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동안호소인은 조롱하고 저속노화엔 박수치는 사회를 보며

by 리틀 골드문트

인스타그램 속 '동안 호소인' 콘텐츠를 보며

요 몇주 동안 인스타그램 릴스에서 눈에 띄는 패러디 콘텐츠가 있다. 일명 '동안 호소하는 아줌마' 콘텐츠를 풍자하는 영상들이다.


'제 나이 맞춘 사람 아무도 없어요'

'35살? 28살? 25살? 아니에요. 47살!'

이런 식의 흐름을 따라가며, 자신이 실제 나이보다 어려 보인다는 반응을 유도하는 콘텐츠다.


문제는, 이 콘텐츠들이 반응을 얻긴 하지만, 창작자가 의도하는 긍정적인 반응보다는 조롱의 대상이 되고 있다는 점이다. '동안 호소인'이라고 명명된 단어에서 알 수 있듯 이 콘텐츠를 따라하는 영상들의 조롱 포인트는 '어려보이지 않는데 어려보인다고 착각하는 아줌마'에 대한 엄격한 외모 검열과 냉정한 반응이 자리하고 있다.


'동안 호소인' 콘텐츠가 자꾸만 피드에 보여서 은근히 짜증났던 것도 사실이고, 그런 콘텐츠에 시원하게 사이다를 날리는 조롱물을 보고 웃었던 것도 사실이다. 하지만 그 조롱 콘텐츠마저 피드에 반복적으로 노출되니, 문득 이런 생각이 들었다.

'우리 모두 사실 이 콘텐츠에 조금씩 긁힌 게 아닐까?'


나이를 의식하게 되는 한국사회에서, 하루를 마무리하며 무심코 켠 릴스 속에서 누군가가 동안을 주장하는 영상을 마주하며 우리 모두 일정 수준의 피로와 스트레스를 느꼈던 것 같다. 그래서 이렇게 조롱하고, 공감하고, 웃는 걸지도.


동안은 어떻게 미적 기준이 되었나

한국 사회에 '동안'이라는 키워드가 하루 아침에 짠 하고 등장한 건 아니다.

그 뿌리는 90년대 후반 HOT, SES, 핑클과 같은 1세대 아이돌들의 등장하면서 시작됐다고 볼 수 있다. 이들이 보여준 멋진 실력과 앳된 외모가 긍정적으로 소비되기 시작했고 이후 2세대, 3세대, 현재 4세대 아이돌에 이르기까지 아이돌이 K팝과 대중문화를 대표하게 되면서 외적으로는 성숙한 몸에 반하는 아이같이 앳된 얼굴이 미적 기준으로 자리잡게 되었다.


2010년대에 들어서며, 동안 트렌드는 실현 가능한 아름다움이 되었다. 성형외과의 기술이 발전하고, 미용 시술이 대중화되면서 사람들은 자기 관리 리스트에 동안을 추가하기 시작했다.


과거 중년들이 이마 주름 개선을 위해 시술했던 보톡스가, 이제는 20~30대가 각진 턱을 없애고 계란형의 동안 얼굴을 만드는 용도로 더 빛을 발하고 있다. 유명한 시술들 중 하나인 인중의 길이를 줄여 얼굴을 동안 비율로 만들어준다는 '인중축소 보톡스', 정면에서 귀를 더 크게 보이게 만들어서 얼굴이 작아 보이는 효과를 준다는 '요정귀 필러' 모두 동안을 강조하는 시술이다. 동안을 위한 시설은 점점 더 다양해지고 있다.


여기에 더해, 90년대 아이돌이 40대가 된 지금까지도 변함없이 '그 시절 얼굴'을 유지하고 있으니, '20대 같은 40대', '30대 같은 40대'가 더 이상 놀라운 일이 아니게 되어버렸다. '나이에 맞게 익어간다'는 멋진 표현이 관리 안 한 사람의 변명처럼 들릴 지경이다.


사회적 생존 전략으로서의 동안

동안은 뷰티 트렌드만이 아니다. 한국 사회의 문화적, 사회적, 경제적 맥락과 깊이 연결된 현상이기도 하다.


이 혼란스러운 전환기를 우리는 몸소 겪고 있다. 기존의 수직적이고 권위적인 기업 문화는 점차 수평적이고 협업 중심의 조직 문화로 바뀌고 있다.

과거에는 연차가 곧 위엄이 되었고, 리더는 나이에서 나오는 중후함과 무게감으로 인정받았다. 노련한 인상, 묵직한 말투, 근엄한 얼굴이 리더의 덕목 중 하나였다.


하지만 지금은 다르다. 새로운 리더에게 요구되는 조건은 '권위'보다 '유연함', '지시'보다 '소통'이다. 이제 리더는 젊은 세대와 감각적으로 어울릴 수 있어야 하며, 경직되지 않고 열린 태도를 갖춰야 한다.


이 변화 속에서 '젊어 보이는 얼굴'은 새로운 리더십의 징표처럼 작동하기도 한다. 단지 미용의 영역이 아니라, "나는 여전히 감각 있고, 유연하며, 당신들과 소통할 수 있는 사람입니"라는 사회적 언어이기도 하다.


한편, '동안'은 여성에게 더욱 복합하게 작용한다. 여성의 사회 진출이 활발해지고 커리어를 중시하는 흐름이 자연스러워지면서, 결혼과 출산의 시기는 점점 뒤로 밀려날 수밖에 없다.


이에 따라 여성은 ‘결혼 적령기’, ‘노산 위험’ 같은 시간적 제약을 끊임없이 상기할 수밖에 없다. 이런 구조 속에서, 많은 여성들은 자신을 ‘여전히 젊다’고 증명해야 할 필요를 느끼기도 한다.


남여를 떠나, 외모지상주의를 살고 있는 현실에서, 어려보이는 외모는 경쟁력 높은 생존 전략 중 하나가 된 것은 분명해 보인다.


저속 노화 역시 동안의 또 다른 이름일 뿐

동안은 다양한 이름을 거치며, 외면뿐 아니라 내면까지도 장악하고 있다.


2010년대에는 베이비 페이스+글래머를 의미하는 '베이글녀'라는 단어가 심심찮게 들렸고, 뷰티 업계에서는 '동안 메이크업', '투명 메이크업'이란 키워드로 제품을 판매하기도 했다.


최근에는 저속노화(슬로우 에이징)가 동안의 또다른 이름이 아닐까 싶다. 표면적으로는 '건강하게 늙어가는 것'을 의미하고, 그 안에 담긴 콘텐츠도 유용하지만, 그 핵심에는 여전히 '늙어 보이고 싶지 않다'는 '안티 에이징'의 욕망이 강력하게 자리한다.


이 감정은 사회 전반으로 확산되며, "어려 보이세요"라는 말은 이젠 "정말 예쁘세요" 못지 않은 최고의 찬사로 자리 잡았고, 성별을 가리지 않고 동안은 이제 외모 중심 경쟁 사회에서 가장 강력한 경쟁력으로 기능하고 있다.


저도, 젊음이 부럽습니다

최근 새로운 분야에 도전하며, 업계 동료 한 명과 오프라인에서 처음 만났다. 그녀는 상냥하고 밝은 분위기의 사람이었고, 온라인에서 느꼈던 인상 그대로였다. 어쩐지 나보다 어릴 것 같다고 생각했는데, 실제로는 더 어렸다. 나와 일곱살 차이였다.


30대인 내가 결코 나이가 많은 것은 아니지만, 막상 상대가 나보다 7살 어리다고 생각하니 미묘한 감정이 찾아왔다.


회사에서는 대게 나보다 나이가 많으면 나보다 연차 또는 직급이 높았고 나보다 나이가 어리면 그 반대였다. 나보다 일곱 살 어린 후배들은 나를 좀 어려워해했고, 나도 그걸 씁쓸하게나마 받아들였다.


하지만 새로운 업계에서는 그런 위계가 무의미하다. 내가 지난 10년간 사회에서 얼마나 열심히 살았고, 어떤 성과를 냈는지, 어떤 통찰을 키웠는지는 크게 중요치 않다.


그래서 모든 것이 낯선 새로운 분야에서는 마치 회사생활을 처음 시작하던 그 시절로 되돌아간 기분이 들었다. 단지, 이제 더 나이가 들었을 뿐.


그래서였을까. 그녀의 나이를 듣는 순간 그녀의 젊음이 부러웠던 건. 그녀가 참 좋은 사람인 걸 알면서도, 동시에 스스로 졌다는 느낌을 품었다.


그날 이후, 복잡한 감정이 오래도록 마음에 남았다. 나 역시 나이라는 족쇄를 찬 여자라는 걸 절감했다.


서른이 되었을 때, 이십대 중반의 후배들을 보며 부러워했던 내가 떠올랐다. 그때의 나를, 지금의 내가 아기처럼 바라보듯, 몇 년 후의 나도 지금의 나를 그렇게 바라보게 될까? 나는 내가 쌓아온 역사가 있고, 그게 밝게 빛나는 노란색은 아닐지라도, 다채로운 감정과 경험이 스며든 짙고 깊은 색이라는 걸 안다.


그래서 나는 충분히 괜찮고 멋지다고 스스로 되뇌었다.

keyword