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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이는 왜 우릴 빡치게 하나

by 리틀 골드문트

시아버지 생신과 친정아버지의 생신이 하루 차이라, 지난 주말 양가에서 시간을 보냈다. 토요일은 시댁과 시간을, 일요일은 친정에서 시간을 보냈다.


늘 느끼는 거지만 아버지들의 생신 선물을 고르는 건 너무 어렵다. 흔히 떠올릴 수 있는 운동화, 지갑, 벨트 같은 것들은 이미 해드렸고 다행히 잘 쓰고 계신다. 건강기능식품이나 영양제는 기존에 드시고 있는 것들이 있고, 나이가 나이인만큼 몸의 어디가 안 좋은지 잘 아시기 때문에 새로운 걸 챙겨 드리기도 애매하다.


취미와 관련된 선물도 좋겠지만, 안타깝게도 1950대에 태어난 우리 아버지들은 특별한 취미가 없으시다. 먹고 살기 바빴던 우리 부모님세대들이 대게 그럴 것이다. 어려서부터 봐온 우리 아빠의 삶은 매우 단순했다. 평일엔 아침 일찍 출근하시고, 퇴근 후엔 엄마가 정성스레 차린 저녁을 드신 뒤 뉴스나 신문을 보셨다. 주말이면 엄마표 도시락을 들고 가족끼리 등산을 가거나 친구 가족들과 캠핑을 다녔다. 아빠의 유일한 취미는 자동차였다. 운전하는 걸 좋아하셨고 틈만 나면 주차장에 가서 차를 닦고 바닥 매트 먼지를 털며 청소를 하셨다. 차를 애지중지 관리해 주신 덕분에 우리 가족의 1호 자동차인 '무쏘'는 20년이 넘는 시간을 우리와 함께할 수 있었다. 하지만 이제 아빠는 일흔을 넘겼다. 운전할 기회도 별로 없을뿐더러, 안전을 위해 운전면허증을 반납해야 할 나이가 되셨다.


늘 기존과 다른 것을 고민해야 했던 마케터의 직업병 때문에 양가 부모님의 생신이 다가올 때면 '작년과 어떻게 다르게 할까?'를 고민하게 된다. 대단한 것이 아니더라도, 작년에 먹었던 음식과는 다른 것, 작년에 샀던 케이크와는 다른 것, 생신을 기념해 적당한 즐거움과 적당한 행복감을 드릴 수 있는 방법이 뭔지를 고민하게 되는 것이다. 올해는 두 아버지께 법륜스님의 '인생수업'이라는 책을 똑같이 준비해 드렸다.


요즘엔 잘하지 않지만, 나는 책선물을 좋아한다. 상대방의 마음 상태를 살폈다가 그 마음에 도움이 될 만한 책을 찾아보기도 하고, 내가 상대방에게 전하고 싶은 말을 책을 통해 전달하기도 한다. 가까운 사이일수록 말보다는 글의 힘이 더 크다고 믿기 때문이다. 가까운 사이일수록 대화에 감정이 섞여 상처를 주고받기 쉽고, 익숙한 사이라는 이유로 상대의 말을 귓등으로 흘려듣기도 쉽다.


나는 인간관계에 있어 방어적인 편이다. 내 감정을 노출하면서 대화하는 게 불편하다. 감정을 적당히 표현하는 법은 회사에서 일하면서, 결국 회사 생활도 인간관계라는 걸 깨닫고 나서였다. 하지만 일터를 벗어나 친구와 가족과의 관계에서는 여전히 어렵다. 지나가는 인연이라면 무시하고 카카오톡 차단 리스트에 올리거나 회사 동료라면 적당히 거리를 두면 되겠지만, 상대가 가족이라면 더 복잡하고 어려운 감정이 든다. 그래서 나는 가족과의 관계에서 나를 지키면서도 상대방이 내 입장을 이해하도록 간접적으로 소통하는 방법으로 책을 선택한다. 종종 시댁 어른과 부모님께 내가 좋아하는 '진짜 어른'들의 책을 드린다.


초판이 출간된 지 13년이 넘었다는 이 책을 고른 또 다른 이유는, 노년에 대한 법륜스님의 지혜가 녹아있기 때문이다. 심리학에서 '노년기 우울증'이라는 용어가 있듯이, 부모님들께서도 노년의 단계로 접어들면서 부쩍 울적해하신다. 결혼 후 시어머니를 뵐 때마다, 줄곧 "시간이 너무 빨라", "이렇게 나이 한 살 또 먹었네", "너희 나이 왜 이렇게 많니"라는 말씀을 자주 하신다. 친정 아빠는 언젠가부터 체중 변화에 민감해지셨고, 얼굴살이 쪘다는 말을 반갑게 들으신다. 예전엔 운전 중 시비가 붙으면 상대 운전자와 함께 열을 올리며 쌍욕을 해서 뒷좌석에 앉은 어린 나를 무섭게 만들었던 다혈질의 아빠는 이제 조금씩 기운이 빠져간다. 그럴 때면, 노사연의 '바램'의 가사처럼 "늙어가는 것이 아니라 조금씩 익어가는 거예요"라고 말씀드리고 싶지만 내 말이 얼마나 당신들 귀에 들릴까 싶어 속으로만 생각하고 말았다. 하지만 법륜스님의 이야기라면 좀 더 편안한 마음으로 받아들이시겠지 싶은 마음이다.


노년에 대한 부모님의 우울함은 내게도 꽤 부정적인 영향을 준다. 나이를 먹어가는 것에 대한 울적함은 노년에 좀 더 강도가 있을 뿐이지 살아가는 모든 인간에게 다소 예민한 주제이다. 여자로 태어났으니 여자 나이에 대한 이야기를 하자면, 내가 '나이'를 부정적으로 인식하기 시작한 때는 25세가 되면서부터였다. 누가 만들었는지 모르지만, 참 개소리이기 그지없는 '꺾이는 나이 25세'가 간혹 들려왔다. 그리고 대학 졸업 후 26세가 되면서 나이에 대한 조바심을 본격적으로 느꼈다. 공무원 시험 준비와 같이 특별한 사유가 있지 않은 여자 신입사원 26세는 좀 애매한 나이였다. 빨리 신입사원이 되어 경력을 쌓아야겠다는 마음으로 어느 중소기업에 입사했다.

다음 고비는 30세를 목전에 앞둔 29세였다. 앞자리가 바뀌는데 모아놓은 돈은 없고, 중견 기업과 대기업에 간 친구나, 엄마 친구의 누구 딸은 벌써 1억을 모았다는 소리가 들려왔다. 나는 첫 번째 회사에서 최저시급도 안 되는 돈을 받으며 2년 반 가까이 일하고 숨도 못 쉴 만큼 몸이 아파 퇴사하고 1년 가까이 요양하며 은행 잔고는 바닥이 나 있던 상황이었다. 두 번째 회사에 입사할 즈음엔 정말로 돈이 한 푼도 없어서, 입사 첫날 옷 사 입을 돈이 없어 신용 카드를 처음 만들었다.


그러다 30대 초가 넘어가면 '결혼'에 대한 고민이 생긴다. 주변에서 결혼하라는 소리가 들려온다. 어찌저찌 결혼자금을 마련해서 맞벌이 생활을 하고 있으면 이번엔 '출산' 이슈가 따라온다. 친정 부모님은 내가 노발대발할 것을 아시기에 말을 아끼시는 듯 하지만, 올해 들어 시아버지는 뵐 때마다 아이 얘기를 꺼내시기 시작하셨다.


모르겠다.

나이 듦을 서글퍼하는 어른들이 나이에 맞게 뭘 하라고 말씀하시는 것들이 내게 긍정적인 영향을 줄리가 없고, 기레기들이 연예기사 제목으로 쓴 '000, 50대에도 빛나는 몸매'로 나이 후려치기 하는 제목들을 보면 역겹기 짝이 없고, 요즘 들어 SNS 피드에 중년 여성들이 춤을 추며, '20대? 아니에요, 30대? 아니에요 40대예요!'라며 동안을 자랑하는 게시물이 자꾸만 보이고, 그런 게시물 댓글엔 '아줌마, 그 나이 같아 보여요'라는 글을 볼 때면 이 나라가 나이에 미친 거 아닌가 싶다. 안 그래도 나이 먹는 건 썩 유쾌하지 않은 일인데, 사방에서 나이를 들먹이며 사람을 들들 볶고 우울하게 만들어 돌아버리게 만든다.


유한한 인간이 나이를 의식하고, 되도록 젊음을 유지하고자 하는 건 본능적이고 자연스러운 현상이다. 나도 되도록 얼굴이 처지지 않았으면 좋겠고 자궁 나이를 젊게 유지하면 좋겠다. 하지만 나이 드는 것이 무서워서 현재를 불안하고 초조하게 살아서 오늘 누려야 할 즐거움과 행복을 놓치는 건 너무도 아깝다. 나를 위한다는 명분으로 나이의 잣대를 들이대거나 다 함께 젊어지자는 좋은 취지였다며 내 나이를 위기로 몰아세우는 장삿속이 불쾌하다.


이러나저러나, 부모님들 생신이 되면 바라는 건 두가지다.

"부디 건강하게 오래 사세요. 그리고 제 인생은 제가 알아서 할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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