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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처음이 누나 Aug 18. 2018

우리 처음인 심지어 단모인데

처음에 관하여

그래 가끔 하늘을 보자



  고양이도 성격이 있을까. 처음이도 역시 우리 집 남자였다. 우리 집 남정네들의 공통된 특징 중 하나는 ‘겁’이다. 남동생은 교복을 입던 시절까지도 밤늦게 엘리베이터를 혼자 타기 무서워 식구들을 부르곤 했었다. 군대에 다녀와서도 상황은 비슷했다. 횟수는 줄었지만 한밤중 동생의 호출에 지하철까지 마중을 다니던 시절이 있었다.



  새로 생긴 남동생 또한 겁에 있어 월등한 듯하다. 고양이라면 유연하게 즐길법한 캣타워를 겁을 내고 주저한다. 4층짜리 캣타워를 겨우 2층까지만 애용하고 있다. 장난감으로 유도를 해봐도 처음이에게 고층은 아직 버겁다. ‘비교’만큼 좋지 않은 게 있을까...싶으면서도 처음이를 데리러 간 날 만났던 (처음과 한 날 한 시에 태어난)다른 새끼 고양이는 캣타워에서 여유있게 우리를 내려 봤었다.
 





  처음이의 성장은 이제 우리의 주요 관심사이다. ‘처음이가 크지 않고 지금 이대로였음 좋겠어.’ 아빠의 가벼운 한마디가 마음에 꽂힌 건, 평소 Want형의 의사표현이 많지 않은 아빠의 바람에서 강한 진심이 느껴져서다. 그만큼 지금의 처음이가 귀엽다는 뜻이겠지만, 한편으로는 아빠의 자식으로 자라면서 우리가(어쩌면 내가) 아빠의 마음을 오죽이나 썩여서 그런 건 아닐까, 자책이 들기도 했다. 아빠의 바람과는 달리, 처음이는 하루하루 무럭무럭 자라고 있다. 자신의 의무라도 되듯이.
 


무엇에 쓰는 물건인고?



  뒷자리 직장 동료의 딸 이야기에 귀를 기울이게 된 것도 처음이의 성장 속도와 너무 비슷해서였다. 올해로 3살인 동료의 딸은 ‘엄마’와 ‘무(물)’ 정도만 말 할 수 있다고 했다. 표현 할 수 있는 것이 한정되어 있어서일까. 가끔 이로 문다고도 했다.(처음이랑 캐릭터가 겹친다) 새벽에 잠에서 깨어 놀아달라고 하는 탓에 자주 잠을 설친다고도 했다.(처음이랑 너무 겹친다) 이렇게 공통점이 많다니!
 


  동료와 '육아' 고민을 나누지 아니할 수 없었다. 동료에게 사진을 고르고 골라 무심히 보여줘 본다. 반응이 크지 않다. 오히려 딸 사진으로 응수한다. 다시 사진첩을 분주하게 오르고 내려 본다. 이 정도면 어필 할 수 있겠지. 연속적으로 사진을 들이밀어 보지만, 돌아온 반응은 훠이훠이 손짓과 함께 겨우 털.복.숭.이. 였다. 아니, 털복숭이라니... 그럴 리가 없어. 억울하다! 우리 처음인 심지어 단모인데!






호시아나 빌리지의 텐짱_특징: 입이 (매우)크다



  몇 년 전 치앙마이 여행에서 처음으로 아주 가까운 곳에서 고양이(텐짱)와 시간을 보낸 적이 있다. 도착해서야 알았지만 텐짱은 숙소의 마스코트 같은 존재 였다. 우리가 묵는 방에 들어와 너무도 당당히 동침을 요구하는 텐짱을 어찌하지 못하고 함께 잠을 청해야 했다. 하지만, 나는 보았다! 텐짱이 도마뱀을 흡입하는 것을... 그것도 두 번에 걸쳐 나눠... 이렇게 커다란 나이지만, 당시엔 텐짱이 해치기라도 할까 (진실로) 두려워 침대 밖으로 몸을 빼지도 못하고, 온 몸을 이불로 칭칭 감고 잤었다. 그 시절 나를 떠올리면 동료의 반응이 이해가 간다. 아무래도 육아의 고민은 다른 상대를 찾아야 하려나보다. 아쉽다. 딸과 참 비슷한 점이 많은 데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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