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통주라… 아는 전통주라고 하면 막걸리와 동동주인데. 게다가 둘 다 숙취 때문에 그렇게 즐기진 않았다. 그런데, 뭔가 호기심이 동했다. 직접 술을 만들어보고 싶다는 마음. 칵테일 자격증을 준비했던 것처럼 왠지 해보고 싶다는 끌림을 느끼며 공방의 문을 두드렸다. 4년 전, 겨울의 일이다.
전통주 선생님은 정말 독특한 이력을 가진 분이셨다.
무엇보다 선생님이 멋졌던 건 술을 사랑해서, 기존의 업(영어 선생님)을 그만두고 술 만드는 것을 직업으로 갖게 되었다는 것이다. 오랫동안 했던 일을 포기하고 전직을 선언하고, 공방을 열고 꾸준히 술을 빚는 모습이 멋졌다. 게으른 학생이었던 나는 선생님이 가르쳐주신 술 만드는 법과 이론들을 새까맣게 잊어버렸지만, 술에 대한 철학만큼은 기억하고 있다.
같은 순서와 재료로 술을 만들더라도 각자가 만드는 술의 맛은 다르다. 자기 술을 직접 만들어보며 나만의 술을 찾는 것이 중요하다.
술을 만드는 과정에 들어가는 재료와 그 배합, 들어가는 정성과 시간들을 알고 나니 내가 먹는 이 술이 다르게 보였다. 스무 살 무렵부터 술은 취하기 위해 기분 좋기 위해 들이붓는 것으로 생각했었는데, 그 의미가 달라지는 순간이었다.
혹시, 진달래 보셨나요?
전통주의 매력은 계절별로 담글 수 있는 술이 다르다는 것에 있다. 들어가는 재료나 온도에 따라 다른 맛의 술이 나오기 때문에 그렇다. 다양한 술을 만들고 맛보았지만, 손이 꽁꽁 어는 한겨울에서부터 초여름에 이르는 기간 동안 전통주 수업에 임했던 나로서는 사실상 반만큼만 겪어본 셈이다.
5월엔 청포주를 만들었고, 진달래가 피는 4월에는 두견주를 만들었다. 맛있어서 탄식한다는 석탄주나, 두 번이나 덧술해야했던 삼오주가 생각이 난다.
그중에서도 진달래꽃이 주재료로 사용되는 두견주를 담글 때가 가장 스펙터클(?)했다.
초봄 무렵, 선생님은 진달래로 술을 담글 것이니, 주변에서 진달래를 따오라는 미션을 내렸다. 보통 따로 준비물이 필요 없었던 다른 술과는 다른 차원이었다. 아무래도 예전만큼 진달래를 보기 쉽지 않으니 품앗이가 필요했던 것이다.
진달래는 생각보다 찾기 힘들었다. 분홍꽃을 볼 때마다 진달래인가? 하고 쳐다보았지만 아닌 경우가 대부분이었다. 이전까지만 해도 철쭉이 진달래인 줄 알았다. 또 진달래만이 오직 식용으로 가능하다는 것을 꽃을 찾아다니며 알았다.
사람들을 만날 때마다 진달래를 본 적이 있는지 물어보고 다녔다. 주변에 소문을 내달라고도 했고. 거의 전통주를 만든다고 광고를 하고 다닌 격이 되었는데, 나중에 돌이켜보니 좀 창피한 마음이 들기도 했다. 그 당시엔 진달래를 구하고야 말겠다는 집념이 너무 컸다. 하하.
그러다가, 같은 팀 과장님의 집 근처에 '진달래 동산'이 있으며, 그곳에 진달래가 핀다는 사실을 알게 됐다. 다행스럽게도 과장님이 함께 '일'을 해주기로 약속했다. 우리는 사람들이 지나다니는 곳이다 보니 한밤중에 시행하는 것이 낫겠다는 결론을 내렸다. 그렇게, 결전의 밤. 흐드러지게 피어있는 진달래를 보며 반가움과 너를 떼어내야 한다는 미안함도 잠시. 왠지 누가 쫒는 것 같은 초조함에 심장박동이 빨라졌다. 떨리는 손으로 빠르게 꽃들을 채취했다. 꼭 수박서리를 하는 기분으로.
그렇게 힘들게 얻은 꽃들로 만든 두견주는 아까워서 한참을 먹지 못했다. 함께 일을 동참해준 과장님(그러나 그녀는 알쓰였다)에게도 적은 양이지만 한 병을 드렸다. 그로부터 1년 후, 여러 오해로 사이가 어긋나 버렸지만, 그때 진달래 동산에서 함께해준 의리는 여전히 고맙다.
전통주라는 인생
수업은 보통 밥을 하고 식히는 것이 반이었다. 밥이 되는 동안 선생님의 이론 설명을 듣거나, 지난 수업에서 만들어 이제는 완성된 술을 시음했다. (이때가 가장 즐거운 시간이다) 그 후 약간 취기가 올라와 기분 좋은 상태로, 갓 지은 밥을 식히고 누룩과 섞는 밑작업을 한참 동안 한다. 뜨거우면 효모 역할을 하는 누룩의 균들이 죽어버리므로, 꼭 한겨울에도 찬물에 식혀가면서 해야 했는데 얼음장 같은 대야에 손을 넣고 잘 섞이도록 주무르면 손이 깨질 듯이 시렸다. 그럼에도 맛있는 술을 먹겠다는 열망은 추위를 이겼다.
보통 1-2주 이상은 두어야 술이 되는데, 전주에 만들었던 술에 추가로 ‘덧술’ 하는 경우도 있었다. 기다림이 더 길어지는 만큼, 더 깊은 맛이 나고 도수도 세진다. 작업실에서 적당한 온도에서 잘 숙성된 술은 선생님의 오케이 사인이 있으면 맑게 내리는 작업을 거쳐 가져 갈 수 있다. 술 내리는 날은 들고 간 1.5리터짜리 생수병에 가득 술을 담아 가져와 냉장고를 차곡차곡 채우며 뿌듯해했다. 이렇게 먹을 술이 많다니! 하며 든든한 마음이 들었다.
같은 쌀이라고 하더라도 어떻게 익히느냐에 따라서, 어떻게 식히느냐에 따라서 완전 다른 술이 된다. 살짝 방법만 바꾸어도, 향과 맛이 다른 청주, 석탄주, 청감주, 삼오주 등으로 달라지는 것이다. 그리고 손맛이라는 게 있어서 내가 담근 술과 다른 수강생, 선생님이 담근 술이 달랐다. 같아 보이지만, 같은 것은 없었다. 한순간의 작은 선택이 큰 변화를 불러오기도 한다. 우리 삶의 많은 것들이 그러했듯이.
선생님에게 몇 달만 쉬고 돌아간다고 했지만, 어느새 몇 년이 흘렀다. 서울이라고는 믿을 수 없이, 밤하늘의 별을 볼 수 있는 마당이 있는 한옥에서, 선생님은 여전히 술을 빚고 가르치고 계실 테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