늦게 배운 도둑질 아니고, 돌덕질
다시 만난 세계 - 5
덕후 문화의 꽃, 트위터
누군가에 입덕 할 것 같다. 빠르게 그 대상이 모든 정보를 습득하고 싶고, 남들이 다 아는 것을 모르고 싶지 않다. 나와 같은 생각을 하는 사람들과 온갖 주접을 떨며 연대하고 싶다. 이런 생각이 든다면 무조건 트위터로 가야 한다.
수많은 소셜 미디어들 사이에서 10대 점유율 1위를 지키며, 굳건히 살아남고 있는 트위터. 비록 경쟁사들보다는 이용자 수도 적고 수익구조도 뛰어나진 않은 플랫폼이긴 하지만 말이다.
그러나 트위터는 커뮤니티와 더불어서 많은 신조어와 트렌드가 탄생하는 출발지다. 이전에 나는 일에 도움이 될 것이라는 단순한 이유와 더불어서 뒤쳐지면 안 된다는 위기감으로 트위터 계정을 만들고 눈팅하고 있었다. 입덕 이후에야 본격적으로 활동하게 되었는데, 트위터야말로 덕후 문화의 꽃이자 최전선이라는 것을 알게 되었다. 미리 눈팅이라도 하고 있었던 덕에, 초기 덕질할 때 어려움 없이 트위터를 접할 수 있었던 것이 다행이었을 정도.
최애의 데뷔가 확정되자 덕질용 계정을 새로 파고, 같은 팬들의 계정을 하나하나 팔로우 하기 시작했고, 나는
그곳에서 아이돌 덕질이라는 새로운 세계를 경험하게 된다.
Lv1 덕후의 트위터 생활
아이돌 덕질을 모르는 입장에서 트위터와 그곳의 사람들은 내 덕질 스승님들이었다.
애초에 나는 '홈마'라는 단어를 한 번도 들어본 적이 없을 정도로 Lv1의 애송이였는데, 점차 트위터를 이용하는 시간이 길어지면서 하나하나 알아갈 수 있었다.
아이돌의 신규 앨범 발매 프로모션은 일정한 흐름이 있다. 영화 마케팅과도 유사했는데, 한번 개봉하고 끝나버리고 개봉 전에 모든 공력을 쏟아부으면 끝나는 영화 쪽과는 달리, 발매 전 스케줄을 가지고 하나하나 콘텐츠를 공개하고, 앨범이 발매된 이후에도 최소 2주간은 신규 콘텐츠부터 음악방송을 비롯한 방송 출연, 팬사인회 같은 오프라인 행사 등이 진행되는 등 거의 2달 이상 지속되는 긴 캠페인이었다.
일정한 간격을 두고 콘텐츠가 공개되는 만큼, 팬들은 이렇게 조금씩 공개되는 '떡밥'을 가지고 이렇게도 보고 저렇게도 보면서 앨범 발매를 기다리고 기대감은 증폭된다. 정말 사소한 것까지 의미를 부여하는 덕후들의 마음을 잘 헤아리고, 콘텐츠 업로드 시간까지 챙기는 (예를 들어 10월 29일 10시 29분에 업로드를 하는 정성) 것이 필요하다.
아이돌의 데뷔는 그룹의 정체성을 보여주고 그것이 나아갈 방향성을 제시하는 만큼 그 어떤 시기보다 중요하다. 내가 덕질하게 된 그룹은 오디션 프로그램으로 탄생한 만큼, 빠른 시간 안에 데뷔했음에도 이미 예정된 컨셉과 세계관 등을 갖추고 있었고, 각자의 상징색과 꽃을 모티브로 한 타이틀곡을 선보였다. 타이틀곡은 꽃 3부작으로 불리며, 그룹의 세계관을 형성하여 팬들의 사랑을 받았다.
늦게 배운 돌덕질
덕후들은 아이돌의 굿즈를 그들의 분신으로 여기면서 구매하는데, 그중에 큰 비중을 차지하는 것이 포토카드였다. 초딩시절 포켓몬스터 스티커를 다 모으고 싶은 마음에 용돈을 다 털어 열심히 사 먹었는데 바로 이런 욕망을 활용한 판매 전략이었다.
아이돌의 앨범은 보통 최소 2~3개 이상의 버전을 만드므로, 각 버전을 모으려면 1개로는 안된다. 게다가 열성적인 팬들은 많은 양의 앨범을 구매하는데 팬사인회의 당첨을 위해서이기도 하지만 그 안에 랜덤으로 들은 수많은 종류의 포토카드를 '드래곤볼 모으듯이' 모으기 위해서다. 엔터 회사 입장에선 사실상 앨범 초동 판매량 수치를 올리기 위해서라고 보면 된다.
나는 애초에 짐이 늘어나는 것을 안 좋아하는 자칭 미니멀리스트였기에, 부피가 큰 앨범을 사는 것까지도 꺼렸다. 내 사랑을 앨범 구매량으로 증명해야 하는 것은 아니잖아?라고...... 생각했으나.........
남들은 있는 다양한 포토카드를 나도 갖고 싶었다. 포켓몬 빵을 모으던 열정이 다시 솟아오른 것이다.
'오 아주 장사 잘하는데?' 하는 생각을 하면서 유료 구독 서비스인 프라이빗 메일도 가입하고, 생일에 맞춰 팬들이 하는 오프라인 카페에도 가고, 그렇게 나는 늦게 배운 도둑질이 무섭다는 이야기를 몸소 보여주며, (아이)돌덕질에 푹 빠져 하루하루를 보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