모두가 똑같이 달릴 수 없다.
유튜브의 알고리즘 파도들을 유랑하다 보면, '이 시기에는 무엇을 해야 한다'거나, '이럴 때는 어떻게 해야 한다'라는 등 대인관계에 대한 조언이 담긴 영상들을 쉽게 접할 수 있다.
이러한 영상들의 문제점은 사람에 대해 '스스로 판단하고 선택하는 능력'을 약화시키는 경향이 있다. 본인만의 기준을 아직 정립하지 못하거나, 경험이 부족해서 미숙한 경우에는 더욱 치명적이다. 가장 큰 문제점은 사람의 고유성을 처음부터 논의선상에서 배제한다는 것이다.
즉, 대인관계의 핵심은 고유성임에도 불구하고 영상들은 피상적인 조언들로 구성된다. 물론 현실적인 한계가 있다는 것은 충분히 인지하고 있다. 구체적인 사례를 다 담을 수도 없고, 시청자들의 사연은 영상 송출자의 의도대로 각색되고도 남는다. 애초에 영상의 조언을 수용하는 선택은 결국 시청자에게 달려있으니, 수용에 따른 결과와 책임 또한 시청자에게 있는 셈이다.
사람의 고유성을 인지한다는 것은, 저마다의 '속도'로 삶의 여정을 밟는다는 사실을 마음속 깊이 체득하는 것이다. 대인관계에 대해 진중하게 고민해보지 않던 시절에는 '속도'라는 관계의 축을 제대로 인지하지 못한 날들도 있었다. 나의 언어와 행동이 어떤 사람에게는 거북이처럼 느릿느릿한 나머지 상당히 답답하게 느껴졌을 수도 있고, 또 다른 사람에게는 토끼처럼 너무 빠르게 앞으로 뛰쳐나온 것처럼 순식간이어서 부담스럽게 느껴졌을 수도 있다.
대인관계를 '잘한다'는 말은 결국 내가 관계를 이어나가고 싶은 사람의 '속도'를 파악하고 존중하는 것에 달려있다. 내가 그 속도를 맞출 수 있다면 관계의 끈을 오랫동안 붙들고 있을 것이고, 속도를 맞추기 버겁다면 손에서 스르륵 놓게 될 것이다.
무엇보다도 내 '마음의 속도'를 정확하게 파악하는 것이 가장 중요하다. 암초에 부딪치지 않도록 배의 속도를 항상 파악하고 있는 항해사처럼, 조금의 엇갈림도 없이 나란히 두 배가 나아갈 수 있도록 속도를 맞춰나갈 수 있어야 한다. 혹시라도 상대방이 운전하는 배가 다른 방향으로 뱃머리를 돌린다면, 나 또한 거리가 멀어지지 않도록 속도를 조절하며 방향을 바꾸어 나아가야 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