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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처음이 누나 Aug 27. 2018

이상한 숨바꼭질이었다

처음에 관하여


숨은 걸까?



  처음이의 영역은 빠른 속도로 확장되어 갔다. 매주 금요일, 집에 돌아오면 처음이가 출입할 수 있는 공간은 점점 늘어나 있었다. 거실→작은방→안방→화장실→서재 순으로. 처음이의 거주 공간을 거실로만 못 박았던 식구들은 닫힌 문 앞을 끝끝내 지키는 처음이의 끈기에 감동한 건지, 문 앞에서 처량하게 고개 숙인 처음이의 모습에 마음이 약해진 건지 그렇게 공간을 하나, 둘 내어주고 있었다. 거실만으로 충분해 보였던 처음이의 공간은 새로운 방 문이 열릴 때마다 또 다른 세계가 펼쳐졌다.



  영역이 넓어진 이는 처음이 만이 아니었다. 초파가 집을 나간 것이다.(초파는 처음이의 친부로, 초코의 남편이다.) 요즘 들어 자꾸 창문 밖을 내다보더니 결국 사달이 났다고 했다. 초파를 실제로 본 건 처음이를 데리러 가던 날, 단 한 번 뿐이었지만, 이제 우리는 남이 아니다. 우리 사이엔 처음이가 있다. 집에서만 길들여진 초파가 보호막이라곤 없는 야생의 ‘길’로 떠났다니. 최근 들어 밖을 내다보기 시작한 처음이의 뒷모습이 겹쳐졌다. 식구들은 초파의 가출 소식에 창틀 테이핑, 베란다 출입 금지령 등 경.계.태.세.를 강화했다.



나를 찾아줘



  식구들의 높아진 긴장감과는 달리 처음이는 공간 활용에만 몰두했다. 우리가 관심도 두지 않던 틈새만을 골라 공간을 창조했다. 본능적으로 몸을 조정해가며 비좁은 공간에 자신의 몸을 맞춰 나갔다. 거실 소파 뒤를 긴 터널처럼 이용하던 그는, 안방 문이 열리니 침대 밑의 광활한 평야를 향해 떠났다. 이후 서재 방 문이 열리자 제멋대로 엉켜있는 컴퓨터 전선들은 처음이의 정글이 되었다.






  그 틈새에서 처음이는 우.스.운. 숨바꼭질을 즐기기 시작했다. 술래는 없는 숨바꼭질이었다. 하나, 둘, 셋도 없이 먼저 숨고 보는 숨바꼭질이었다. 자신의 눈만 숨기고, 나머지 몸은 공개하는 이상한 숨바꼭질이었다. 술래가 찾지 않으면 신호를 주는 숨바꼭질이기도 했다. 평소엔 쉽게 들려주지 않는 고양이 울음소리로 신호를 보내며 재촉했다. 야.아.옹. 그래도 애써 찾지 못하는 시늉을 하고 있으면 신나게 튀어나오며 정체를 드러냈다. 그래, 너만 행복하다면...! 누나가 좀 더 진지하게 임해볼게...



돌아온 탕자, 초파



  몇 차례 소식을 물어도 아직 돌아오지 않았다는 답만을 건네 들은 후, 아마도 초파가 영영 돌아올 수 없으리라 생각했다. 하지만 초파는 예상보다 영민했다. 초파가 집을 나선 지 일주일을 넘어간 어느 새벽, 초파는 울고 있었다. 베란다 에어컨 실.외.기. 위에서. 다행히 초파의 집은 1층의 아파트이다. 초파의 몸은 길 위의 혹독함을 증명이나 하듯 여러 군데 상처가 나 있었고, 한동안 메인 집사의 무릎 위에서 벗어나지 않았다고 한다. 돌아온 탕자! 초파에게 더 이상의 시련은 없기를. **한 가지 의문은 초파는 집 안에서만 밖을 바라봤을 텐데, 겉보기엔 구별이 쉽지 않은 아파트(집)을 어떻게 찾을 수 있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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