질투심을 주는 타자와 기쁘게 연대하자

엘레나 피렌테의 나폴리 4부작 '나의 눈부신 친구'가 나에게 남긴 것

by 조승희

남편은 며칠 전 죽마고우에게서 연락을 받았다. 그들은 둘 다 타향살이를 하기에 명절, 고향에나 가야 한 번 만날까 싶은 사이이다. 전화나 문자도 자주 하지 않는다. 남자들의 우정은 세세한 배려보다는 거친 의리의 분위기가 듬뿍 묻어나는 경우가 많은데 둘 사이도 비슷한 듯했다. 평소엔 남같이 지냈다. 그러다 결혼이나 돈이 필요한 큰 일에 손발 걷어붙이고 나서서는 자신이 아직 네 옆에 있다고 슬며시 이야기하는 친구였다. 그 친구가 20년 넘게 꿈꿔오던 일에 성공하여 먼 나라로 떠나게 되었다는 소식이었다.

“그렇게 부단히도 노력하더니 참 잘 됐다. 정말 대단하지 않니? 부럽다... 나는 이대로 괜찮은 걸까.” 남편의 축하가 진심이라는 것이 와 닿았지만 마지막 말은 마지막 남은 커피 한 모금만큼이나 씁쓸했다.

「나의 생은 미친 듯이 사랑을 찾아 헤매었으나 단 한 번도 스스로를 사랑하지 않았노라」

기형도의 시 구절이 떠올리게 하는 밤이었다.


질투는 나를 팽팽 잘 돌아가게 하는 팽이의 채찍질 같았다. 잘 굴러가고 싶을 때는 약이었는데 그만 멈춰 쉬고 싶을 때는 독이었다. 질투는 그 대상을 가렸다. 모르는 타인이 아닌 친밀한 사이에서 얼굴을 더 자주 디밀었다. 축하하는 마음도 잘 되었으면 하고 바라 왔던 것도 사실이었다. 그런데 그게 아니었던가. 보이고 싶지 않은 민낯을 들켜버리는 기분이었다. 이런 양가적 감정으로 인해 질투는 도덕적인 자책감과 함께 왔다. 내가 바게트를 좋아하고 잘 만들어도 친구가 크림빵을 잘 만들어 칭찬이라도 들으면 갑자기 크림빵이 더 맛있어 보이도록 하는 것. 한 술 더 떠 저것을 내가 너보다 더 잘 만들어야겠다는 생각으로 가득 차게 만드는 것. 질투란 내게 미스터리 한 녀석이었다.


분명히 내 것이 맞지만 겉으로 대놓고 인정하기 어려운 감정들을 직면하게 해주는 책들은 여운이 오래간다. 엘레나 피렌테의 나폴리 4부작 시리즈를 출판사 판매 직원처럼 강력 추천하고 다닌 이유도 그 때문이었다. 책은 두 여인, 릴라와 레누의 어린 시절부터 노년기에 이르기까지를 그리고 있다. 나폴리라는 낙후된 이탈리아 남부 도시를 배경으로 격동의 현대사를 지나온 주인공들의 삶이 생생하게 묘사된다. 사랑과 배신, 우연과 운명, 가족과 사회 등 한 인간이 겪을 수 있는 인생사와 감정들이 고스란히 담겨 있다. 심장을 끄집어내어 보여 주는 듯한 심리 묘사, 군더더기 없는 전개, 인간과 사회, 삶에 대한 작가의 통찰력, 다 훌륭했다. 레누가 릴라에게 느끼는 열등감을 그리는 부분, 그것이 어떻게 동력이 되어 자신의 삶을 변화시키는지. 또 어떻게 잘못된 선택으로 이끌고 가는지를 보는 것은 책값을 열 배로 돌려받는 기분이 들게 만들었다.


릴라는 천재성 가지고 태어난 불운의 모차르트, 레누는 평범한 사람들의 대변인 살리에르였다. 그 비범함을 마을 사람 모두가 알았으나 모두 릴라를 동경하고 모방한 것은 아니었다. 레누만이 릴라를 쫓아 그녀를 따라가기 위해 끊임없이 노력했다. 인형 대신 선택한 책 한 권으로 꽃피는 우정과 질투가 어찌나 내 마음을 흔들어놓았던지. 공식 외우듯 책을 읽던 레누가 권위에 기대지 않고 자유로운 책 읽기를 보여주는 릴라를 향해 타오르던 질투심. 그 해변의 한 장면에서 나는 오래도록 레누가 되어 가슴에 불길이 꺼지지 않았다.


‘조만간 릴라의 파일에서 내 글보다 훨씬 좋은 글이 나오면 어떻게 하지? 나는 평생 기억될 만한 소설을 쓰지 못했는데 릴라는 수년 동안 그런 글을 쓰고 또 쓰고 있는 거라면?' 올리비에로 선생님이 부담스러워했을 정도로 뛰어났던 『푸른 요정』에 나타난 릴라의 천재성이 노년이 된 지금에 와서 활짝 피어나는 것은 아닐까? 정말 그런 일이 벌어진다면 릴라의 책은 내가 실패했다는 증거가 될 것이다
-잃어버린 아이 이야기 중


많은 것을 이룬 노년이 되어서도 레누는 자신의 성공에 자신이 없었다. 릴라가 본격적으로 글을 쓴다면 자신이 평생 이루어놓은 성과가 무의미해질 것이라 생각하며 불안해한다. 과한 칭찬으로 자신의 감정을 숨길 수 있겠지만 자신과 릴라의 사회적 위치 관계가 바뀌는 것은 감당하지 못할 것이라고 고백한다. 내가 조금 낫다고 느낄 때만 넓어지는 아량이란 얼마나 얄팍하냐고 나는 나 대신 레누를 질책해 본다. 그녀의 질투가 행복으로 가기 위한 창조적 몸부림이기를 기대했으나 순전히 타인이 가진 것에 대한 시기와 부러움에 지나지 않았다는 점이 여실히 부각되었다. 질투가 나의 힘이라 믿는 해피엔딩을 원했지만 기대는 어긋났다. 그러나 삶은 소설이 아니고 실전이기에 나는 레누를 벗어나고 싶었다.


브런치는 생각보다 놀라운 곳이었다. 연령, 직업을 불문, 많은 사람들이 자신의 개성과 문체를 바탕으로 올리비에로 선생님이 부담스러워했을 정도로 뛰어났던 『푸른 요정』을 매일 쓰고 있었다. 진솔하면서도 개성적인 문장들이 성실함을 만나 반짝거리고 있었다. 그들은 이청준이나 김소운이 아니었기에 내 질투의 대상이 되기 충분했다.


'너는 나의 눈부신 친구'라고 말했던 릴라처럼 살아가며 우리는 모차르트와 살리에르 역할을 반복해서 맡았을 것이다. 부러움을 서로 주거니 받거니 했다는 것을 레누가 알았더라면 좋았을 텐데. 그들의 글을 읽고 내가 글을 쓰듯, 누군가가 내 글을 읽고 펜을 들겠지. 질투의 불길이 솟을 땐 나의 바게트는 너의 크림빵과 다르다는 생각을 할 수 밖에. 그래야만 팽이는 원만히 돌며 새로운 창조의 길을 열 것이다. 릴라와 레누는 불화했지만 서로를 존경했던 고갱과 고흐였다. 존경과 질투는 한 끗 차이 아닌가.


혼자 하는 일에는 심장이 뛰지 않았다는 것을 인정했던 레누. 나도 이 곳에 발을 들이길 잘했다. 여기서 평생의 라이벌이자 영감을 주는 뮤즈, 나의 ‘릴라’들을 자주 대면하게 된다. 질투는 ‘너를 닮고 싶다는 최고의 찬사’라 했던가. 끝끝내 나는 해피엔딩이고 싶기에 한 끗의 차이를 떠올린다. 우리, 질투를 부르는 타자들과 기쁘게 연대하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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