때가 왔어 기다림을 끝내
다시 만난 세계 - 7
전조증상
그래서 나는 그들과 뭐가 다르지? 에 대한 고민은 마음속에 부채의식처럼 자리했다.
최애가 본인이 원하는 꿈을 이루고, 성장해가는 모습은 정말 기특했고 앞으로 꽃길을 위해서는 뭐든 해주고 싶었지만, 한편으로 아이돌 특히 걸그룹에 대한 사회의 시선과 이를 소비하는 방식이 정당한가에 대해서 계속 신경이 쓰였다. 음악과 무대 그 외 여러 가지 엔터테이너적인 재능으로 인정받아야 하는 아이들에게 요구하는 너무 많은 역할들에 대해 생각했다. 이 산업의 일면에 대해 알면서도, 그것에 그냥 순응하며 동조하고 있는 것이 아닐까 생각했다.
콘서트는 성황리에 잘 끝났고, 아시아 투어가 시작되었으며 순간이동해야 가능할 것 같은 일정으로 각 나라를 돌아다니며 힘든 스케줄을 해냈다. 그 사이에 또 새로운 앨범을 준비한다는 소식이 들려왔다. 투어를 마치자마자, 일본 앨범 발매를 하고, 그 후로 바로 한국에서의 첫 정규앨범이 나오는 타임라인이었다.
새 앨범의 프로모션이 시작됐다. 티저 이미지 속의 아이들은 반짝반짝 빛이 났고, 노래 또한 선공개된 일부만 이긴 했으나 이전 앨범보다 대중적이었다. 컴백 직전에 미리 진행된 쇼케이스를 갔다 온 이들은 아이들의 스타일링에 대해 떠들어댔으며 무대가 최고였다는 소식이 팬들 사이에서 퍼져나갔다. 그 와중에, 소수의 팬들은 본인들의 최애가 분량이 적다느니 하는 유치한 싸움을 하기도 했고, 팬덤 내의 분위기는 아수라장이 되었다.
이런 소란은 큰 사건이 터지기 전의 전조증상 같았다.
그리고 사건이 터졌다.
사라진 아이돌, 도둑맞은 팬덤
하루아침에 그룹은 무기한으로 활동을 중지했으며, 모든 프로그램에서 사라졌고, 더 이상 소식을 들을 수 없었다. 지금은 없어졌지만 그 당시에는 존재했던 포털 사이트의 실검에 그룹명과 아이들의 이름이 오르내렸고, 그것을 볼 때마다 제발 그 친구들은 몰랐으면 하고 빌었다. 발매 전의 팬덤 내의 소란은 정말 사소한 것에 불과했다. 아이돌이 사라졌고, 이제 그 싸움은 무용했다.
찾아야 했다. 우리의 아이들을.
매일매일 상황은 달라졌고, 내 마음도 하루 종일 날뛰었다. 회사에서도 집에서도 우울했고, 이건 거의 깜빡이 없이 이별통보를 받은 기분과 같았다.
소중한 무언가를 하루아침에 도둑맞은 박탈감 때문일까? 그 어느 때보다도 팬덤 내의 단결력이 엄청났다. 과거의 갈등들은 있었는지도 모르게 사라졌고, 한마음으로 뭉쳤다. 이전에 느꼈던 죄책감은 어느새 우선순위에서 사라지고, 우리가 도둑맞은 것을 찾아야 한다고 생각했다. 잘못을 저지른 것은 어른들이고, 그들은 꿈을 이루기 위해 최선을 다했을 뿐이라는 것을 많은 사람들이 알길 바랐다. 매일매일 해시태그 운동에 참여하고, 여론을 형성하기 위해 조직적으로 움직였다.
결국 덕후들의 힘이 그들을 움직였고, 대표의 사과와 그 뒤로의 후속처리 등을 발표하고 그룹의 활동을 지지하겠다는 기자회견을 진행했다. 그들이 저지른 행위들을 진심으로 반성하여 정말 재발 방지 대책을 수행했는지는 알 수 없다. 아마 팬덤이 견고하다는 것을 확인(수익 창출에 문제가 없음을)했기 때문일 것이다. 아무리 노력 한다한들 그 결과로 희생된 어린 친구들의 아픔은 사라지지 않으리란 걸 안다.
그러나 아이들은 죄가 없다. 그것은 앞으로도 변하지 않을 것이다.
때가 왔어 기다림을 끝내
다시 그들이 돌아온다는 공식 발표는 2019년 말 덕후로서 가장 큰 선물이었다. 이렇게 무언가를 그리워했던 적이 있을까 하는 날들이 지나가고 드디어 피에스타(축제)가 도래했다. 계절이 바뀌어 앨범이 발매되었고, 그렇게 수많은 이들을 상상 속에 기대하게 했던 무대가 공개되었다.
내 최애가 맡은 타이틀곡의 도입의 가사 “때가 왔어. 오랜 기다림을 끝내” 는 꼭 이런 일들을 예상한 것처럼 마음을 저릿하게 했다.
그렇게 우리는 되찾았고, 앞으로 남지 않은 시간 동안 아이들을 더 아끼고 사랑하겠다고 마음먹었다. 그리고 내가 가졌던 고민들은 모른 척 조용히 덮어두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