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우디 주교궁이 있는 아스트로가 지나 무아리스

사랑은 위대하다. 오르비고 '명예의 통로'

by 산달림

오늘 걷는 길은 초반은 단조로운 평원을 지나고 오르비고 강 위의 다리는 건축학적 이유보다 다리에 관한 전설로 더 유명한 곳이다. '명예의 통로'란 이름을 가진 중세에 건설된 고풍스러운 아치형 로마네스크 다리다. 역사 속의 이야기에 소설적인 내용이 더해 널리 알려진 다리다.


산 마르틴 공립 알베르게는 난방 장치가 없어 추워서 새벽 5시 깨어 일어났다. 알베르게에서 챙겨 주는 빵과 시리얼 그리고 따뜻한 차로 마시고 5시 45분에 길을 나섰다. 여전히 어둡고 가로등 불빛을 받으며 마을을 벗어나면서 랜턴을 켜고 걸었다. 이내 동녘이 밝아 오고 다음 마을을 지날 때는 해가 뜬다. 일출은 희망, 꿈, 내일, 절음, 생명의 탄생을 느끼게 한다. 그러고 보니 순례길에서는 늘 새벽에 길을 나섰다. 한낮의 햇볕을 피하고 원하는 곳의 숙소를 잡으려면 이 방법이 제일 좋은 선택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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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직도 어두운 산마르틴 마을(좌) 사방이 밝아 오는 주변 풍경(우)


이곳 날씨는 하루의 일교차가 커 아침은 9도 한낮은 26도 정도로 15도의 일교차가 있다. 아침에는 긴팔에 바람막이까지 입어야 되고 한낮에는 반팔이나 얇은 긴팔이 제격이다. 순례길은 도로를 따라 함께 걷다 보면 4.2km 떨어진 비야반테는 어제 이곳까지 걷고 싶었던 곳이다. 더운 한낮에 걸었으면 고생 꽤나 했을 텐데 새벽에 걸으니 편하게 걸을 수 있었다.


돈키호테의 모티브가 된 오르비고의 다리


오르비고 다리는 사랑을 증명하고자 하는 기사에게 사랑을 나타내고 기사의 명예를 지키기 위한 위한 도전으로 "명예의 통로"라 불린다. 13세기 건설된 이 다리는 세르반테스의 소설 돈키호테의 모티브가 된 돈 수에르 기사의 이야기가 있다.


레온의 기사 돈 수에르는 흠모하던 여인에게 사랑을 고백했으나 거절당한 후 자존심에 상처를 입은 그는 누구든지 이 다리를 건너 가려는 기사가 있다면 그에게 명예의 결투 신청을 할 것이라 선언하였다. 그는 한 달 동안 300개의 창을 부러뜨렸으며 매주 목요일에는 쇠고랑을 목에 차고 결투에 임했는데 한 달 동안 돈 수에르는 이 다리 위에서 결투하러 온 유럽 도처의 기사들과 산적들을 상대로 싸워 이겼다.

그중 카 딸 루나의 기사 한 명만 실수로 창에 눈이 찔려 죽고 그 결투에 임했던 다른 모든 기사들은 산티아고로 순례의 길을 떠났다. 돈 수에르도 흠모하던 여인으로부터 받아 항상 지니고 있던 팔찌를 야고보에게 바쳤다. 남들이 보기에는 무모한 결투였는지 모르지만 사랑을 증명하고자 하는 기사에게는 한없이 진지한 도전이었을 것이다. 지금도 축제 때는 이곳 다리 아래 결투장에서 말을 타고 목장으로 하는 결투하는 모습을 볼 수 있다고 한다.


동화의 마을같이 예쁜 오르비고 마을


중세 아치형 다리가 있는 오르비고는 마치 동화의 마을 같이 하루 쉬어 가고 싶은 마을이다. 마을을 뒤로하고 걷다 보면 순례길은 두 개의 길로 갈라 진다. 왼쪽 길은 도로를 통하는 짧은 길이며 정통 카미노 길은 산길을 따라 걷는 길이다. 거리 차이는 딱 1km 차이다. 도로를 따라 걷는 길은 삭막하니 1km가 긴 정통 순례길을 권하고 싶다.


카미노 길에서 산티아고 대성당에 도착하는 것만이 이 길의 목적이 아니다. 목적지에 도달하는 것보다. 중요한 것은 하루하루의 과정을 즐기고 느끼며 채워 나가는 게 더 중요하다. 편안함을 바라고 이 길에 선 게 아니라면 느낌이 있는 정통 순례길을 걸어 보는 게 맞는 것 같다.


아스트로가가 보이는 산토 토리비오 십자가 언덕


산토 토리비오 십자가 언덕에 올라서니 멀리 아스트로가가 빤히 내려다 보인다. 그곳까지 6.2km로 먼 거리는 아니다. 십자가 옆에서 기타를 치며 순례자들을 응원하는 그의 옆에는 도네이션 함이 있다. 언덕을 내려 서니 왼쪽으로 전원주택이 마음을 사로잡는다. 이런 아름다운 자연에 그림 같은 집이 주변과 너무 잘 어울린다. 그곳 순례길에는 갈증에 지친 순례자가 물을 마시는 동상이 서 있다. 스페인의 더위에는 목마름이 가장 큰 고통이다.


십자가 언덕 아래 목 타는 순례자를 잘 표현한 순례자 동상


아스트로가 마을로 들어가는 길에는 긴 녹색의 철다리가 있다. 그걸 가리켜 순례자들은 비 효율적인 다리라 한다. 자전거가 다닐 수 있는 철로를 건너는 다리는 지그재그로 몇 번을 왔다 같다를 반복한다. 다시 언덕을 오르면 아스트로가 중앙광장이다. 광장 중앙에는 사자가 독수리를 잡는 동상이 자리 잡고 있다. 아스트로 가는 성벽 안의 도시로 오래전부터 교통의 요지로 일찍이 왕실의 가축을 몰고 가는 유목의 통로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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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스트로가 공립 알베르게 앞에 있는 동상(좌) 중앙 광장에 있는 독수리를 때려잡은 사자동상(우)


17세기 바로크 양삭의 시청사는 종탑과 문장이 그대로 있으며 뾰족한 첨탑도 있는 건물이다. 뭐니 뭐니 해도 이곳의 대표적 건물은 주교 궁이다. 가우디 작품으로 지금은 카미노 박물관으로 사용하고 있다. 이 건물은 곡선과 원형이 많은 게 특징인데 마치 디즈니랜드의 건물처럼 보인다. 또한 그 옆에 자리한 대성당도 어느 성당 못지않게 기품이 느껴지는 성당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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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우디 작품인 주교궁은 디즈니랜드가 연상된다. (좌) 아스트로가 대성당(우)


이제 12시 반을 지니고 있기에 알베르게 들기는 이른 것 같아 좀 더 걷기로 하고 길을 나섰다. 길가에는 야생 양귀비가 흐드러 지게 펴 있다. 잠시 쉬는 사이 일행은 그 꽃을 꺾어 발가락 사이사이에 끼워 장식을 한다. 왜 그리 곱게 꽂았냐고 물으니 "그간 발이 너무 고생을 한 것 같아 꽃을 선물했단다." 그래서 한바탕 웃었다. 순례길에서 가장 고생하는 것은 신체 부위 중에 발이 제일 힘들 것 같다.


순례길의 작은 성당의 한글 ' 신앙은 건강의 샘'


고속도를 건너기 전 작은 마을을 지나는데 한글이 눈에 뜨인다. 작은 성당인의 입구에 "신앙은 건강의 샘"이란 글귀가 있다. 한글에 이끌려 잠시 들렸다 걸었다. 육교를 넘어 무루시아로 가는 가는 길은 한낮으로 가면서 열기가 점점 뜨거워진다. 너무 더워 28.7km를 걷고 이 마을 공립 알베르게에 들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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땡볕에 무르시아로 가는 순례길(좌) 세월의 흔적이 느껴지는 무르시아 건물(우)

알베르게에 들면 늘 하던 데로 샤워를 하고 빨랫감을 꺼내 손세탁을 했다. 햇살이 워낙 좋아 두 시간만 지나면 뽀송뽀송하게 마른다. 잠깐 낮잠을 자고 마을 산책을 나섰다. 이 마을도 유서 깊은 마을인지 성당에서 연륜이 느껴진다. 작은 마을이지만 알베르게가 3개나 있고 바가 3개나 있는 순례길의 요충지인 셈이다. 순례자 메뉴로 식사를 하고 오니 빨래가 바짝 말랐다. 오늘도 무사히 순례길을 끝냈음에 감사한 날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