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투하듯 삽니다 - 30
퇴사할 때 혹은 퇴사 이후에 도움이 되었던 책 몇 가지를 꼽아본다.
뭔가 한 번도 해보지 않은 길이 자꾸 어른 거릴 때,
사실상 자기 확신을 위한(듣고 싶은 것을 듣고 싶은 확증편향적인 심리일 수도 있다), 그러니까 자기 자신을 납득시키기 위해서 믿을만한 사람의 조언을 얻거나 책을 찾아보는 편이다.
책은 읽었던 시기는 각기 다른데, 다 읽고 나니 더 일찍 혹은 늦게 읽어도 괜찮았을 책들은 순서를 바꿨다.
내리막 세상에서 일하는 노마드를 위한 안내서(제현주)
같은 팀 동료였던 A로부터 추천받은 책. '포트폴리오로서의 일'에 대해 고민해 볼 수 있는 책이다. 이 책을 읽고 퇴사할 결심을 굳혔던 듯하다. 그 당시 고민하던 대체 내가 뭘 하는 인간인가에 대한 답이 회사에서는 없었기 때문에.
-직장보다 직업이 의미를 가지는 시대이며, '~하는 사람' 이 자신을 설명할 수 있는 기준이 될 것이다
-지금 정확히 무엇을 하고 싶은지 몰라도, 점차 싫어하는 것을 하나씩 지워 가다 보면 내가 좋아하는 '것들'의 조합이 무엇인지 뚜렷해진다
-일이 정체성이 되려면 최소한 3가지 중 하나는 만족해야 함 : 역량의 확장을 가져오는 도전적인 일, 경제적 안정을 주는 일, 공동체적 결속을 주는 일 -> 각각의 요건을 충족시키는 일을 '포트폴리오'로 구성하는 것.
남은 생은 일하지 않습니다(김강미)
카피라이터 출신 작가가 40살에 퇴사를 하고, 도쿄로 가서 그림을 배운 이야기를 다룬 에세이. 이 책이 좋았던 것은 작가가 과거에 무엇을 좋아했는지를 자세하게 들여다본 후 그것이 그림이라는 것을 깨닫고 용기를 낸 부분이었다. 결국 돌고 돌아, 좋아했던 것을 찾게 되는 것이 인간의 본성인가 싶었다.
일 말고 할 줄 아는 것이 없는 게 아니라, 일 말고 다른 것을 해본 적이 없어서 그렇다.
그러니 지금부터라도 조금씩 용기를 내 나에게 일이 아닌 다른 기회를 주면 좋겠다.
비겁한 돈(황현희)
이 책은 올봄에 읽었는데, 진작 읽었으면 좋았을 것 같단 생각이 들었다. 사실상 투자 마인드에 관한 책이긴 하지만, 개그맨 황현희가 방송계를 떠나 '쉼'을 결정하고 경제공부를 통해 경제적 자유를 얻는 과정을 그리고 있다. 투자에 있어서도 불나방처럼 달려들지 말고, 남들이 무서워할 때 뛰어들면 부를 축적할 수 있다는 사실을 '비겁한 돈'으로 묘사한 점이 좋았고. 투자를 하려면 자기 자신을 아는 과정이 필요하며 이를 위해 '쉬는 것'은 도움이 된다는 이야기.
한 번도 가보지 않은 길은 낯설다. 낯설다는 것은 두려움을 동반한다.
하지만 그 두려움을 극복하고 내딛는 한 발을 통해 세상은 언제나 바뀌어 왔다.
퇴사는 여행(정헤윤)
P언니의 추천을 받아 읽은 브런치 북. 정말 에너지 넘치는 사람이라는 생각이 드는 동시에, 퇴사를 하고도 잘 먹고 잘 살 수 있습니다의 표본으로서 용기를 준다.
요즘애들(앤 헬렌 피터슨)
퇴사 이후 '대퇴사시대'를 맞이하여, 나의 퇴사의 이유를 사회환경적으로도 고민하던 차에 읽은 수작. 밀레니얼들은 다른 선택지를 고려하지 않은 채 대학에 가지만, 졸업 후에는 저임금, 불안정한 노동환경에 놓이게 된다. '열정 페이' 혹은 '좋아하는 일을 해라'라는 메시지는 거의 종교처럼 자리 잡아서, 정말 열심히 일하지만 번아웃에 시달리고 제대로 된 보상을 받지 못한다. 부모인 베이비부머들과 그들의 자녀인 우리 밀레니얼이 꿈꾸는 '중산층의 안정'은 일부에게만 가능한 상황이라는 것.
"최고 학력을 쌓고 제일 많이 일하지만 가장 적게 버는 세대"라는 문장으로 요약되는 책.
다 읽고 나면, 백예린의 '그건 아마 우리의 잘못은 아닐 거야'를 듣고 싶어 진다.
언캐니 밸리(애나 위너)
미국 버전의 <일의 기쁨과 슬픔>. 위의 언급한 '요즘애들'의 전형적인 인물 같은 문과 출신 밀레니얼 화자가 미국 IT 스타트업을 경험하고 쓴 책이다. 문과 출신으로 어떻게 업계에서 살아남았는지, 열광 뒤에는 어떤 어두운 면이 있는지, 어떠한 차별과 압력이 암암리에 행해졌는지 등에 대해 솔직하게 설명 되어 있다. 그가 결국 회사를 관두고 작가로 거듭나기까지의 과정도 납득이 가능하다. 완전히 같을 수는 없겠지만, 내가 회사를 다니면서 느꼈던 뭔가 불편한 감정들(인문대 졸업, IT스타트업을 다니는 비개발직군)을 되새기면서 공감할 수 있어서 좋았다.
우리는 무엇이든 될 수 있다(김진영)
다큐멘터리 PD 출신 작가가 '갭이어(Gap year)'를 가지면서, 비슷한 시기를 거친 사람들의 인터뷰와 본인의 변화를 기록한 책. 퇴사 이후 무작정 행복하다가도 갑자기 한없이 우울해지는 현타 시기가 찾아오기도 하는데, '나도 그랬어' 하고 도움이 되는 책이다.
사실 '갭이어'라는 표현이 뭔가 위안을 주는 게 있다. 미국의 청소년들은 대학 입학 전 1년 정도의 갭이어를 갖는 경우가 있다는데 이것을 회사 생활을 몇년간 하다가 시간을 두고 자신을 돌아보고 싶은 직장인들에게 적용한 것이다.
-무의 시간처럼 보일지라도 우리는 사실 언제나처럼 분투하고 있다.
-정말로 우리는 아직도 무엇이든 될 수 있구나. 그 상상의 감각만으로도 무너졌던 마음을 다시 일으킬 수 있었다.
솔로 워커 : 미치지 않고 혼자 일하는 법(레베카 실)
한참 넘치는 시간을 관리하기 힘들 때 읽고 도움이 많이 된 책이다.
처음에는 마냥 나에게 주어진 시간들이 좋아서, 오늘은 뭐도 하고 뭐도 해야지 라는 무리한 계획들을 매번 세우다가 실패가 중첩되어 의욕을 잃었다. 그때 이 책을 읽었는데, '루틴'의 중요성, 우리는 초인이 아니므로 적당히 우선순위를 세워 계획을 세우고 이루지 못했을지라도 좀 관대 해지라는 이야기가 도움이 됐다.
정말 지금 다시 보니 문장 하나하나가 주옥같다. 실제 혼자 일하고 있는 작가가 쓴 책이라서 와닿는 부분이 많다.
흔히 여러 가지 일을 동시에 관리할 수 있다고 믿지만, 사실 우리의 뇌는 멀티 태스킹을 할 수 없다. 실제로는 하나의 미결 과제에서 다른 미결 과제로 이동하는 것에 불과하다. 뇌는 새것 편향, 즉 새로 시작한다는 기분에 취약하다. 새로운 일을 시작할 때 우리는 생산적으로 느끼지만 사실은 그렇지 않다.
세상이 던지는 모든 것을 받아들이고, 처리하고 돌려보낼 수 있다고 믿지만 정작 매 순간 우리는 정보의 물결에 휩쓸려 제대로 처리하지 못한다.
“현실적인 기대를 세우고 우선순위를 정하고 스스로를 용서하는 법을 배우세요. 우리는 초인이 아닙니다”
목표를 달성하는 최고의 방법은 한 번에 하나씩 시작하는 것이다. 너무 많은 것을 한 번에 시도하려 든다면 과제에 압도당해 포기하기 쉽다. 계획은 야심 차게 세우되, 하루하루 실천 과제는 보수적으로 잡자. 하나를 완성하고 다음으로 넘어가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