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목구멍에서 심장소리가 들렸다

by 리틀 골드문트

봄이니까, 좋아하는 걸 생각해보자

날이 따뜻해지니 마음이 들뜨고, 뭔가 새로운 걸 시작하고 싶어진다. 작년 크리스마스에 느꼈던 일말의 설렘은 약 3개월의 공백기를 거쳐, 봄바람을 만나 다시금 피어오른다.


새롭게 결심하기 좋은 때가 새해 1월 1일, 혹은 좀 더 봐줘서 구정 새해인 설날이라고 하지만, 오히려 봄이야말로 자연스럽게 무언가를 시작하기 좋은 시기다. 우리는 단군신화 속 100일간 쑥과 마늘을 먹으며 마침내 웅녀가 된 곰의 자손 아닌가. 겨울잠을 깨어난 곰처럼, 봄바람을 맞으며 '내가 정말 좋아하는 것이 뭘까'를 생각해본다.


좋아한다는 건, 참 자연스러운 일인데

최근 유튜브 피드에서 방송인 타일러 라쉬가 한 예능에 나와 말한 내용 중 일부를 담은 영상을 봤다. 그는 한국인들이 걱정된다고 했다. 진로와 관련된 강연을 많이 하는 그는, 학생들로부터 "좋아하는 거를 어떻게 찾아요?"라는 질문을 많이 듣는다며, 이것이 충격적이라 했다. 좋아하는 건 인간에게 자연스러운 일인데, 어떻게 찾아볼 수 있을지조차 모른다는 게 참 안타깝다는 것이다.


인간에게 본능적인 감정인 '좋아함'이, 정답을 요구하는 사회에서 살아오면서 찾는 방법을 알아야 할 문제로 변모한 것 같다. 우리는 좋아하는 것을 진정 경험할 기회를 얼마큼 가져보았나? 다른 목적을 위한 수단으로 취급한 것은 아니었을까?


10대 때에는 진로를 어떻게 정해야 할지 정답을 찾기 위한 수단으로써 좋아하는 게 뭘까를 고민했다면, 20대 때에는 어떤 직업을 가져야 할지 결정하기 위해 좋아하는 것에 대해 생각했다. 그러다 30대에는 문득 찾아오는 '이 길이 정말 맞는 길'인지의 대한 자문의 답을 찾는 과정에서 고민해 본다.

'그래서 내가 좋아하는 게 뭔데?'


좋아하는 것은 시기와 나이에 따라 자연스럽게 변화해 왔다. 고민했었던 타이밍마다 때때로 내가 뭘 좋아하는지 깨닫기도 했고, 좋아하는 일을 해보고자 애썼던 시간도 있었다. 하지만 삶은 내 뜻대로 흘러가지 않았을뿐더러, 당장의 생계가 급급할 때는 좋아하는 것을 탐색해 보는 것이 할 일 없는 베짱이의 신선놀음같이 느껴지기도 했다.


그러다 보니 '좋아한다'는 감정의 순수함이 점차 희미해지고 복잡한 조건이 따라붙기 시작했다. 단순히 내가 좋아하는 것이 아니라, 남들이 봤을 때 허황되거나 씨나락 까먹는 소리가 아니어야 하고, 장기적으로 봤을 때 수익까지 담보할 수 있는 것이어야 했다. 그래서 직장인 허언 3대장 중 하나로 '내가 좋아하는 걸로 유튜브 하면서 돈 벌 거야'가 있는 것 아닐지.


내 마음을 조금이라도 들썩이게 한다면

MBC PD였던 김민석 작가님이 유튜브 채널, '지식 인사이드'에서 한 말이 인상적이다.


"저는 좋아하는 것을 찾는 방법으로 '3미'를 하라고 합니다. ①흥미 ②재미 ③의미. 흥미가 있다는 것은 먹고사는 문제와는 전혀 상관없는 일입니다. 나의 흥미가 어디에 있는지 찾아보고 거기에서 지금 당장 내가 할 수 있으면 시도해 보는 거예요. 그게 재미있으면, 계속하게 돼요. 내가 흥미를 느끼고 재미있어서 계속 반복하게 되는 일은 잘하게 되고 그것은 나중에 내 삶에 의미를 만들어줍니다. 그래서 순서가 중요합니다. 의미는 맨 끝에 옵니다. 즉, 가장 중요하지 않아요. 흥미를 찾아서 재미있게 하다 보면 그 자체로 의미가 생겨나요."


흥미(興味)라는 단어를 풀어보면 그 뜻 자체가 흥미롭다.


- 흥(興) : 일어날 흥, 북돋을 흥 → 감정이 일어나고, 관심이 생기는 것.

- 미(味) : 맛 미 → 즐길만한 요소가 있는 것.

즉, 흥미(興味)는 '마음이 들썩이게 만드는 요소'다. 하루를 보내면서 내 마음을 들뜨게 하는 것. 예를 들어 내가 유튜브에서 가장 많이 검색하는 주제, 릴스나 쇼츠의 영상을 무작정 넘기다가도, 눈을 멈추고 집중해서 보게 되는 콘텐츠, 친구들과의 대화에서, 내가 가장 신나게 말하게 되는 주제 말이다.

이처럼 흥미는 애써 찾으려 하지 않아도, 이미 내 일상 곳곳에서 자연스럽게 드러나는 것이다.


좋아한다고 했지, 잘한다고는 안 했습니다만!

증명해야 하는 시대, 왜곡된 '좋아함'의 가치

대화하다 주제가 취미나 좋아하는 것으로 흐를 때, 나는 종종 "영어 배우는 것을 좋아한다"라고 말한다. 그러면 열에 여덟은 "오, 영어를 잘하시나 봐요?"라고 되묻는다. 그럼 나는 멋쩍게 웃으며 대답한다. "잘한다기보다는 그냥 좋아하는 거예요"

좋아하는 것을 하다 보면 언젠가 잘하게 될 수도 있겠지만, 많은 사람들이 '좋아한다=잘한다' 동일 선상으로 생각하곤 하는데, 그러면 나는 항변하고 싶어진다. "좋아하는 거와 잘하는 건 아예 다른 겁니다!"라고.

누군가 '운동이 취미예요'라고 했을 때, 듣는 사람은 은연중에 늘씬하고 탄탄한 몸매를 기대하고, 말하는 사람은 그런 기대를 충족하지 못하게 될 때 본의 아니게 실망을 주는 입장이 된다. 그럼 좀 억울한 상황이 되어버린다.


이러한 현상의 배경에는 단순히 좋아하는 것에서 그치는 게 아니라, 다른 사람에게 인정받을 만한 취미가 중요해진 사회적 분위기도 한몫한다. 단순히 "커피를 좋아해요"라고 말하면 별 반응이 없지만, "바리스타 자격증이 있어요"라고 하면 "와, 대단하시네요!"라고 인정받는 느낌. 취미마저도 남들에게 인정받아야 하는 시대인 것이다.


이러니 골프를 좋아한다고 하면, 90타 이하의 실력은 돼야 말할 수 있을 것만 같고, 러닝이 취미라고 하면, 러닝 크루 활동쯤은 하고 있어야 인정받을 것만 같다.

좋아하는 것은 원래 사적이고 자유로운 감정이어야 하거늘, 이제는 타인에게 '진짜 좋아한다'라고 어필해야만 진짜 취미로 인정받는 것 같다 보니, 취미를 시작하기도 전에 부담이 될 지경이다.


하지만 정말 그래야만 할까?

좋아하는 감정은 원래 '나'를 위한 것이어야 한다. 우리는 타인의 인정이나 잘해야 한다는 부담감을 내려놓고, 그 순간의 흥을 즐기는 것에서부터 시작해야 한다. 자격증이 있든 없든, 기록이 있든 없든 내가 즐기면 그만인 것을!


목구멍에서 심장소리가 들렸다

그러니 내 마음의 감정들이 올라오는 그 순간을 발견하고 주변에 마구 공유하자. 최근에 고등학교 동창들을 만나서, 나는 이런 얘기를 했다.

"그 왜, 목구멍에서 심장이 두근거리는 그 느낌 알아? 나 요즘 어학원에서 영어 독서 토론 수업 듣고 있잖아. 각자 책을 읽고 와서, 인상 깊었던 내용과 주제에 대한 의견을 나누거든. 이 수업이 뭐가 좋냐면, 혼자 읽을 때는 미처 생각하지 못했던 부분들이 대화를 하면서 확장하는 순간이 있어. 다른 사람의 의견이 내 사고를 확장시켜 주는 순간 말이야. 그때, 심장이 가슴이 아니라 목구멍에 있는 것처럼 목구멍이 두근두근 하면서 막 아파. 내 생각을 빨리 말하고 사람들과 더 심도 있는 대화를 하고 싶어서. 그런 느낌은 대학생 때 전공 수업 이후로 진짜 오랜만이었는데 정말 행복하더라."


동창들은 그게 무슨 소리냐며 날 특이한 인간 취급했지만, 아무래도 그건 상관이 없었다. 좋아하는 건 내 안에서 일어나는 감정이니까. 그것을 타인에게 이해시킬 필요도, 증명할 필요도 없다. 그냥 내가 즐기는 그 순간을 즐기면 된다.


知之者 不如好之者, 好之者 不如樂之者.

지지자불여호지자, 호지자불여락지자.


공자는 ‘아는 사람은 좋아하는 사람을 이기지 못하고, 좋아하는 사람은 그것을 즐기는 사람을 이기지 못한다’고 했다. 이 명언대로 그는 배움을 강조한 학자가 아니라 배움을 즐긴 실천가로서의 삶을 살았다. 그리고 후대에 4대 성인 중 한명으로 칭송받았다. 범인인 나는, 결국 돌고 돌아 현인의 지혜를 다시금 마주한다. 어쩌면 내 심장소리는 바보 같은 주인을 만나 심장이 아닌 목소리에서 그렇게 울었나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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