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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처음이 누나 Feb 13. 2019

세계와 세계

처음에 관하여

  

  주말 부부가 어울리는 나이지만, ‘주말 식구’를 하고 있는 요즘, 주말에만 만나는 식구들을 대나무 숲으로 초대하곤 한다. 나의 대나무 숲이란 이런 곳이다. 식구들은 알지 못하는 나의 ‘세계’ 속, 여러 가지 에피소드(어쩌면 푸념, 하소연)가 가득한 곳. 식구들에겐 절대적인 리스닝과 리액션이 요구되는 곳.


  대나무 숲에서 식구들은 연신 고개를 끄덕여가며 흥미를 가지고 집중하다가도, 적정 순간이 되면 한계치를 드러내곤 한다. 그때까진? 맥락도 없이 이 이야기, 저 이야기 신속하고도 신나게 쏟아내야 한다. 왜냐면 식구들이 언제 곧, 싫증을 낼지 모르므로. 여느 때와 같이 이야기를 배출하고 있는 나에게 엄마가 나지막이 한마디 건넨다.


  ‘널 낳아준 엄마하고도 마음이 맞지 않을 때가 있는데, 생전 남과 다 맞을 수 있겠어?’


  부정할 수 없는 사실이다... 조용히 그날의 대나무 숲을 마무리해야 했다.



  생존을 두고 매일 시험대에 오르고 있는 길 고양이들의 삶과 어찌 비교하겠냐 만은 (의)식주를 담보하는 대신 평생 외부와 차단된 생활을 해야만 하는 집 고양이, 최처음을 지켜보자니 과연 처음이의 세계는 어떠할까 궁금하다. 정녕 배고플 때 먹고, 잠잘 때 자고 한량처럼 생활하는 처음이라지만, 과연 처음이의 하루는 만족스러울까. 매일 똑같은 사료를 먹고, 주위를 둘러봐도 동족은 찾아볼 수 없고, 인간으로 가득한 처음이의 세상... 인간도 매번 보던 얼굴만 있는 그런 세상!


  하긴 처음이는 자신이 인간인 줄 알고 있을지도 모르겠... 다.






  처음이는 누나의 복잡한 생각은 모른 체, 잊힐 만하면 나타나는 나를 보고 그르렁그르렁 거릴 뿐이다. 처음이의 감정을 겨우 그르렁 소리로만 가늠할 수밖에 없는 가난한 나는, 그렇기에 더더욱 그르렁을 이끌어내기 위해 처음이 앞에서 재롱을 부리기에 분주하다. 그르렁이 전해주는 묘한 안도감을 확인하고 싶은 것이다.



  처음이의 세계는 오로지 우리뿐이다. 그래서 처음이는 지루할지도 지금도 심드렁한 마음을 프로처럼 잘 숨기고 있는 것일지도. 그래도, 그렇다 하더라도, 아직까진 우리에게 그르렁을 들키곤 하는 처음이의 세계를 계속해서 풍성하게 만들어 주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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