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 할머니
이제 나는 가.
헤어지는 이 순간,
누구나 친구와 살던 곳을 작별해야만 할 때,
갑자기 사랑했던 것의 상실이 얼마나 큰지,
망쳐버린 것의 후회가 얼마나 클지.
오, 이제 난 모든 존재의 아픔을 알아.
이게 인간이 되는 것이지.
ㅡ <꿈 연극> 아우구스트 스트린드베리 저, 연극과 인간
나는 참 나쁜 손녀다. 중학교 1학년 때까지 나를 키워주신 우리 할머니의 기일도, 생일도 기억하지 못 하고 있다. 우리집은 제사를 지내는 않는다는 옹색한 변명을 하기엔 나에게 할머니는 다른 손자, 손녀들에게 할머니와는 좀 다른 거 아니냐고… 그 누구보다 나 자신의 마음이 먼저 외친다.
엄마 뱃속에서 나와 눈도 제대로 못 뜨던 갓난쟁이 때부터 여자 티가 제법 나기 시작할 무렵인 열네 살 때까지 할머니는 나를 키우셨다. 그 때까지만 키우신 건 그 때 돌아가셨기 때문이고, 만약 그 이후로 더 사셨다면 언제까지고 살아있는 동안은 나를 키우셨을 게 분명하다. 나는 할머니가 먹이고 입히고 재워서 겨우 사람이 되었다. 그런 주제에 할머니가 태어난 날도, 돌아가신 날도 기억하지 못 하다니… 그야말로 배은망덕한 머리 검은 짐승이다.
할머니는 청자를 좋아하셨다. 그렇다고 무슨 고상한 도자기 취미가 있었던 건 아니고 당시 한 갑게 200원 하던 담배 ‘청자’를 좋아하셔서 하루에 청자 두 갑을 태우셨다. 나는 우리 엄마와는 달리 할머니의 한 개피에 10원 짜리 연기에 별 불만이 없었다. 좀 맵고 쉽 쉬기 힘들긴 했지만 할머니의 손 끝에서 뭉게뭉게 피어오르는 모습 만큼은 굴뚝같기도 하고 구름속 같기도 해서, 어린이의 눈에는 굉장히 환상적이기까지 했다. 불행하게도 우리 엄마의 생각은 나와 같지 않았지만. 엄마는 당연하게도 담배가 아이들 건강에 안 좋다고 싫어하셨지만 말을 들을 할머니가 아니었다. 오히려 저 회사 다닌다고 애들 다 봐주는데 담배 하나 맘 편히 못 태우게 하냐며 서운해하셨다.
나는 그 비슷한 갈등을 하루에도 열 개는 더 보고 들으며 자랐다. 우리집은 그야말로 고부갈등의 성지이자 종합선물세트였는데 할머니와 대부분의 시간을 보내는 나는 엄마를 나쁜 사람으로 오해하기도 했다. 할머니의 시각으로 엄마를 볼 수밖에 없었기 때문이다. 할머니는 분명히 좋은 시어머니는 아니었지만 손자들에게만큼은 끝도 없는 사랑을 베푸셨다. 나는 내 이부자리를 펴거나 개본 적이 없었고, 청소도 당연하다는 듯 해본 적이 없었고, 밥상 한 번 차려본 적이 없었다. 세수는 내 손으로 했던가. 할머니가 품에 안고 씻겨주시고 코까지 풀어주셨다.
중학교 1학년 봄 중간고사를 보다 말고 할머니의 장례를 치르러 갔다. 그 중간고사는 가채점 결과 거의 만점이라 어쩌면 1등을 할 수도 있었는데 시험을 끝까지 보지 못 해서 아쉽다는 생각과 함께… 나는 할머니의 장례를 치르는 동안 한 번도 울지 않았다. 할머니가 돌아가셨다는 게 조금도 실감나지 않았다. 그리고 모든 일이 끝나고 집에서 혼자 밥을 차려먹는데 눈물이 쏟아졌다. 그제야 내가 단 한 번도 내 손으로 밥을 차려먹은 적이 없다는 걸… 늘 할머니가 차려주시는 따뜻한 밥을 받아먹기만 했다는 걸 깨달은 것이다. 남들은 저 집 할머니가 애들을 바보로 키운다고 욕도 했겠지만, 나는 할머니의 그런 양육을 통해 계산없는 사랑을 배웠다. 그건 어쩌면 인간의 마음이 아니라 신의 마음일 것이다.
할머니는 트위스트를 잘 추셨다. 해질녘 혼자 소주를 한두 잔 마시며 “울 어매요.”로 시작하는 타령조의 한탄을 한동안 늘어놓으시다가 갑자기 일어나 울면서 춤을 추시곤 했다. 그야말로 종잡을 수 없는 성격이었는데 매일같이 그런 모습을 보고 자란 내가 극작가가 된 건 조금도 어색할 것 없는 일인지도 모르겠다. 할머니는 존재 자체가 연극이었다. 드라마가 넘치고 이야기가 끊이지 않았다. ‘극’은 갈등이라는 드라마의 철칙에도 들어맞았다. 늘 주변 사람들과 갈등이 끊이지 않았다.
할머니의 신세한탄 중 한국전쟁에서 죽은 장교였던 남편 이야기도 있었는데, 나중에 알게 된 바로는 할아버지는 죽지 않고 살아서 돌아오셨고 할머니보다 훨씬 오래 사셨다. 다만 전쟁 중에 만난 다른 여자와 사랑에 빠져 할머니를 떠났을 뿐… 위자료로 여관 한 채를 받은 할머니는 도박으로 여관을 날리고 장사를 해서 자식들을 키웠다고 한다. 할머니는 자신의 과오는 빼고 고생담만 울면서 이야기하신 것이다. 아직 인생을 모르는 어린 손자들에게 굳이 진실을 다 말할 필요는 없었을 것이다. 나는 그런 할머니를 이해한다. 나중에 그런 일들이 있었다는 걸 알게 된 뒤에 할머니가 더 안쓰러웠다.
스웨덴의 극작가 스트린드베리(1849-1912)가 쓴 ‘꿈연극’의 주인공은 신의 딸이다. 그녀는 인간의 삶이 궁금해 세상에 인간의 몸으로 내려와 갖은 고초를 당한다. 물론 각종 과오도 저지른다. 나는 우리 할머니를 생각하면 바로 그 신의 딸이 생각난다. 할머니는 신의 딸이라 한 인간이 겪었다고 하기에는 말할 수 없니 많은 고초를 겪은 게 아닐까? 젊은 날 시작된 피부암이 온몸으로 번져 돌아가시기까지 할머니의 삶의 여정은 단 한 순간도 편한 적 없었다.
부디 신의 품으로 돌아가 공주 자격으로 좋아하시는 청자로 많이 태우시고, 트위스트도 실컷 추고 계시길! 그리고 아주 가끔 인간이었던 시절이 불현듯 떠오를 때면, 할머니의 기일은 기억하지 못 해도 할머니의 표정 하나 작은 손짓 하나까지도 생생하게 기억하는… 누구보다 할머니를 사랑했던 손녀의 꿈에도 들러주시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