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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콩새 Sep 08. 2022

화를 잘 내는 법

좋은 게 좋은 거라 참고 살지 말기

명절 연휴를 앞두고 냉장고 파먹기를 했다. 반찬을 담아두었던 반찬통을 싹 정리하고 나니 어마어마한 설거지거리가 남았다. 평소에 음식을 하는 것보단 설거지를 하는 걸 더 좋아하는 편이었다. 하지만 오늘은 기분이 뭔가 안 좋았다.


힘들다는 나에게 “나도 치웠잖아”라는 투정을 부리는 남편이 얄미웠다. 힘들다는 사람한테 “나도 힘들어”라고 말하는 것과 뭐가 다를까. 이어서 “배 좀 깎아봐” 라며 아빠 같은 말투로 내 신경을 박박 긁는다. 오늘따라 내 신경을 긁기로 작정을 한 듯하다.


요즘 나는 기분이 안 좋을 땐 바로바로 말하려고 노력한다. 사소한 감정들을 놓치면 앙금으로 남고 뜬금없는 시기에 폭발하기 때문이다. 나는 나름대로 참는다고 참았는데, 폭발한 시점에서의 상대방은 뜬금없이 공격을 받게 된다.


내 기분이 왜 나쁜지 순간 생각해보았다.

그리고 그 순간 ‘내가 원하는 ’은 무엇인지 최대한 명확하게 내 스스로에게도 설명해본다.


화를 잘 내는 법의 첫 단계는 “나의 상태”를 파악하는 것이다.





1. 설거지를 하는 나는 당연하고, 남편은 자기가 할 일을 굉장히 힘들게 했다는 그런 생각을 가지는 게 싫었다. 물론 저녁을 남편이 차렸기 때문에 나는 설거지를 한 것이 맞는데, 그렇다고 그게 서로의 분담을 “당연시” 하는 건 좀 아니다.


<내가 원하는 것>

 나는 같이 회사를 다니고 육아를 하고 같이 밥을 차려내고 치우는 모든 과정을 함께하고, 서로 감사하며 살고 싶다. “나도 힘들잖아”라는 투정 보단 “힘들었지, 고생했어”라는 말로 서로를 북돋우고 싶다.


2. “~~ 좀 해봐”라는 시키는 말투가 싫다. 장난이라도 싫다. 부부는 서로에게 필요할 때 도움을 청할 수 있다. 아니 도움은 당연히 서로 필요하다. 그런데 “~~ 좀 해줄래?”라는 예쁜 말을 놔두고 왜 굳이 시키는지?


<내가 원하는 것>

장난으로라도 강압적인 말투는 사용하지 말 것


3. 설거지를 하고 기분이 나빠 “기분이 나쁘다”는 이야기를 하려고 하니 대뜸, “분리수거는 내가 버리려 했지”라고 한다. 마치 ‘나도 신경 안 쓴 거 아닌데?’ 하며 나의 힘듬을 무마하려는 것 같다.


<내가 원하는 것>

그럼 진작에 “설거지 힘들지? 분리수거는 끝나면 내가 하고 올게”라고 얘기한다. 혼자서 생각만 하고 있으면서 티브이 보고 앉아있으면 나는 절로 억울함이 든다.


화를 잘 내는 법의 가장 중요한 점은 ‘나의 감정상태’를 파악하는 것이다. 그리고 나의 이 기분 나쁨을 “기분이 나빠”라고 명확하게 표현해야 한다. 원하는 바도 함께 말해줘야 상대방이 다음엔 고칠 수 있다.


생각 끝에 이렇게 이야기한다.


“나 기분이 나빠. 일하고 와서 밥 먹고 설거지하는 게 힘들어. 그런데 오빠가 “나도 치웠잖아”라고 오빠 먼저 생각하는 게 싫어. 그리고 설거지하고 있는데 “배 깎아봐”라는 시키는 말투는 아무리 장난이라도 기분이 나빠. 분리수거하겠다고 생각한 건 나는 몰랐고, 혼자서 그런 생각을 했다는 걸로 ‘나도 힘들게 하는데?’ 이런 식으로 자기만 생각하는 건 서로 배려하는 것 같지 않아. 서로 힘든 건 이미 아니까 말이라도 예쁘게 하면 좋겠어. “힘들지? 내가 분리수거할 테니 얼른 끝내고 배 깎아 먹자~” 이렇게 얘기해줬으면 좋겠어”


마음속에 정리가 되고 난 후 남편에게 이런 감정을 이야기한다. 이제는 이런 내 감정을 드러내는 것에 익숙해진 남편도 “맞네 맞네. 내가 너무 내 생각만 했다. 힘들었지~ 미안해!”라고 금방 고친다. 옆에 있던 아이도 “엄마 미안해! 다음엔 배 같이 먹자” 한다.




결혼 2년쯤 까지는 이렇게 말하는 걸 정말 못했다. 왜냐면 순간순간 기분이 나쁜 적이 있는데, 기분이 왜 나쁜지 나 스스로가 깨닫지 못했기 때문이다. 나의 기분을 소중하게 설명하지 않으면 상대방도 알 수 없고. 내가 원하는 바 대로 바뀌지 않는 걸 깨달았다.


이렇게 그때 그때 기분이 나쁘거나 화가 날 때 이야기를 하다 보면 마음에 쌓일 앙금이 없다. 그리고 이렇게 말할 때 최대한 상대방에게도 비수가 되지 않을 말투를 연습할 수 있다. “넌 항상 그런 식이야”, “왜 맨날 내 맘을 몰라줘?”라는 비난을 할 필요가 없어진다. 왜냐면 내가 맨날 얘기하니까 상대방이 맨날 모를 수가 없다.


이런 화내는 법은 친구 관계나 부모 관계에서도 유용하게 쓰인다. 나는 이전에 감정을 쌓아두는 습관으로 관계가 틀어진 적이 많았다. 나는 나대로 기분이 나쁜데 참다가 갑자기 터지니 상대방은 당황하고, 나를 이상한 사람 혹은 예민한 사람으로 보게 된다. 하지만 서로 상황을 함께 하고 있는 순간에 감정을 솔직하게 이야기하면 상대방도 당황하지 않고 받아들일  있다.




물론 연습이 많이 필요하다. 이걸 깨닫고 난 이후에도 간결하게 감정을 말하지 않거나, 너무 사족이 많거나, 화를 먼저 내버려서 싸움이 된 적도 많았다. 그렇지만 어느 정도 몸에 배고 나니, 솔직하면서도 감정의 찌꺼기를 내 마음속에 남기지 않을 정도로 이야기할 수 있게 되었다.


무엇보다도 나의 기분 나쁜 지점을 이해하고, 내가 원하는 바를 알게 되니 상대방의 감정도 공감이 가기 시작했다. 남편, 부모님, 친구, 아이의 마음이 나와는 다른 지점에 스크래치가 생기는구나. 이런 점은 내가 고쳐봐야겠다. 하는 마음이 절로 든다.


 마음을 쓰다듬는 용기를 내니, 상대방의 마음도 마음껏 토닥여   있게 된다.




K-장녀의 표본이었던 나는 30년을 가까운 사람에게 솔직하지 못한 채로 살았다. 그 이유는 나 스스로의 감정과 생각에 솔직하지 못했기 때문이다. 좋은 표현은 쉽게 했는데, 나쁘다는 표현은 마음속에 숨겨두곤 했다. 그게 ‘좋은 게 좋은 거’ 면서 집안을 평온하게 만드는 것이라 생각했다.


그렇지만 그런 식으로 50년을 넘게 살아온 엄마와 시어머니를 보게 되었다. 만날 때마다 삶에 대한 가슴의 한을 어린 나에게 털어놓곤 했다. 안타까우면서도 나는 그렇게 살면 안 되겠다 싶었다. 사람인 이상 가슴에 응어리 하나 맺히지 않을 때가 없는데 그걸 평생 어찌 안고 살까. 그때그때 풀고 다음은 더 좋게 더 편하게 살고 싶었다.


가장 가까운 남편에게 연습(?)을 하고 나니 아이에게도 솔직하게 되고, 친정엄마와 친구들에게도 솔직해졌다. 모두가 이제 나에게 예민했던  같은데, 요즘  편해 보여!”라고 오히려 칭찬한다. 생각보다 내 주변의 사람들은 나의 솔직함을 반긴다.


가슴에 응어리를 참고 사는 분들은 꼭 용기를 얻길 바란다. 말하는 것이 어렵다면 처음에는 나만 볼 수 있는 일기장을 이용해도 된다. 상대방에게 말할 용기가 나지 않을 때면 나만의 “원망 노트”를 만들어 솔직한 마음을 적당한 욕과 함께 털어놓는다. 그래도 마음을 푸는데 꽤 도움이 된다.


좋은 게 좋은 거 아니고요.

내가 좋은 게 뭔지 아는 게 좋습니다.

나쁜 감정도 다 나에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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