐깐하게 구는 내가 미련하다. 하지만 이건 오랜 여행에서 얻은 생존 본능이다. 여태 별문제 없이, 상처받지 않고 여행한 요령으로 여긴다.
사원은 정글처럼 숲이 우거진 원숭이 놀이터였다. 어떻게 저 작은 손으로 체중을 버티며 날아가듯이 나무 사이를 건너뛰는지, 이끼 낀 계단과 벽에도 착착 달라붙었다. 원숭이는 새 손님을 관찰하며 어떻게 괴롭힐지 고민하는 듯했다. 아무쪼록 식탐 많고 최고의 소매치기인 원숭이의 호기심을 자극하지 않아야 한다.
주차장이 문명 세계라면 작은 문 하나 통과했을 뿐인데, 사원 안은 2천 년 전처럼 태고의 모습을 보였다. 마치 인디아나 존스 정글 탐험이 시작된 것처럼 미끄러운 돌계단을 오르며 커다란 바위가 있는 곳으로 올랐다.
약 20분 간의 거센 오름이 끝나자 커다란 바위가 나타났다. 이곳이 왜 바위 또는 절벽 사원으로 불리는지 단번에 알 수 있었다. 가까이 다가가자 바위는 하나의 산처럼 느껴졌다. 아래쪽에는 작은 문이 보였다. 문을 열고 들어가자 또 하나의 세상이 펼쳐졌다. 문명에서 태고의 숲으로, 그리고 다시 수 천 년 불심이 서린 동굴 사원으로 옮겨갔다. 작은 동굴 안에는 헤아릴 수 없을 만큼, 감히 짐작하기도 어려운 경외가 깃들어 있었다.
아, 탄성이 터졌다. 이 공간이 바위 밑에 숨어있었다니. 동굴 안에서는 이곳이 커다란 바위를 뚫어 만든 작은 공간이라는 것이라고 믿기지 않았다. 이 작고 어두운 공간은 저 바깥의 만사를 빨아들이는 블랙홀 같았다. 아직 마음에 남아 있었던 주차장 관리인에게 부린 이기도 어느새 사라졌다. 바위를 뚫은 이, 그리고 몸을 웅크리고 들어앉아 그림을 그리는 불자를 상상했다. 땀이 송글 맺히고 숨이 차올랐을 것이다. 하루치 불심을 새겨도 어제와 전혀 달라지지 않은 것처럼 느린 과업. 오로지 억겁의 세월을 모두 쏟았을 때 비로소 자신이 무엇을 만든 것인지 알게 되지 않았을까. 한평생 내면을 가꾸고 돌보아 성찰에 이르려는 불심이 바로 이런 것일까. 제집처럼 편안하게 누운 와불은 금방이라도 개운하게 기지개를 켜며 일어날 것 같았다.
밖으로 나오자 바위 속 동굴에서는 의식하지 못했던 절벽 같은 바위가 보였다. 더 높은 곳으로 올라 갔다. 등줄기에 땀방울이 맺혔다. 마지막 걸음을 내딛자 동굴 사원과 정반대의 광경이 펼쳐졌다. 동굴 속에 꾹꾹 눌러 함축된 기운이 서려있다면, 이곳에서는 대지의 수많은 생명이 요동치는 두근거림이 느껴졌다. 전율이 흘렀다. 나는 그 속에서 아직도 옹졸하고 변덕스러운 마음에 휘둘리며 방랑한다. 내게는 여행이 수행이기를, 그러므로 여행으로 더 나아진다는 기대를 버리고, 끝이 있다는 것을 알고, 그저 내 몫만큼 바랄 수 있기를 바랐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