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근엔 잘 가지 않지만, 간이 펄떡펄떡하던 술꾼 시절 던킨 도너츠와 맥도날드 등 프랜차이즈들은 몇 번이나 도움을 받았던 곳이다. 그 기억에 끝에 있는 맥도날드에게 드는 감정은 '미안함'이다. 몇 가지 에피소드들이 있다.
우리의 구원자, 던킨
기억은 스무 살 무렵으로 거슬러 올라간다. 2,3차씩 일주일에도 여러 번 이어졌던 술자리는 아무리 싱싱한 세포를 가진 새내기들에게도 무척이나 피곤한 일이었다. 급하게 취해 술인지 인간인지 모를 상태가 되지 않을 날, 얼른 집에 가서 쉬고 싶다고 외치는 뇌가 살아있는 그런 날도 있었다. "다음날 9시 수업" 혹은 "마감인 과제"가 있다는 신입생의 핑계는 술자리의 누구도 납득시킬 수 없었다.(1학년이 학점을 신경 쓰는 것을 거의 외계인 수준으로 생각했다) 차라리 조선시대급으로 보수적인 집안의 통금이나, 일산 분당 인천 파주 등 왕복 3시간쯤 되는 거리가 집이어야 큰 저항 없이 자리에서 나올 수 있었다. (막차 이후 그 먼 거리의 택시비를 내주기는 힘들었기 때문) 그러다 운이 좋게 앞의 이유들로 떠날 수 있는 동기들이 근처에 있을 경우, 배웅해준다는 핑계를 대고 도망쳐 나올 수 있었다. 그때의 철칙은 절대 머뭇거리면 안 되고, 잽싸게 움직여야 한다는 것. 이 쓸데없는 기술은 후에 사회에 나와서도 회식이나 원치 않는 술자리에 참석했을 때 아주 잘 활용했다.
그날도 운이 좋게도 동기 몇 명과 탈출에 성공해 지하철역으로 향하고 있었다. 나의 경우는 뒤돌아서 자취방으로 향하면 되었지만, 상대적으로 멀쩡하여 지하철역까지 데려다주겠다고 했다. 원체 술이 약해서 이성과 열심히 싸우는 친구도 있었고, 술 버리기 신공을 잘 발휘해서 상대적으로 멀쩡한 친구도 있었고. 그때, 갑자기 이성과 함께 열심히 싸우던 친구가 갑자기 우뚝 멈춰 서더니 화장실을 가야겠다고 했다. 지하철 역까지는 빠륵 걸어도 5분이었고, 늦은 시간이라 가게들은 닫았고. 친구의 인내력을 시험하기엔 너무 위험했던 찰나, 저 앞에 3층짜리 건물이 보였다. 흰 빛을 내뿜고 있는 아직은 오픈 전인 던킨 도너츠의 건물이었다. 왠지 그곳에는 화장실이 있을 것 같았고, 우리는 다짜고짜 아직 공사 중인 건물로 뛰어들어갔다. (인테리어 막바지 작업 중이었다) 다행스럽게도 작동이 되는 화장실을 쓸 수 있었고, 우리는 그렇게 던킨 화장실을 쓴 '첫 손님' 이 되었다.
맥도날드야 미안해
성인이 되어 맥도날드는 해피밀을 사 먹고, 소중한 스페셜 에디션 장난감을 간직하던 그런 꿈과 희망이 있던 장소가 아니었다. 맥도날드는 24시간 운영을 한다. 그 말인즉슨, 술집이 문을 닫고 첫차가 시작하기 전에도 열어놓는다는 뜻이고, 수많은 취객들이 방문한다는 뜻도 된다. 주머니가 가벼운 우리 같은 취객들에게 따뜻한 처마를 제공 해준 고마운 다국적 기업이여.
우리의 안방 같았던 곳은 대학로의 맥도날드였다. 그 맥도날드의 화장실을 점령했던 일도 있었고. (내 주사는 자는 것인데, 화장실에서 곯아떨어진 것이었다) 큰일이 벌어진 건 신촌의 맥도날드다. 스물네 살 정도 무렵, 술꾼 K와 I와 함께 '오늘은 많이 마실 거야' 하는 다짐을 하고 신촌에서 모였다. 아마도 부실한 안주와 그에 비해 많은 소맥과 사이다 조합(새로 배워온 암바사주를 선보인다고 들떠있었던 것 같다)을 들이켰던 것이 낭패였다.
우리는 정신없이 취했는데, 상대적으로 걷는데 지장이 없던 나와 I가 가장 취한 K를 부축하며 우리의 안식처이자 유일한 희망인 맥도날드로 향했다. 그리고....K가 화장실이 아닌 곳에서 위액을 분출했고, 그것을 남겨진 우리는 막을 수 없었고. 술 취한 와중에 아르바이트생에게 머리가 땅에 닿을 때까지 사과를 했다. K는 우리 중에 키가 가장 컸던 만큼 취한 둘이 부축하기엔 쉽지 않았는데, 영국에서 여행 온 친구 둘이 우리를 도와주었다. 그 와중에, 교환학생에서 돌아온 지 얼마 안 되어 유럽뽕이 좀 있었던 나는 술기운에 영국에서의 즐거웠던 경험에 대해서 얘기하며 썰을 풀었던 것 같고. 요크에서 온 친구와 메일 주소 교환도 했다. (다음날 연락이 왔는데, 어제 있었던 일이 창피해서 도저히 답장을 보낼 수가 없었다) 아마 그 친구들에게 우린 한국에서의 이그조틱하고 익스트림한 경험 중 하나가 되었을 것지도.
맥도날드의 M자 로고를 보면 여전히 마음 한편이 불편해진다. 그래도 나중엔 맥모닝도 많이 사 먹고, 자주 이용했으니 로날드 맥도날드 아저씨 이해해 주시길. 지금 생각해보면 당시 맥도날드의 심야 타임 아르바이트생들이 얼마나 힘이 들었을지, 그 헌신적인 아르바이트생들에게 미안하고 감사하다. 새해 복 많으시고, 언제나 건강하시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