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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처음이 누나 Aug 21. 2018

말없이 투정을 들어준다

처음에 관하여

  


  작은 처음이로 인한 변화는 결코 작지 않다. 아니 매우 크다. 처음이를 알기 전, 길에서 우연히 만나는 고양이는 그저 모두 다 도.둑.고양이였다. 눈에 보이지만 나와는 전혀 상관없는, 그렇지만 피해야 하는 존재. 그래, 그런 시절이 있었다. 이제는 완전한 과거형이다. 지금의 나는, 길냥이로 불리는 아이들을 마주할때면 동시에 처음이가 겹쳐져 발을 떼기 어려운 정도다. 입 밖으로 ‘야옹아’ 하고 먼저 인사를 하고야 마니... 그러면 그 말 한마디가 뭐라고. 내 앞에서 벌러덩 배를 보이는 아이, 지긋이 바라보는 아이 바깥 아이들의 반응은 다양했다.



어느 봄날_나른한 야옹이



  그중 집 근처 야옹이는 처음이와 사뭇 달랐다. 자신이 고양이인 걸 목청껏 외치듯 야옹 야옹 야옹을 반복했다. 야옹아 한 번에, 메아리처럼 야옹*3이 되돌아왔다. 기특하기도 하지. 언젠가 퇴근길에 만난 야옹*3은 쓰레기 분리수거장에서 분주하게 움직이고 있었다. 가만히 살펴보니 먹을 것을 찾고 있던 모양이다. 우리 집 공식 고양이 박사에게 연락하여 고양이가 먹어도 되는 음식을 급하게 물어본다. 하지만, 황량한 나의 집에는 먹을 것이라곤 삶은 계란뿐이다. 노른자 몇 알과 물을 담아 야옹*3에게 내밀어봤지만, 이 녀석 취향이 아니었나 보다. 다음날에도 노른자와 물만이 덩그러니 놓여있었다.






  일주일에 처음이를 만날 수 있는 시간은 주말뿐이다. 처음이는 잊을만하면 나타나는 나를 알아보는 건지 문 앞에 나와 반겨준다. 그르렁거리며 얼굴을 비벼주고 꼬리를 살랑거린다. 가끔 나를 보고 밥을 숨겨서 서운하긴 하지만... 처음이와 밀린 대화를 나누면서부터 진정한 주말의 시작이다. 핸드폰 액정이 깨져서 속상해, 나에게 왜 이런 일이 그래서 속상해, 너를 매일 볼 수 없어 속상해. 이것저것 말하다 보니 이번 주는 속상 투성이네. 처음이는 매일 똑같은 사료만 먹는데도 불만이 없는데... 처음이는 (월요일에 헤어져 금요일에 상봉하는 거지만) 만나는 금요일엔 부쩍 커 보이다가 헤어지는 월요일엔 다시 아가가 되어있다. 그런 아가가 말.없.이. 투정을 들어준다. 그게 또 위로가, 위안이 된다.



가끔은 토끼_귀 쫑긋



  위로를 더 빈번히 가까이 받아서일까. 처음이가 집에 온 후 엄빠의 웃음소리는 '결'이 달라졌다. 온전히 의성어로 묘사하기엔 부족하고, 엄빠에게 이런 웃음소리가 있었나 싶을 정도로 낯설지만, 그만큼 소중하게 다가온다. 아마도 처음이는 우리 삼 남매가 해줄 수 없는 어느 부분을 대신하고 있는 듯하다. 물론 처음이의 큰 위로에도 종종 엄마의 걱정은 이어진다. '처음이도 이렇게 예쁜데, 사람 새끼는 얼마나 예쁠까.' 엄마의 혼잣말 아닌 혼잣말을 들으며, 나도 혼잣말로 답해본다. '처음이가 사람보다 나을 걸.' 기여코 엄마가 나를 흘겨보게 만든다.(엄마, 그래서 말.없.는. 처음이가 사람보다 낫다는 거야. 딸 키워봐, 엄마 마음도 몰라주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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