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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찬드 Oct 27. 2024

Ep 29. 팃사마하라마, 고요한 불탑 마을

[와일드 스리랑카] 뚝뚝 타고 스리랑카 일주 3,375km팃사마하라마  

카타라가마에서 함반토타까지는 약 40km로 한 시간 정도 걸리는 가까운 거리다. 하지만 아침 일찍 길을 나섰다. 함반토타는 남부 해안 도시의 끝 지점이다. 이곳에서부터 콜롬보까지 해안도로를 따라가며 250km의 긴 여정이 시작된다. 남부 해안가에는 휴양지와 관광 도시, 유적지가 밀집해 있어 적어도 10여 개 주요 도시를 지나간다. 들르는 도시마다 오래 머물려면 한두 달 일정으로는 어림도 없다. 그래서 비교적 작은 도시나 덜 알려진 곳은 당일 여행 후 다음 도시로 이동하기로 했다. 지난 여행 때 남부 해안가를 대표하는 미리사와 갈레에서 충분한 시간을 보냈기 때문에 다른 곳에 관심을 가질 여유는 충분했다.


또 뚝뚝 로드트립은 새처럼 가볍고 자유롭다. 기차나 버스 시간에 맞출 필요가 없으니 허투루 쓰는 시간이 없다. 다른 여행자가 기차나 버스를 기다리고 있을 때 우리는 이미 다음 도시에 도착해서 여행을 시작한다. 식당이나 숙소를 찾을 때도 시간과 체력을 아낄 수 있다. 대중교통편에 구애받지 않으니 모든 도시의 접근성을 평등하게 한다. 우리는 어디든 갈 수 있다. 뚝뚝 로드트립은 하루를 두세 배로 길게 늘려준다.     


이른 아침, 안개가 자욱한 도롯가는 촉촉하게 젖어 있었다. 누와라엘리야 이후로 말썽 없는 뚝뚝도 나도 대견했다. 뚝뚝 여행을 시작한지 13일째, 825km 달렸다. 그동안  스리랑카의 동쪽에서 서쪽으로 고산지대를 통과하며 선 하나 그리며 횡단한 게 전부다. 지난밤 남은 일정과 도시, 거리를 계산했다. 오래 머물 수밖에 없는 콜롬보와 네곰보, 고산지대를 지났기 때문에 일주하는 데 문제는 없을 것 같았다. 하지만 문득 일주 여행이 참 부질없이 느껴졌다. 한곳에 머물면서 다음 곳에 가야한다는 마음을 빚처럼 가지고 있기 때문이다. 그렇다고 한량처럼 말뚝 박는다고 해서 자신에게 무언가를 기대하지도 않았다. 나는 길가에 종일 누워서 뚝뚝을 가로막는 개처럼 게으름을 무기로 쓰기 위해서 오래 여행했고, 더 게으르고 아둔해졌다. 이번에는 뚝뚝과 일행 덕분에 앞으로 앞으로 나아가는 여행을 기꺼이 받아들이는 중이었다. 그래도 나도 모르는 새 민들레 홀씨처럼 가슴 한켠에 사뿐 내려앉은 여행의 파편이 언젠가 뜨겁게 나를 담금질할 것이다. 그날이 오면 스리랑카를 떠올리며 내가 무엇을 보고 들었는지 어렴풋이 알게 될 것이다. 여행이 끝나지 않았는데 여행에 대해서 생각하는 것도 얼마나 아둔한가. 액셀을 당기며 속도를 높이며 백미러를 살폈다. 달큰하고 신선한 공기와 뚝뚝의 떨림이 자장가처럼 익숙해졌는지, R과 B는 뚝뚝 안에서 새 잠을 자고 있었다.   

  

함반토타를 20km 앞두고 팃사마하라마(Tissamaharama)라는 작은 마을에 들렀다. 팃사마하라마는 팃사(Tissa) 호수와 요다(Yoda) 호수 사이에 있는 스리랑카 고대 왕국의 도시다. 이곳에는 기원전 2세기 경에 세워진 것으로 추정되는 팃사마하라마 사원(Tissamaharama Raja Maha Vihara)이 있다. 이곳을 알아낸 것도 역시 R이였다. R은 뚝뚝의 이점을 최대한 살리는 뚝뚝 여행의 지휘자였다. 팃사마하라마 사원은 스리랑카 남부에 불교가 확립하고 번성하던 시기에 세워진 사원으로 스리랑카의 초기 불교 유적으로서 상당히 높은 가치를 가진다. 주변이 휑했을 당시를 떠올려 보면 높이가 약 45m에 이르는 반원구 모양의 불탑은 불시착한 우주선처럼 경이로웠을 것이다.     

황토처럼 질척거리는 넓은 주차장에 뚝뚝을 대고 사원으로 향했다. 예상과 달리 주변은 고요했다. 정문도 닫혀있었고 이곳을 지키는 사람이나 시설도 보이지 않았다. 하지만 초라하고 부실해 보이는 정문이 가까워질수록 눈이 커졌다. 정문에는 여백을 적당히 남겨둔 채 여러 부조와 문양이 자리 잡고 있었다. 조화로운 배치였다. 서로 사뭇 다른 개체이지만 이질감이 들지 않고 자연스럽게 어울렸다. 재건과 복원을 거쳤다고 해도 까마득한 옛 건물임은 틀림없는데, 세월을 초월해서 유행에 좌우되지 않았다.     


신발을 벗고 불탑 앞으로 갔다. 인기척이 났을 텐데도 아랑곳하지 않고 한 남자가 장구를 치며 노래했다. 그가 이곳의 승려인지, 관리자인지는 알 수 없으나 그의 노래가 넓은 공간의 밀도를 높이는 것은 확실했다. 그의 범패 때문인지 크고 작은 불상의 단전에는 뜨끈한 기운이 맴돌 것 같았다. 뒤를 돌아보니 통이 좁은 청바지를 입은 한 여자가 초에 불을 켜고 있었다. 출근 전에 들른 것 같았다. 불탑 주변에는 소가 어슬렁거렸고 한 무리의 검은머리흰따오기가 분주하게 땅을 쪼았다. 나는 경내를 한 바퀴 둘러보며 허기와 포만감을 동시에 느꼈다. 신비로운 아침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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