처음에 관하여
처음이와의 첫날밤, 마냥 설레지만은 않았다. 고양이의 신비로움을 바로 눈앞에서 목도하면서도 동시에 무거운 책임감이 몰려왔다. 흡사 아이를 낳은 부모의 마음이 이러할까. 여기가 어딘지, 엄마와 다른 형제들이 보고 싶진 않은지, 그저 배를 꿀렁꿀렁거리며 곤히 자고 있는 처음이를 보고 있자니, 과연 이 한 생명을 잘 돌볼 수 있을지 걱정이 앞섰다. 처음이는 더 이상 사진 속 인형 같은 고양이가 아닌 우리와 같이 숨을 내쉬고 있는 한 생.명.이었다.
얕은 잠에 들었다 깼을까. 눈을 떠보니 캄캄한 거실에서 반짝이는 건 오로지 처음이의 파란 눈동자뿐이다. 처음이는 소파에 올라가 있었다. 그래, 바뀐 환경이 낯설 테지... 짠한 마음에 ‘처음아 이리와’하며 손짓을 해 보였다. 처음이는 한동안 나를 가만히 바라만 보더니, 엉덩이를 가벼이 실룩실룩하기 시작한다. 그러더니 곧장 온몸을 내 얼굴로 내던졌다. 피해 봐도 소용이 없다. 아이컨택-엉덩이 실룩-돌격의 무한반복이다. 아직은 단련되지 않은 처음이의 손톱 또한 매우 매섭고 무섭다. 처음이의 손톱이 지나간 자리, 그야말로 벌건 상처로 가득하다.
‘애가 좀 이상해’ 동생을 깨워 도움을 청했다. 동생이 일어나자 처음이의 진격은 대상을 바꿔 새롭게 다시 시작이다. 당할 때는 몰랐는데 동생이 처음이의 사냥 대상이 된 것을 지켜보다 보니 웃음밖에 안 나온다. 저 작고 작은 아가가, 고양이가 투.지.로 가득하다. 동생의 재빠른 검색 결과, 처음이를 향한 우리의 손짓이 문제였다. 처음이는 까딱거리는 우리의 손가락을 재미난 놀이로 생각한다고 했다. 이게 놀이? 세상에! 이렇게 아픈 놀이가 있다니... 한밤의 놀이는 동생과 내 눈을 퀭하게 만들었고 처음이도 놀이의 흔적을 온몸으로 증명해 보이듯 자고 또 잔다.
잠자는 처음이는 천사가 따로 없다. 눈에만 담기에는 너무 아쉬워 사진을 찍고 또 찍어본다. 혹시라도 춥진 않을까(당시는 3월 말) 온수매트의 온도를 한 껏 높여본다. 이불도 덮어줘야지, 베개도 필요할 거야. 그렇게 부산스럽게 굴다가 처음이 옆에 누워 처음이만을 바라본다. 참아야 해. 하지만 얼마 지나지 않아 곧... 도저히 참을 수가 없다. 결국 내 가슴 위에 처음이를 올려둔 채 손으로 토닥인다. 근데 왜 내가... 행복한 걸까. 정말 왜 때문일까. 이 평화. 이 고요. 생경한 이 풍경이 마음에 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