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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처음이 누나 Aug 14. 2018

아빠가 처음이를 보며 웃는다

처음에 관하여


  초코의 큰, 슬픔을 뒤로한 채 개똥이를 데리고 나섰다. 개똥이는 그동안 자신에게 온 정성을 다해 먹여주고 물어주고 핥아주던 어미의 마음을 아는지 모르는지 동생의 품에 제법 안정적으로 안겨있다. 애초 우리의 예상과 달리 품에서 뛰쳐나가는 날렵한 고양이의 모습은 상상도 못 할 만큼 개똥이는 아주 조그마했다. 오히려 힘주어 안을 경우 몸이 바스러지지는 않을까 걱정을 해야 할 정도였다.






  집으로 들어서자 아빠의 얼굴은 낯설었다. 약간은 상기되어 수줍게 양손으로 작은 손가락 하트를 내보이며 ‘처음아’라고 불러줬다. 그렇게 개똥이는 처음이가 되었다. 잠깐, 처음이를 알기 전 아빠를 돌이켜보면, 반려 동물을 키우는 사람들을 이해할 수 없다! 이 한 문장으로 갈음할 수 있다. 아빠는 확고했고, 완고했다. 이해할 수 없기에 자신이 동물과 함께 생활하는 것은 아마도 단 한.번.도. 생각조차 해보지 않았을, 그런 아빠가 처음이를 보며 웃는다.



  느린 걸음마로 처음이는 거실 구석구석을 돌아다녔다. 어른 넷의 눈동자도 처음이의 뒤만 졸졸 쫓는다. 아마도 그 날부터였을 것이다. 처음이의 모든 행동 하나하나가 우리 가족의 주요 관심사가 된 것이. 처음이는 좁은 틈이 좋았는지 아빠의 양반다리 안으로 들어가 아빠의 파자마 끈에 집중하기 시작했다. 물론 어른 넷은 그것도 기특하고 신기하여 한참을 바라본다. 그러던 중 처음이는 작은 예고도 없이 거의 기.절. 수준으로 잠에 들었다. 사람으로 치면 신나게 이야기를 하던 상대가 갑자기 잠에 들어버렸다고 할까. 아빠는 이러지도 저러지도 못한 채 잠에 든 처음이를 다리 사이에 두고 멈춰있다.
 

서열을 아는 현명한 처음_오늘은, 가볍게, 아빠 마음부터 훔쳐볼까냐옹


  상의 끝에 처음이와 우리 자매가 함께 자기로 했다. 동생은 이미 각종 커뮤니티를 섭렵하여 고양이 준 박사가 다 되어 있었다. 아기 고양이들의 경우 너무 작아서 자칫 잘못하면 압사하는 경우가 있으니 주의를 해야 한다고 했다. 그렇게 ‘움직이지 않는 잠’을 청하며 조금 눈을 붙였을까. 곤히 잠을 자고 있던 처음이가 소파에 올라가 나를 보고 있다. 그러더니 곧장 내 얼굴로 온 몸을 던지며 달려든다. 피해도 소용이 없다. 다시 얼굴로 돌격 또 돌격. 도대체 너 왜 그러는 건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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