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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시그리드 Jul 19. 2022

난 몰랐어 내 맘이 이리 다채로운지

장투하듯 삽니다 - 23

난 몰랐어 내 맘이 이리 다채로운지

아이브(IVE)의 노래가 뛰어난 이유는 세련된 비트와 중독성 있는 멜로디와 더불어서, 서지음(a.k.a 갓지음)의 가사 때문이다. 최근 활동한 러브 다이브(LOVE DIVE)라는 곡도 활동이 끝난 지금까지 음악방송 프로그램 1위를 하고 있을 정도로 대중적인 노래라고 자부할 수 있지만. 기승전결의 완벽한 흐름과 말맛을 살린 단어들이 적재적소에 들어간 일레븐(ELEVEN)의 가사는 24시간 동안 멈추지 않고 칭찬 필리버스터를 해도 될 만큼 훌륭하다.


일레븐의 가사는 작사가인 서지음이 말했듯, 어떤 소녀가 사랑이라는 '프리즘'을 통해  (기존 원제는 프리즘이었다고 함) "내 마음이 이리 다채로운지"를 알아가는 이야기다. 뻔하고 단조로운 삶에 나타난 하나의 빛. 그리고 그 빛이 보여주는 여러 가지 색깔들은 "감히" 나를 설레게 하고. 내가 모르던 나의 모습들을 알게 된다.

그렇게 알게 된 '새로운 나', 즉  "내 앞에 있는 너를 그 눈에 비친 나를 사랑하게"  된 것이다.


갑자기 아이브의 일레븐 가사를 거창하게 이야기한 이유는 과연 '퇴사'가 무엇일까에 대해 생각했을 때 가장 먼저 떠오른 구절이었기 때문이다.



퇴사를 통해, 나는 무엇을 얻고 어떤 사람이 되었나

더 나은 인간이 되었나, 그렇다면 그전의 나는 부정하고 싶은 과거인가?

그런 나는 Lv UP 된 다른 인간으로 '성장' 한 것인가?


퇴사를 하고 몇 달 되지 않았을 때 나는 레벨 업한 다른 차원의 인간이 된 것 같은 기분이 들었더랬다. 몸은 가벼워지고, 스트레스가 없으니 정신은 더 맑아졌고, 하고 싶은 일들이 산적해있었으니. 뭐든 할 수 있을 것 같은 기분도 들었다.

퇴사한 지 261일째(네.. 벌써 그렇습니다)인 지금에 이르러 생각해보니, 나는 레벨 업이니 정량적인 의미의 성장 같은 단어로 지금의 시기를 말하기엔 좀 잘 맞지 않겠다는 생각이 든다.

그보다는 내가 이런 사람이었지, 아 나는 이런 것을 싫어하고 좋아하는 인간이었구나 하는 알고 있었지만 모른 척했던 것들이나 알아야 했지만 몰랐던 그런 속성들을 알았다는 것.

그런 여러 가지 다채로운 면을 알게 되었다는 것. 내게 퇴사는 그런 것이었다.


퇴사를 한 이후로, 삶을 이루고 있는 다양한 면모를 본다.

나는 이런 사람일 수도 있고, 저런 사람일 수도 있다.


분명 사회적으로는 나에 대해 설명하기 어려운, 항상 토해내기만 하던 연말정산에서 처음으로 큰돈을 받아볼 정도로 소득이 사라졌고, 카드 하나 발급받으려면 온갖 증명서류를 내야 하는 상황이 되었지만 말이다. 하하.



지독히도 모순적인, 그래도 나쁘지 않아

나는 안정과 자유, 좋아하는 것에 대한 선망과 집착을 하면서 사회적인 지위는 포기하지 못하는 지독히도 모순적인 인간이었다.

지금도 인간의 본질은 달라지지 않았을 거라 생각이 들지만, 세상에는 다양한 관점과 삶이 있다는 것을 알게 되었고 어딘가에 소속되어 안정성을 얻는 것만이 방법은 아니란 것을 안다.


사람들과 일하는 것을 싫어하지 않고, 그것을 못한다고 생각하지는 않으나 많이 애써야 하고

사회생활과 인간관계로 인한 에너지 소모가 그 어떤 것보다도 큰 유형이다.

엄청 사소한 것에 혼자 울적해하고 상처받고 가슴 아파하지만, 또 어떤 것에는 지나칠 정도로 무덤덤하다.

뭔가를 공부하고 새로운 지식을 습득하는 것에서 쾌감을 느낀다.

단기로 계획 세우고 이를 수행하는 것에 흥미를 느끼나 장기 계획을 떠올리면 막막해지고.

언제나 항상 성취감을 느낄 정도의 결과물이 있어야 한다. 그것이 어떤 형태가 되어서든.

내가 만드는 무언가. 지금 현재 그 결과물은 글이고, 나는 뭐가됐든 써야 하는 인간이다.



그래서 나의 퇴사는.

얼마 전에 리움미술관에 갔다가 본 작품이 있다. 천장에 매달린 정체불명의 알루미늄 조각. 이리저리 규칙 없이 뭉쳐진 이 조형물 아래에 서면 내 모습이 여러 갈래로 비친다. 굴곡이 일정하지 않다 보니 비치는 상(像)의 모양도 가지가지다. 길쭉하기도, 뭉뚱 하기도, 흐릿하기도, 선명하기도 하다. 번듯해서 볼만하기도 하고, 뭉개져 있어서 보기 싫기도 하다. 그러나 결국 그 여러 가지 형태의 본질은 본질은 '나'이다. 이런 복잡하고 일정하지 않은 '다채로운' 속성이 모여 나라는 인간이 된다.


그런 의미에서 나에게 퇴사는 '나선형 조형물' 혹은 '일레븐 속 사랑' 같은 것이었고, 여기에 다양하고 다채로운 나를 발견하는 시간인 것 같다는 생각이 든다.


루이즈 부르주아, 무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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