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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처음이 누나 Aug 17. 2018

지극히 인간 위주의 생각이야

처음에 관하여


아침 외출은 처음이라



  지극히 인간 위주의 생각이야. 동생이 그럴싸한 문장을 내뱉었다. '잠깐인데 데리고 다녀오면 안 될까?' 돌아오는 동생의 대답은 단호했다. 처음이만 혼자 두고 외출을 해야 할 때, 어느새 이 외출이 꼭 필요한 외출인지 따져보게 된다. 굳이 분류하면 엄마를 제외한 나머지 어른들은 바깥보단 집을 선호하는 탓에 사실 외출이 많은 편이 아니다. 그럼에도 외출을 해야만 할 경우, 이 어린 걸 두고 어떻게... 짠한 마음이 차올라 애꿎은 문을 닫았다 열었다 반복하며, 처음이에게 외출 경위에 대해 장황한 설명을 한다. 물론 처음이가 듣건 말건.



  사실 공부란 게 없었다. 사랑을 많이 주면 될 거야 그걸로 충분해. 그렇게 나의 지독한 게으름은 동생을 고양이 박사로 만들었다... 동생은 각종 고양이 커뮤니티를 독파하며 오로지 처음이를 위한 고양이 연구에 몰.입.했고, 식구들의 신뢰는 상당했다. 우리는 아바타처럼 동생이 시키는 대로 정보를 습득하고 사고했다. 사료를 바꾸고 첫 식사 후, 처음이가 바닥을 몇 차례 긁었다. '먹고 난 후에 발로 긁는 건 사료가 맛있다는 표현이야.' 얼마 후 처음이는 사료를 먹기 전, 바닥을 긁어댔다. 우리는 자동반사적으로 동생을 바라본다. '그건 사료가 먹기 싫다는 뜻이야.' 인정한다. 동생의 해석이 없었다면, 무지한 나는 영영 처음이의 마음을 헤아릴 수 없었을지도 모른다.






  처음이의 두 번째 외출은 예정되어 있었다. 목적지는 동물병원. 우리가 찾은 동물병원은 의사 선생님께서 접수부터 진료까지 모든 것을 멀티맨으로 담당하고 있는 작은 병원이었다. 선생님은 처음이에 관한 이름, 생년월일 등 기본정보를 물은 후 보호자의 이름을 요청했다. 보호자? 동생과 눈이 마주쳤다. 동생의 강력한 의지를 읽을 수 있었다. 보호자에 동생의 이름을 올렸다. 동생은 마치 호적에 처음이를 올린 것 마냥 큰 의미로 받아들인듯했고, 매우 흡족한 표정이었다. 선생님은 프로의 손길로 능숙하게 처음이를 안고 이곳저곳을 살피더니, 목 더미를 사뿐히 잡아 가볍게 주사를 놓았다. 처음이는 결국 제대로 된 반항 한 번 못해봤다...

 


추운 건 못 참아_옜다! 얼굴은 보여주지



  선생님은 여유 있게 처음이를 쓰다듬으며, 동시에 여러 가지 안내사항을 일러주었다. 1. 환경이 바뀌는 거 자체가 스트레스 2. 산책은 금물 3. 장난감으로 놀아주기. 놀랍게도 모두 동생이 했던 이야기였다. 믿습니까. 믿습니다! 우리의 신뢰감은 더욱더 배가 되고, 동생은 눈꼬리를 추켜올리며 자신감을 드러냈다. 물론 동생이 알지 못한 이야기도 있었다. 선생님은 고양이가 독립적이지만 또한 외로움을 많이 탄다고 했다. 독립과 외로움의 공존이라. 이런 시적인 동물 같으니! 처음이를 절대 외롭게 만들지 않으리라... 순간의 다짐 같은 게 잠시 스쳐 지나갈 때, 선생님이 남긴 한마디 '이제 처음이 집입니다.' 즉, 처음이가 주인, 우리가 처음이 집에 얹혀사는 것. 공식적으로 처음이와의 관계를 인정받은 기분이다. 그렇다, 처음이 집이 막을 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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