칵테일 건너 전통주 지나 수제 맥주
내가 술에 대해서 '배우려고' 노력했던 건 세 차례다. 읊어보자면 첫째가 칵테일(조주기능사 자격증 따기), 둘째가 전통주(전통주 만들기 수업), 셋째가 수제 맥주였다.
수제 맥주 붐이 일었던 몇 년 전, 동네 청년 공간에서 하는 수제 맥주 클래스를 들으면서 살짝 발을 담가본 것이다. 전통주나 맥주나 결국 메인 재료인 곡물(쌀 혹은 보리)을 끓인 후, 발효 작용을 하는 효모를 넣고 익을 때까지 숙성시키는 과정은 같았다. 둘 다 중간에 어떤 재료를 첨가하느냐에 따라 향과 맛이 달라졌는데, 진달래를 넣은 전통주를 만드는 것처럼 다양한 풍미를 지닌 홉을 어떤 비율로 배합하는지에 따라 맥주의 맛이 확연이 달랐다.
몇 주 되지 않는 맥주 수업이었지만, 가장 기억에 남았던 맥주는 '나만의 비율로 만드는 맥주' 였는데, 내가 원하는 향들을 블랜딩 해서 맥주를 양조하는 것이었다.
전통주 선생님이 누누이 강조하셨던 "내가 만드는 나만의 술"이었는데, 꿀+초콜릿+열대과일향 등 내가 좋아하는 모든 것들을 섞은 맥주는 꽤나 신비로운 맛이 났던 것으로 기억한다. 세상에 오직 하나뿐인, (아마도) 다시는 맛보지 못할 그런 술이었다.
비록 선생님의 친절한 설명에 따라 아바타같이 따라 해서 나온 결과물이지만 뿌듯했다. 주접을 떨어보자면, 숙성된 맥주가 황금보다 빛나 보이 기도. 그리고 그 경험은 무언가 위로를 주는 것이 있었다. 그땐 반복되는 보고자료와 성취감이 느껴지지 않는 업무 때문에 권태기에 빠져있었다. 내 손으로 처음부터 끝까지 온전히 나만의 무언가를 만들 수 있다는 성취감이 꽤 컸다.
술을 사랑하는 3단계
이 정도면 술 사랑이 과한 인간처럼 보일지도 모르지만, 어쩌면 많은 술꾼들이 밟는 뻔한 절차이기도 하다. 사랑하면 사랑할수록 그 대상을 더 자세히 알고 싶고, 이해하고 싶은 마음이 커지는 것에서 비롯되는 자연스러운 본능이다(라고 합리화를 해보려고 한다). 물론, 나의 경우에는 그 모범생 버릇을 못 버리고, 술마저도 학습할 대상으로 보았던 게 크지만.
영화 좋아하는 사람들의 가슴을 뻐렁치게 한 '영화를 사랑하는 3단계'(1단계 영화 두 번 보는 것 → 2단계 영화 평 쓰기 → 3단계 영화 만들기)처럼 술에 대한 사랑 또한 3단계로 설명해보면 어떨지. 1단계 술을 여러 번 맛보기 → 2단계 술에 대해 이야기하기 → 3단계 술 만들기로 나아가는 것이다.
돌이켜보면 술 배우는 것에 집착했던 이유는 술은 현실에서 벗어나는 것은 상징했고, 그것이야말로 내 의지에서 할 수 있는 어떤 형태라고 믿었기 때문인 것 같다. 현실에서 벗어난 '내 것'을 온전히 소유하고 싶은 그런 열망의 결과물이 술 배우기로 드러난 것이 아닐까.
자유인이 되어 온전히 나만의 시간을 갖게 된 후로, 술에 대한 집착(?)을 이젠 내려놓을 수 있게 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