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투하듯 삽니다 - 22
우리는 정말 많이 달라졌다.
시간은 빠르게 흐른다. 퇴사하고 벌써 8개월가량의 시간이 흘렀다. 정확히는 244일째다. 매일 퇴사한 후의 날짜를 세고 있다고 하면, 듣는 사람들은 나의 변태스러움(?)에 놀라지만 뭔가 시간 감각이 없이 살고 싶지 않기 때문이다. 자신을 감시한다기보다는, 지금 이런 시간이 지났는데 너의 상태는 어떻니? 하는 스스로 묻는 건강체크 같은 것이다.
얼마 전 스무 살 무렵부터 알고 지낸 친구와 멀어지는 일이 있었다.
우리의 말다툼의 근원은 여러 가지가 있겠지만, 결국 삶의 속도와 단계가 달라졌기 때문이다. 그렇기 때문에, 분명 이해가 가능할 정도 범위의 가치관 차이에 간극이 발생한 것이고 그것을 좁히려면 엄청난 계기가 있어서 한쪽의 상황이 변화해야 할 지경이 되었다.
일을 바라보는 다른 생각
그 가치관은 '일과 직장'에 대한 것이다.
나는 이제 회사가 전부가 아니라는 것을 안다.
커리어 패스와 올라가는 연봉, 높은 자리가 내 인생을 좌우하지 않고 그게 내 삶 그 자체를 대변할 수 없다고 생각한다.
물론, 과거의 나는 회사를 그만두고 아무것도 하지 않고 쉰다는 것은 선택지에 없던 인간이었고, 어떻게서든 회사와 상사에게서 인정을 받고 싶었다.
첫 번째 회사는 경쟁사에 비해 시기 질투하며 경쟁하는 문화는 아니었다. 오히려 가족 같은 분위기였고. 그냥 적당히 존버 한다면 언젠가는 승진할 것이고, 오래도록 다닐 수 있는 것이었다. 그것이 큰 장점이었지만, 언젠가부터 안주하기 싫다는 생각이 들었다.
어차피 이 회사가 나를 책임지지 않는다. 어서 열심히 이직 준비를 해서 커리어 패스를 하자. 그런 생각들.
그래서 이직 준비를 했고, 이직한 회사에서도 성취를 중요시하는 상사 밑에서 같이 공격적으로 일했다. 나를 증명하기 위해서. 내 성품상 힘들다는 것을 숨기지는 못한다. 사회생활을 하면서 배운 (정말 끔찍한) 철칙이 있다면 '일하는 티를 내야 한다'는 것이었다. 사람들이 내가 온갖 일을 다 맡아서 한다는 것을 알았고, 고생하는 아이콘의 대명사였으며, '바쁜 사람'이라고 언제나 생각했다.
그러나 어느 순간 회의가 들었고, 이 일로는 성취감을 얻지 못한다는 것을 깨달았고, 나의 자존감을 깎아먹는 일이 아니라 나를 위한 '내 것'을 찾아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꼭 회사에 속해서, '왜 내 마음을 몰라줘' 하며 상처받은 마음으로 회사를 욕하면서, 그러면서 결국에는 회사를 그만두지도 못하는 삶은 더 이상 살고 싶지 않았다.
이것은 퇴사를 하고 나서 더 확실해졌다. 내가 이후에 어떤 삶을 살게 되든지, 나는 변화한 나로서 살게 될 것이다. 다시 회사로 돌아갈 수도 있겠지만, 예전과는 다를 것이다.
6년 6개월과 1년 6개월, 도합 8년간의 직장생활을 그만두고 자유를 부르짖으며 백수의 길을 택한 것은 다 그런 이유 때문이다.
달라진 삶의 속도와 단계
나의 친구는 느지막이 회사 생활을 시작했다. 그래도 처음 시작한 일이 적성에 맞았고, 언어능력과 성실한 태도 덕에 금세 인정도 받고 작년에는 한국에 돌아와 이직도 했다.
그 친구가 한국으로 돌아와 이직하고 본격적으로 직장을 다니던 시기 나는 방황을 마치고 퇴사를 결심했다. 이 친구는 회사에서 성공하고 싶은 열의가 넘치고 팀장 역할을 잘 해내고 싶어 한다. 현재의 일이 쉽다고 생각하고, 어떻게 하면 일을 더 잘하고 인정받을 수 있을지를 고민한다. 그만큼 기대치가 높기 때문에 부하직원들과 회사에 대한 불만이 많았다.
회사를 나온 내가 듣고 있자면, 참 많이 힘든 시기를 겪고 있구나 하는 것들. 나도 예전에 고민했던 것들. 그러나 지나 보면 다 부질없다고 여겨지는 감정 소모들.
그래서 그런 생각들을 조언이랍시고 도를 넘는 조언들을 했을지도 모르겠다.
그 친구는 일을 하지 않고 백수 한량으로 살고 있는 나에 대해 한심하게 생각하고 있었던 것 같기도 하다. 지금 가장 중요한 시기에! 회사를 스스로 박차고 나와서! 연차 채우고 승진하면서 돈 벌어도 모자랄 판에! 그렇게 산다고? 하는 그런 생각들을 마음에 품고 있었을지도.
(누누이 얘기하지만, 나는 한량이 아니고 항상 바쁘고 무언가를 하고 있다. 하하..... 백수가 젤 바쁘다고... 그만 설명해)
일과 직장에 대한 다른 생각
비단 이건 친구와 나만의 문제는 아니었다.
동년배들 사이에서도 각자 다른 생각을 가지고 있는 모양이다.
1. 누군가는 현 직장에 만족하면서 이대로 쭉 안정적인 삶을 누리고 싶어 하고,
2. 누군가는 현 직장에 머무는 것으로는 내 미래가 걱정이라는 생각으로 퇴사한다.
여기서, 2번 회사를 떠나는 것도 몇 가지 선택지가 있는데 2-1 이직, 2-2 전직, 2-3 퇴직(혹은 휴식) 등 다양하다.
얼마 전 나보다 이른 시기에 퇴사하고 직장인이 아닌 삶(2-3)을 꿈꾸고 있는 친구 C가 얼마 전 자신의 비슷한 삶의 길을 걸어온 대학 친구와 오랜만에 만났다고 한다. 그 친구 또한 미래에 대한 걱정으로 다니던 대기업을 그만두는 것을 결심했다고 하는데, 완전 다른 분야로 대학원을 다닐 거라는 이야기를 하더란다.(2-2) 과거의 일반 회사원으로 사는 것이 아닌 더 미래가 보장되고 수요가 많은 '직장인'이 되기 위한 준비에 들어간 것이다.
같은 또래의 청년 세대여도, 똑같이 퇴사를 하더라도 일과 직장에 대한 태도가 이렇게나 다른 것이다.
그럴진대, 회사를 열의를 가지고 다니고 있는 사람과 이미 회사를 경험하고 다른 선택을 한 사람과의 간극은 더 클 것이다.
우리 삶에는 다양한 선택지가 있다.
나는 내가 이상한만큼 남도 이상할 수 있다는 것을 받아들이고 노력하려고 한다. 상대에 대해 쉽게 판단하는 것도 지양해야 한다. 어쩌면 이건 평생의 숙제다.
'나는 절대 아닐 거야' 라며 단정 지었던 것도 완벽하게 뒤집힐 수 있는 말이라는 것도 퇴사하고 나서 더 확실하게 알게 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