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투하듯 삽니다 - 21
앞으로 무슨 일을 하고 싶은지, 언제 일터로 복귀할 것인지 질문을 종종 받는다.
그럴 때마다 할 말을 찾지 못하고 입을 떼기 두려워지는데, 일단 확신에 찬 대답을 할 수 있을 정도로 명확하지 않기 때문이고, 정말 궁금해서 기대에 차 묻는 상대방에게 실망을 안겨주고 싶지 않다는 생각 때문이다. 상대는 내가 어떤 말을 해도 응원해줄 것 같은 자세 이건만, 결국 망설이게 되는 이유는 오롯이 나로 인한 것이다.
나는 여전히 배워가고 있는 중이다.
매일 퇴사 이후의 날들을 세고 있는데, 벌써 퇴사로부터 200일이 넘었다. 점점 해가 짧아져가는 가을날 퇴사를 하고 곧 더워질 날들만 남은 초여름이 되었다.
퇴사하기 전에 세운 목표들도 있고, 퇴사 이후로 세운 목표도 있지만 항상 그렇듯 목표만 거창하고 실제로 실행하는 것은 많지 않다.
퇴사 후 예상치 못한 위기(예를 들어 러시아-우크라이나 전쟁이나 공급망 위기, 중국 봉쇄, 인플레이션 그리고 경기 침체 우려 같은 것이나 무릎 부상, 나의 능력을 과대평가해서 생긴 것들)들은 겪을 때마다 안일함을 반성하며, 다 안다고 생각하고 방심했던 것으로 시드를 갉아먹는 사건이 발생해서야 절대 거만하지 말아야 한다는 생각을 하게 된다. 또한 인간관계에 있어서도 내가 퇴사를 하든 안 하든 절대 사수할 수 있을 것 같았던 인연을 잃어버릴 상황에 놓여서야 인생은 참 여러 방향으로 흘러가는구나 생각하게 된다. 대체 언제가 되어야, 그렇게 바라고 꿈꾸던 제대로 된 어른이 될 수 있을까 하는 그런 마음.
그럼에도 예상치 못하게 혹은 기대보다 좋은 것들도 있다.
어찌 되었든, 나름대로는 하루하루를 잘 보내기 위해 노력하고 있다는 점.
가족들과 더 돈독해졌다는 것.
사소한 것들에 눈을 두고, 귀를 기울일 수 있게 된 것.
대학교 다닐 때 매년 세웠지만 한 번도 지키지 못했던 목표, 책 100권 읽기를 작년에는 드디어 해냈다는 것.
예전엔 소설만 읽으며 편식했다면, 사회과학 도서와 경제책까지 범위를 넓혔다는 것.
결론적으로 나는 똑똑해지는 기분을 사랑한다는 걸 알게 된 것.
'배우는 것은 세계를 바라보는 해상도를 높이는 것.'
어디선가 보고, 기록해두었던 구절이다. 흐릿하게 실체도 몰랐던 것을 제대로 파악하기 위해서는 결국 배워야 한다. 알아야 한다. 시작은 언제나 어렵지만, 시도는 해봐야 한다.
나를 알아가는 과정도 마찬가지다. 나에 대한 해상도를 높이기 위해서, 계속 나를 배워볼 참이다.
계속 나에게 챌린지를 주고, 잘하면 먹이도 주면서 굴려볼 생각이다. 그러나 적당히. 내가 몇 개월 동안 확신한 게 있다면, 나는 너무 과하게 몰아붙일 경우 금세 질려하는 사람이었고, 이건 내가 그렇게 목놓아 노래를 부르고 있는 '자유로운 선택'으로 가득 찬 상황에서도 마찬가지였다. 그러려면 재촉해서는 안된다. 앞으로의 날들을 생각하면, 지금의 시간은 매우 짧다. 나는 길게 보고 나에게 기회를 주기로 했다.
비록 여전히 미래는 흐릿하고, 다리는 완전 회복되지 않아 언제쯤이면 다시 러닝을 할 수 있을까 막연하고, 갑자기 밀려오는 현타에 갈팡질팡하는 날들도 있지만...
나 스스로에 관대하되, 적당한 챌린지는 유지하면서. 그렇게 살아보려고 한다.
지금 내가 글을 쓰는 이유이기도 하다. 나는 무리하지 않게 잘 지내려고 노력하고 있습니다. 나를 아는 누군가가 이 글을 본다면 고개를 끄덕이며 지나갈 수 있는 안부 인사가 되었으면 좋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