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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정소정 Oct 30. 2022

조카들을 지키는 호밀밭의 이모

나의 이모E



나는 늘 넓은 호밀밭에서 꼬마들이 재미있게 놀고 있는 모습을 상상하곤 했어. 어린애들만 수천 명이 있을 뿐 주위에 어른이라고는 나밖에 없는 거야. 그리고 난 아득한 절벽 옆에 서 있어. 내가 할 일은 아이들이 절벽으로 떨어질 것 같으면, 재빨리 붙잡아주는 거야. 애들이란 앞뒤 생각 없이 마구 달리는 법이니까 말이야. 그럴 때 어딘가에서 내가 나타나서는 꼬마가 떨어지지 않도록 붙잡아주는 거지. 온종일 그 일만 하는 거야. 말하자면 호밀밭의 파수꾼이 되고 싶다고나 할까. 바보 같은 얘기라는 건 알고 있어. 하지만 정말 내가 되고 싶은 건 그거야. 바보 같겠지만 말이야.

- <호밀밭의 파수꾼> J.D.샐린저 저, 민음사



E 이모는 우리 엄마의 다섯 명의 동생 중 네 번째이자, 두 명의 여동생 중에는 둘째로 엄마와는 열다섯 살 터울이고, 나보다는 ㅇㅇ살 많다. 내 기억 속 이모는 피부가 희고 웃을 때 보조개가 들어가는 둥근 얼굴에 큰 뿔테 안경을 끼고 입을 열면 다른 어른들과는 조금 다른 말을 해서 어린 나는 이모가 오면 호기심에 귀를 쫑긋할 수밖에 없었다.


어려서 나는 입이 짧다 못 해 뭐만 주면 “안 먹을래요.” 소리부터 하던 아이였다. 엄마는 내 밥을 먹이려고 먹어라, 먹어라 하다가 결국 못 참고 매질을 하셨다. 어떤 때는 다 먹을 때까지 방문을 잠그고 회초리질을 하다가 밥그릇이 비어야 문을 열어주셨다. 그런 내가 밥 안 먹겠다고 했을 때,


“그래? 그럼 소정이 너는 먹지 마.”


라고 말하며 1초의 기다림도 없이 밥그릇을 치운 게 E 이모다. 어린 나는 밥 먹으라고 화를 내거나 잔소리하지 않는 어른은 이모가 처음이라 당혹스러웠지만 의연하게 일어나 내 방으로 갔다. 그리고 하루 종일 굶다가 저녁에 못 이기는 척 이모가 차려준 저녁을 먹으며 왠지 모를 부끄러움과 서러움에 울었던 기억이 난다. 이모는 그런 나를 귀엽다는 듯 웃으며 바라보았다. 그 때 이모 나이가 스무 살 무렵이었고 아마도 엄마, 아빠가 집을 비우셔야 해서 나와 오빠를 이모에게 잠시 맡겼던 것 같다. 이모와 함께 있으면 일상적인 풍경이 꼭 동화 속처럼 흥미로워졌다. 이모는 평범한 주차장이나 집에도 꼭 무슨 사연이나 비밀이 있는 것처럼 굴었다.


“저기 저 문 보이지? 소정이 너, 저 문 너머에 뭐가 있는 지 아니?”


이런 식으로 시작해서 그 문 너머에 있는 무시무시한 존재라든지… 그 문을 열었을 때 일어날 수 있는 위험 같은 것을 지어내서 이야기해주곤 했다. 그 너머에는 미친 할머니가 있기도 했고 무슨 짐승이 있기도 했으며, 아이들은 곳곳에서 없어지고 있었는데… 그런 클래식한 동화적 이야기가 일상으로 스며들면서 이모와 함께 있으면 심심할 틈이 없었다. 그런 이모는 나나 우리 오빠 뿐 아니라, 우리 아래로 많은 조카들 모두 이모의 손을 거치지 않은 아이는 없다. 그 중에서 특히 부모의 부재나 어려움이 있었던 아이는 이모가 부모를 대신하여 키우다시피 하셨다.


내가 엄마, 아빠와 떨어져 외가에 맡겨졌을 때 이모와 한동안 한 방을 썼었다. 그 때, 나는 매우 불안정한 상태였다. 갑자기 모든 인간관계와 내 물건도 없어졌고 마음대로 되는 게 하나도 없는 것 같았다. 이모는 그 당시에는 사회생활 초년생으로 매일같이 늦게 돌아와 옷도 다 벗지 못 한 상태로 쓰러져 잠이 들곤 했었다. 지금도 프로그래머로 일하시는 이모는 그 당시에 아마도 그 일을 시작한 시점이었던 것 같다. 나는 잠든 이모의 지갑에 손을 댄 일이 있는데, 이모는 몇 번 모르는 척을 해주다가 나에게 왜 그랬는지 이유를 묻고 용돈을 주셨다. 나는 뭐라고 했는지 기억나지 않지만 울음이 터졌던 것만은 기억난다.


아이들에게만큼은 언제나 세상에서 가장 좋은 이모였지만, 이모가 어른들을 대할 때는 다소 퉁명스러워보였다. 이모는 책을 좋아하고 어른들을 대할 때는 어딘가 조금 반항적이었고 그리 사회성이 뛰어나지는 않았다. 그리고 세상 많은 것들에 대해서 불만을 품거나 비평을 하길 좋아하는 점이 꼭 샐린저의 ‘호밀밭의 파수꾼’의 주인공 홀든 콜필드를 닮았다.


‘호밀밭의 파수꾼’은 1951년 발표된 제롬 데이비드 샐린저의 소설로 무려 6500만부가 넘게 팔린 베스트셀러이자 현존하는 모든 소설 중에 어쩌면 가장 멋진 작품이다. 청소년 시절 나는 이 책을 읽었는데 정말 나랑 똑같은 영혼을 가진 주인공을 발견했다고 생각했다. 주인공 홀든 콜필드가 펜시 기숙고등학교에서 쫓겨나 3일간 뉴욕을 방황하는 이야기가 주된 내용인 이 소설은 정말 온갖 것들과 온갖 사람에 대한 투덜거림으로 가득 차있는데 이상하게도 다 읽고 나면 불만이 아니라 애착이 남는다. 그러니까 입으로는 실컷 욕했지만 실은 그리워하는 마음 같은 거랄까? 사랑을 사랑으로 말하지 않고 미움으로 말하면 더 강렬해지는 것처럼, 그렇게 짜증 가득한 콜필드의 화법을 마음으로 받아들이면 중독되어버리고 마는 것이다. 나는 그런 이 소설의 마력이 잘 드러나는 소설의 마지막 문장을 정말로 좋아한다.


난 이 이야기를 많은 사람들에게 한 걸 후회하고 있다. 내가 알고 있는 건, 이 이야기에서 언급했던 사람들이 보고 싶다는 것 뿐. 이를테면, 스트라드레이터나 애클리 같은 녀석들까지도. 모리스 자식도 그립다. 정말 웃긴 일이다. 누구에게든 아무 말도 하지 말아라. 말을 하게 되면, 모든 사람들이 그리워지기 시작하니까.


콜필드는 그 3일의 방황 이후에 어떤 삶을 살았을까? 소설에는 나와있지 않다. 우리 이모도 홀든 콜필드라고 말하기에 이미 나이가 너무 많아졌다. 하지만 특별한 영혼을 가진 사람들이 의례 그러하듯 이모 역시 늙지 않는 마음으로 자라기만 하면서, 자신보다 약한 것들을 여전히 아껴주고 있다. 요즘은 조카들이 다 자라 키우고 돌볼 필요가 없어져서일까? 이모는 길고양이들을 챙겨주고 아픈 아이들은 집으로 데려와 키우고 계신다. 행복했으면 좋겠다. 생의 마지막 날까지. 이모도, 콜필드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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