초등학교 1학년 때, 미술 과목을 담당하신 담임 선생님께서는 매일 아침 8시 30분부터 1교시가 시작되는 9시까지 우리에게 그림을 그리게 하셨다. 1학기 둘째 날 때였던가, 선생님은 우리에게 위로 넘기는 줄 없는 A4용지 공책을 준비하도록 하신 뒤, 작은 그림들이 인쇄된 종이를 나눠주셨다. 우리는 그 종이에서 하나씩 그림을 오려 공책의 왼쪽 상단에 붙였고, 매일 색연필로 그림 하나씩 따라 그리며 하루를 시작했다.
어떤 그림을 그렸는지는 머리를 쥐어짜도 기억이 안 난다. 나비가 있었던 것 같기도 하고 어떤 캐릭터가 있었던 같기도 하다. 그림 자체는 기억나지 않아도, 주어진 그림을 최대한 똑같이 그려내기 위해 온 힘을 쏟았던 기억만큼은 선명하다.
담임 선생님은 어떻게 하면 똑같이 잘 그릴 수 있는지에 대해서는 일절 언급하지 않으셨기에, 아이들마다 그림을 그리는 방법은 제각각이었다. 나는 보통 테두리부터 그리기 시작했다. 선의 위치와 모양, 각도를 예민하게 관찰하고 조심스럽게 연필을 움직였다. 테두리가 잘 그려지면 이미 반은 완성했다는 자신감이 차올랐고, 그다음 단계인 테두리 안의 선을 그리는 연필 놀림은 거침이 없었다. 연필로 밑그림을 완성한 후에는, 그 위에 검은색 색연필을 덧입히고, 색연필로 색칠을 시작했다.
내가 봐도 흡족한 퀄리티의 모방 그림이 완성되면 이루 말할 수 없는 뿌듯함과 희열이 밀려왔다. '어쩜 이렇게 똑같이 그렸지!' 싶은 날이면 인쇄된 원본과 내가 그린 그림을 몇 번이고 번갈아 보며 흐뭇한 미소를 짓곤 했다.
미처 다 그리지 못한 그림은 집에서 마저 완성해야 했고, 다음 날이면 새로운 그림을 따라 그려야 했다. 가끔 집에 가져가서 숙제를 하고 있으면, 엄마가 다가와 한 장, 한 장 그림을 살펴보시며 "참 똑같이도 그렸네!"라며 칭찬해 주시곤 했다.
한 학기 내내 따라 그리기 연습을 했으니 공책이 몇 권은 쌓였고, 쌓여가는 공책들은 나만의 소중한 보물이었다. 좋아하는 데다가 잘하기까지 했고, 심지어 그걸 꾸준히 했을 때 느끼는 성취감은 특별한 것이었다. 이 완벽한 삼박자가 갖춰진 경험은 슬프게도 그 이후로는 전무후무하다. 그 시기 나의 장래희망은 당연하게도 화가였지만, 꿈 많은 초등학생 시절 한순간 품었다 잊은 직업 중 하나일 뿐이었다. 하지만 어쨌든 그때의 경험 덕분에 '나는 따라 그리는 건 잘한다'라는 몇 안 되는 긍정의 불변적 확신이 내 안에 또렷이 자리 잡게 되었다.
살면서 자존감이 떨어질 때마다 유튜브에서 봤던 '자기 확언'은 따라 해도 별 소용이 없더니, '나는 따라 그리는 건 잘한다'라는 확언은 경험에 근거한 강력한 믿음이라 그런지 몰라도 가뭄에 콩 나듯 그림을 그리는 순간마다 빛을 발했다.
작년 여름, 온 가족이 오랜만에 모여 팥빙수 맛집에 갔다. 그곳은 갤러리 카페를 겸하고 있었는데 카페 한쪽 테이블에 스케치북과 연필이 놓여 있었고, 카페를 다녀간 사람들이 남긴 낙서가 그려져 있었다. 카페에 전시된 그림들을 둘러보다가 문득 '뭘 좀 그려볼까'하는 충동이 들었다.
우리 가족 6명이 테이블에 앉아 팥빙수를 먹으며 이런저런 얘기를 하는 동안, 나는 조용히 맞은편에 앉아 있던 친오빠의 못생긴 얼굴을 몰래 따라 그리기 시작했다. 대충 5분쯤 걸렸을까, 그림을 완성해 테이블 위에 올려두었다. 특징을 잘 잡은 완성도 높은 그림에 오빠는 짜증 난 표정을 지었고, 새언니는 집에 가져가야 겠다며 좋아했다. 엄마는 "얘가 초등학생 때 그림을 참 잘 그렸어"라며 엄마와 나, 오직 둘만 아는 모방 그림 천재 시절의 이야기를 꺼내셨고 나는 오빠의 반응이 즐거워 낄낄대며 웃었다. 언니는 그림이 그려진 종이를 소중히 챙겨 갔고, 다음 가족 모임에서 그 그림을 액자로 걸어두었다는 말을 전해주었다.
최근 이사를 하고 가구와 인테리어 소품을 앱에서 찾아보고 있다. 요 전날, 흔히 재물과 행운을 가져온다고 하여 식당에서 쉽게 볼 수 있는 해바라기 그림을 우연히 보게 됐다. 내가 본 그림은 해바라기를 정교하게 묘사한 정물화가 아닌, 몇 가지 색과 단순한 선으로 그려진 귀여운 해바라기 그림이었다. 그 그림이 주는 키치한 느낌이 마음에 들어서 배송비 포함 1만 4천 원에 사볼까 잠시 고민을 했다가, 그냥 내가 그려보자 싶었다.
몇 년 전 별안간 꽂혀서 다이소에서 샀다가 딱 한 번 쓴 적 있는 스케치북과 크레파스를 꺼내 들고 따라 그리기 시작했다. 네 개의 원을 그리고 그다음엔 해바라기 잎, 줄기 순서로 크레파스를 정신없이 색칠했다. 90년대 크레파스 값보다 저렴하지 않을까 싶은 3천 원짜리 크레파스는 좀만 그려도 크레파스 부스러기가 엄청 나와서, 다른 색을 칠할 때 색이 겹쳐져 뭉쳐지지 않도록 중간 중간 계속 쓰레기통에 버려야 했다. 또 부스러기는 왜 이렇게 잘 떨어지지 않은지, 입으로 불어도 잘 떨어지지 않았다.
워낙 단순한 그림이라 마구 색을 칠하다 보니, 손가락 지문마다 크레파스가 얼룩덜룩 묻어 있었다. 언제인지도 아득한 어렸을 적 미술 시간의 기억이 떠올라 반가웠다. 미술 시간이 끝나고 화장실에서 손을 씻을 때면 세면대에 흐르던 구정물도 오랜만이었다.
이윽고 그림은 완성되었고, 이로써 나는 1만 4천 원을 번 셈이 되었다. 이대로 현관문에 붙여둘까 싶었는데, 갑자기 그림이 마음에 들지 않았다. 너무 비슷해서였다. 예전 같았으면 비슷하게 따라 그리는 것만으론 충분했겠지만, 이제는 아니다. 아무리 따라 그린다 해도 뭔가 나만의 것이 더해져야 한다. 이건 '내가' 따라 그리는 그림이니까.
나는 비슷한 색깔의 크레파스를 몇 개 더 집어 들고 색깔을 뭉개고, 선의 경계를 흩트렸다. 이 정도로 만족할 수밖에 없었지만, 현관문에 그림을 붙여놓으니 이전보다 훨씬 보기 좋았다.
해바라기는 태양을 향해 고개를 돌리는 꽃이라 희망, 긍정적인 에너지, 변치 않은 사랑을 의미하기도 한다. 이 그림이 재물과 복을 불러준다면야 참으로 감사하겠지만, 욕심 많은 나는 여기에 하나를 더 덧붙여 본다. 부디 나를 잃지 않고 나다움으로 살아갈 수 있는 힘을 달라고. 자신을 너무 사랑한 나머지 물속으로 빠져 죽게된 나르시스가 아닌, 태양을 향해 자신을 활짝 드러낸 담대함으로 삶의 여정을 채울 수 있도록 도와달라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