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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정소정 Oct 30. 2022

꿈꾸던 영지의 주인이 된 로빠힌

서울시립대 영화동아리 선배 방개오빠



저는 새벽 4시에 일어나 아침부터 밤까지 일을 합니다. 언제나 제 돈뿐만 아니라, 남의 돈도 가지고 있어서 주변 사람들이 어떤지 보고 있습니다. 정직하고 고상한 사람들이 얼마나 적은지 알려면 무슨 일이든지 시작하기만 하면 됩니다. 때로 잠이 오지 않을 때는 생각합니다. "하느님, 당신은 저희에게 거대한 숲과 무궁한 벌판과 깊이를 모르는 수평선을 주셨습니다. 그리하여 여기 살면서 저희는 진짜로 거인이 되어야만 합니다......" 

- <벚꽃동산> 안톤 체홉 저, 한길사




요즘은 어떤지 모르겠지만, 내가 대학생이었던 시절엔 신입생들은 학기초에 어던 동아리에 들어갈지 꽤나 신중하게 고민했다. 서울시립대 경제학부 01학번이었던 나도 예외는 아니었다. 경제학부 동기들과 함께 삼삼오오 모여 동아리방이 모여있던 학생회관 건물의 거의 모든 문을 열고 닫았을 정도였다. 그 많은 동아리 방 중에서 가장 어둡고 습한 지하 구석에 위치한 한울빛은 문을 여는 순간부터 발길을 돌리고 싶을 만큼 최악이었다.


좁고 어두운 동아리 방 한가운데 놓여있는 큰 테이블 위에는 술병이 나뒹굴고 있었고, 술이 덜 깬 얼굴에 비니를 눌러쓰고 얼굴에는 피어싱이 여러 개 박혀있는 키가 크고 얼굴이 검은 선배가 낮은 목소리로 이곳은 영화동아리라는 설명을 마지 못 해 해주었다. 금연이라는 개념 자체가 없는지 동아리방 안에서 모두들 아무렇지 않게 담배를 피고 있어서 숨 쉬기가 힘들었다. 나와 함께 그곳에 들렀던 친구들은 모두 이곳만큼은 절대 안 된다며 나를 말렸었다. 그럼에도 나는 그곳을 그 날 저녁 또 찾아갔는데, 그 피어싱 선배가 알려준 학술세미나라는 것이 궁금했기 때문이다.


그 밤, 나는 그곳에서 내 인생 처음으로 기타노 다케시를 만났고 적잖이 충격받았다. 그 날 본 영화는 ‘소나티네’였는데, 그 때까지 내가 본 다른 어떤 영화와도 비슷하지 않았다. 독보적으로 폭력적이면서도 너무나 시적이었다. 각본, 연출, 연기까지 하나같이 낯설면서도 매혹적이어서 내심 영화감독이 되고싶다는 꿈을 가지고 있었던 내 심장은 터질 것만 같았다. 그 영화를 선택하고 영화와 감독에 대한 충실한 설명까지 해준 사람은 당시 한울빛 학술부장이었던 방개오빠였다.


방개오빠에게는 물론 부모님이 지어주신 이민석이라는 멋진 이름이 있지만, 나는 그 이름대신 방개라는 이 별명으로 지금까지 그를 부르고 있다. 왠지 그렇게 불러야만 그 사람이 내가 알던 바로 그 사람인 것만 같아서다. 좀 바보같고 많이 촌스럽지만 어쩔 수 없다. 방개라는 별명은 ‘불방개’에서 이름에 해당되는 부분이었다. 체형이나 생김새는 물방개같지만 성격이 워낙 불같아서 불방개로 불렸던 것이다.


당시 학술부장은 매주 세미나를 개최하고 매년 한울빛의 가장 큰 행사인 영화제를 기획 운영했다. 당시에는 쉽게 구할 수 없는 영화가 많아서 한울빛이 어렵게 구해온 영화들을 볼 수 있는 영화제가 꽤 인기가 있었다. 2001년, 바로 그 영화제를 준비하며 신입생이었던 나는 학술부장인 방개오빠와 함께 영사실에 있었는데, 그 때 그가 했던 이야기가 직금도 생생하다.


“야, 소정아. 지금 오빠 나이가 벌써 스물여섯인데 아직 이룬 게 하나도 없다. 너는 어려서 아직 시간이 많지만 오빠는-방개오빠는 ‘나는’이라는 주어보다는 ‘오빠는’이라는 주어를 선호하는 타입이었다-늙어서 이제 진짜 시간이 없어. 아직 맘에 드는 영화도 못 만들었고 진짜 아무것도 이룬 게 없는데…”


텅 빈 극장에는 피오나애플의 ‘Across the Universe’가 울려퍼지고 있었다. 그녀의 우주 속 별처럼 몽환적인 목소리와 방개오빠의 회한에 가득한 목소리가 대조를 이루고 있었다. 만약 그 순간이 영화 속 한 장면이었다면 그런 배경음악을 선택하는 감독은 없을 것이다. 그래서 그 장면은 더 없이 현실적이면서도 선명하게 내 마음에 남을 수 있게 된 건지도 모르겠다.


당시 겨우 스무 살이었던 나는 이상하게 영혼은 늙어버린 상태라 진심으로 스물여섯이면 아직 애기라고 생각하고 있었다. 아무래도 할머니 손에 자랐고, 할머니가 돌아가신 후에는 외할머니, 외할아버지, 노할머니, 이모할머니… 등등 온갖 노인들에게 둘러싸여 자랐기 때문이리라. 그래서 방개오빠의 한숨 어린 말들이 좀 이상하게 들리면서, 동시에 그런 면이 그 어떤 젊은이보다 더 젊은이답게 느껴지기도 했다. 나와는 정말 다른 사람인데, 당시에는 방개오빠가 스승이었으므로 그런 마음까지도 따라하고 싶었던 것 같다. 몇 년 뒤 내가 한울빛의 학술부장이 되었을 땐 ‘여자방개’로 불리기까지 했다.


방개오빠는 스물여섯 시절 그 마음처럼 지금도 이룬 게 없다고 생각하며 조금 더 큰 꿈을 꾸고 있을 게 틀림없다. 이미 보통 사람들은 하나도 성취하기 힘든 것들을 수없이 성취했으면서도… 그는 방송 피디를 거쳐 제작사 대표가 되었고, 직원 열 명도 채 안 되는 작은 회사를 이제 열 배, 스무 배 이상 몸집을 키우며 승승장구하고 있다. 그래서 방개오빠는 늘 바쁘다.


나는 체홉의 모든 소설과 희곡을 사랑한다. 그의 글은 읽고 또 읽어도 질리지 않는다. 그 중에서도 가장 좋아하는 작품은 ‘벚꽃동산’인데 이 작품에는 꼭 방개오빠를 닮은 야심가 로빠힌이 등장한다. 그는 자신이 거인이 아닌 게 한탄스러울 만큼 꿈의 크기가 크다. 그리고 그 꿈의 영토를 차곡차곡 자신의 것으로 만들어나갈 능력도 있었다. 어린 시절 하인의 아들이었던 그는 자본가가 되어 주인집과 그 집이 속한 영지를 모두 사들인다. 추억이 담긴 집을 종의 자식에게 팔아넘기게 도니 주인집 가족들의 이야기와 그 집의 수양딸 바랴와 로빠힌의 이어질 듯 말 듯한 사랑이 벚꽃동산의 주된 내용이다. 로빠힌은 바랴에게 끝끝내 고백하지 못 한다. 그는 누구보다 성공했지만 사랑에는 조금 서툴렀다.


연극이 끝난 뒤, 로빠힌의 인생 어느 지점에 다시 바랴를 사랑하지 않으리란 법도 없을 것이다. 또 바랴가 아닌 다른 여자를 만나 행복한 사랑을 했을지도 모르는 일이고. 방개오빠도 꼭 그랬으면 좋겠다. 벚꽃이 가득한 영지와 사랑 모두를 얻는 K드라마의 남자주인공처럼 행복한 남자가 되면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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