처음에 관하여
친구가 아기 고양이들의 사진을 보내왔다. 어떤 아이가 예쁘냐고 물었지만 내 눈엔 고양이 얼굴이 다 똑.같.아. 보였다. 다시금 진지하게 사진을 살펴보니, 정말로 오묘하게 다섯 아이가 각기 다른 얼굴을 지니고 있었다. 그리고 신기하게도 한 아이가 눈에 들어왔다. 캣타워에 달린 해먹에 누워 고양이 본연의 도도한 분위기를 내뿜고 있는 아이. 아직 주인이 정해지지 않았다는 두 마리 중 한 마리, 아니 두 명 중 한 명이었다.
아기 고양이가 어미로부터 분리되기까지는 약 8주간의 시간이 필요하다고 했다. 그동안 우리는 아기 고양이를 맞이할 준비를 시작해야 했다. 생각보다 고양이가 필요한 물건은 많지 않았다. 사료, 모래, 화장실 특히 마음속으로 점찍은 아이를 위한 해먹이 달린 캣타워까지, 만난 적도 없는 (사람이 아닌) 고양이를 위해 이렇게 노력과 시간과 돈을 들이고 있는 게 낯설어 우습기도 하면서도 기분 좋은 설렘으로 다가왔다.
고양이의 이름은 여전히 미정이었다. 그 가운데 마치 태명마냥 고양이를 개똥이라 부르기 시작했고, 그렇게 개똥이가 입에 붙었다. 아빠는 이름을 천하게 지을수록 오래 산다며 개똥이를 정식 이름으로 하는 게 어떠냐고 했다. 그러고 보니 아빠는 꽤나 개똥이란 이름을 애정 했었다. 동생들이 어릴 적엔 개똥이, 뚱이, 똥이 등등 비스무리한 이름들을 부르곤 했다. 하지만 그래도 고양인데 개라니 게다가 똥이라니 그건 좀...
아빠가 개똥이와 만나는 순간 떠오른 이름을 부르는 것으로, 이름에 관한 선택권을 아빠에게 맡겼다. 수많은 이름이 있었건만, 결국 살아남은 이름은 두 개였다. 한동안 쭈욱 불러온 개똥이와 고양이를 데리러 가는 날 무심코 동물도 고양이도 우리에겐 처음이니깐 처음이. 개똥이 vs 처음이, 처음이 vs 개똥이
고양이를 데리러 가는 당일, 동생과 나는 사뭇 비장했다. 고양이를 담요로 안기로 한 동생은 가는 내내 고양이가 품에서 뛰쳐나가면 어쩌냐며, 가방을 준비했어야 했다며 걱정이 한가득 이었다. 물론 나도... 하지만 고양이들의 실물을 접하자마자 이러한 걱정은 다 무색해졌다. 그도 그럴 것이 너무 작.았.다. 다섯 명 중 이제 두 명만이 남겨져 서로 뒤엉켜 꼬물대고 있었다. 초코(어미 고양이)만이 무언가를 짐작이나 한 듯 초조하게 새끼들 주변을 뱅뱅 맴돌았다.
고양이의 얼굴은 정말 다 같은 게 아니었다. 마음에 들었던 사진 속 아이를 한눈에 찾아낼 수 있었다. 하지만 내 마음을 아는지 모르는지, 마음에 품었던 고양이는 멀찍이 떨어져 우리를 지켜볼 뿐이고 이게 웬 걸! 나도 있다며 존재감을 드러내려는 듯, 나머지 한 마리가 스멀스멀 내 발로 기어 올라왔다. 그러곤 한참을 그렇게 내 주위를 정확히는 내 발을 맴돌았다. 친구는 이런 걸 간택이라고 했다. 나는 간택을 당한 거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