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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 문장이라도 읽는 게 낫다.

항상 말했듯이, 시작이 반이다.

by 문하현

인터넷의 잡다한 영역을 유령처럼 자유롭게 넘나들던 와중에, 책에서 인상 깊은 문장을 수집하는 행동에 대한 비판적인 의견들을 어렵지 않게 찾아볼 수 있었다. 어느 책이든 간에, 저자 고유의 의도와 맥락은 책을 구성하는 단단한 뿌리다. 즉, 문장을 수집하는 행동은 나무뿌리를 찾을 수 없도록 윗부분만 댕강 잘라서 가져오는 것과 다르지 않다. 독자가 중요하게 생각하는 부분만 도려내어 전시하는 것은, 일종의 '체리피킹'이라고 간주할 수 있다. 문장은 맥락 속에서 진가를 발휘하는 법이다. 자칫 맥락을 파악할 수 없게끔 문장만 덩그러니 도려내 사람들과 공유하게 되면, 오히려 건전한 독서 문화를 형성하는 과정을 방해할 수도 있다. 속된 말로 팥 없는 찐빵과 같다고 할까.


어떻게 보면 틀린 말은 아니다. 사실 나도 책에서 유독 감명 깊거나 깨달음을 선사하는 문장들에 하이라이트 표시를 해두고, 나중에 이와 관련된 글을 쓸 때 문장을 끄집어내 사용하곤 했다. 글 사이에서 혼자 덩그러니 놓인 문장은 아주 찰나의 순간만큼은 강렬한 인상을 부여하지만, 독자 스스로 깊은 생각에 잠기도록 이끄는 힘이 없다. 독서의 궁극적인 매력 중 하나는 독자 스스로가 반성하고 통찰하도록 생각의 끝없는 갈림길에서 하나의 이정표를 세워주는 것에 있다. 개별적으로 전시된 문장을 읽는 행위는 저자의 의도와 맥락을 이해하려 노력하는 과정을 자연스레 배제하고, 마치 책 한 권을 다 이해한 것 같은 착각을 깊이 심어주기도 한다. 전시되는 문장들은 고유한 의미와 힘을 잃어버리고 만다.


원래 모든 행동에는 양면성이 있다. 어떤 행동이든 긍정적인 면과 부정적인 면은 완전한 별개가 아니다. 다만, 우리가 어떤 면에 집중할지 선택함에 따라 영향력이 사뭇 달라지는 것이다. '문장의 체리피킹'은 분명히 부정적인 여파를 끼칠 것이다. 그러나 독서라는 진중한 취미에 발을 들이기 어려워하는 요즘 시대에 인상 깊은 문장을 공유하는 문화가 널리 퍼진다면, 오히려 호기심에 책을 들여다보려는 사람들이 늘어날 수 있다. 문장이 독자가 보기에 재밌게 쓰여 있다면 어떤 책인지 들여다보고 싶지 않던가? 독서는 기본적으로 재미를 붙이기 힘든 취미이기 때문에, 차라리 읽기 쉬운 문장을 널리 공유함으로써 독서의 진입장벽을 서서히 낮출 수 있을 것이다.


안 하는 것보다 하는 것이 나은 경우가 많다. 일단은, 어떤 책이든 첫 장을 펼치는 일이 가장 중요하다. 그리고 한 문장이라도 읽어보기 시작하면서 제법 재미를 느끼게 된다면 더할 나위 없을 것이다.


문장을 찬찬히 읽어 내려가다 보면, 한 치 앞을 바라볼 수 없는 생각의 파도에서 투명한 기포처럼 피어나는 통찰을 건져내는 스스로를 발견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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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 토 연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