처음에 관하여
서울살이를 하던 시절, 혼밥이란 단어조차 없었던 그 당시, 첫 혼밥의 기억은 서.러.운. 것이었다. 회사에서 점심을 나 홀로 해결해야 하는 순간이! 나에게도 왔던 것이다. 이태원 어느 KFC 매장에 들어가 햄버거를 먹는 건지 남의 시선을 먹는 건지 모르게 그렇게 햄버거와 감자튀김(...콘샐러드도...)을 먹었다. 그 이후에도 몇 차례 강제 혼밥을 하다 보니 혼밥은 더 이상 쓸쓸한 것이 아니요, 마치 고독을 즐길 줄 아는 어른이 된 듯 한 착각에 들게끔 만들어주는 것이기도 했다.
혼밥이 대세라는 요즘 이 와중에도 트렌드를 거부하는 남자가 있다. 바로 우리 집 최처음이다. 참고로 처음이는 삼시 세 끼를 모르는 고양이이다. 처음이는 밥을 먹고 싶을 때 식구 중 누군가에게 신호를 보낸다. 함께 밥을 먹으러 가자는 것이다. 최처음의 요구는 여기에서 끝나지 않는다. 자신의 먹는 모습을 지켜봐 달라고까지 한다. 특히 아빠가 처음이의 주된 표적이 되곤 하는데 혼밥 메이트 혹은 혼밥 관찰러로 임명되곤 한다. 둘의 대화는 보통 이러하다.
처음: 야옹
아빠: 왜? 처음이 왜?
처음:(어서 반응을 하라옹. 조금 강도를 높여볼까 애처로운 눈빛을 발사하며) 야아옹
아빠:(에헴! 간택을 받아 기쁘지만 애써 귀찮은 듯 한 목소리로) 알았어. 가자.
동생은 습관이 된다며 만류하지만, 어릴 적부터 처음이는 밥그릇보다 손으로 주는 밥을 더 잘 먹었다. 그때만 하더라도 밥그릇과 크기가 비슷했던 처음이가 이제, 훌쩍 자랐다. 요즘 들어 부쩍 목소리도 내기 시작하는데 엄마, 아빠는 귀여운 착각에 빠져있는 듯했다. 엄빠의 주장을 풀어보면 이러하다. 처음이가 말을 하기 시작했다는 것이다. 흡사 부모들이 우리 아기가 옹알이를 시작했다는 것과 비슷했다. 엄빠의 진지한 제보에 따르면 단순한 ‘야옹’이 아닌... 처음이가 엄빠를 향해 ‘엄마앙', '아빠앙’이라고 오묘하게 구분하여 부른다고 했다. 이를 어째! 엄마, 아빠가 처음이에게 너무 정을 줬어. 푹 빠지고야 말았어...
하지만 이게 웬 걸. 엄빠가 집어주는 포인트대로 주의 깊게 듣다 보니 처음인 정말 말하는 고양이었다. 단지 과.묵.할.뿐이었다. 식구들이 필요한 순간 즉 혼밥을 하기 싫을 때, 사료가 바닥났을 때 등등 주로 밥과 관련하여 할 말이 많아 보였다.
그럼에도 유일하게 밥이 아닌 순간도 있었다. 식구들에게 이야기는 자주 들었지만, 어느 새벽녘 잠시 눈이 뜨였을 때였다. 나는 목격을 하고야 말았다. 처음이는 안방 문 앞에서 ‘엄마앙(어쩌면...야아옹)’을 외치고 있었다. 그리고 잠시 후 눈을 비비며 엄마가 문을 열고 나왔다. 그렇게 처음인 새벽 미사에 가기 위해 일찍 일어나야 하는 엄마에게 성실한 알람 역할을 도맡아 하고 있었다. 잠에 들어 미사를 놓칠 뻔 했을 때도 처음이의 도움(엄마앙)으로 일어난 적도 여러 번이라고 했다. 오늘 아침의 풍경도 비슷했을 것이다. 처음이는 엄마를 깨우고, 당당히 혼밥을 거부하며 자신의 일상을 꾸려가고 있을 것이다. 희망해본다. 처음이가 성묘가 되더라도 쭈욱 혼밥을 거부하며 우리를 자주 불러주길. 또 희망해본다. 나에게도 불러주길. '누나앙'...