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LaVidaCoreana Sep 11. 2018

왜 퇴사 후 스페인으로 왔을까?

스페인에서 외국인으로 살아가기 #01 퇴사 후 스페인을 선택한 이유

올해는 살아오면서 경험할 것이라고 생각하지 못했던 많은 일들을 경험했고, 그래서 지금의 내가 과연 내가 회사를 그만두고 스페인을 선택했을 때 정말 원했던 모습인가? 나는 지금 행복한가?를 좀 더 깊이 생각하게 되었다. 그래서 오늘은 왜 내가 퇴사라는 선택을 하게 되었는지, 그리고 왜 스페인을 선택했는지를 적어볼까 한다. 


나는 왜 퇴사라는 선택을 했을까? 


돈이 중요하긴 하지만 인생의 전부는 아니다. 

오래전이기는 하지만 그때도 지금처럼 취업난이 심했었고 그래서 대학교 졸업반이 되었을 때는 어떤 회사가 되었던 취업만 되면 좋겠다는 생각을 했었다. 수도 없이 많은 이력서를 썼고 다양한 곳에서 면접을 보고 최종적으로 3곳에서 합격했다. 그리고 그중 한 곳을 선택해서 입사했다. 선택 기준은 오직 연봉이었고, 결과적으로 나는 그 회사를 3년 만에 퇴사했다. 


월급은 통장을 스칠 뿐이었고, 어느 순간 돈을 벌고 이것저것을 사도 행복하지 않았다. 그때 처음 깨달은 것이 돈이 인생의 전부는 아니구나!(하지만 중요하지 않다는 것은 아니다... 다만 돈으로도 해결할 수 없는 것이 있었을 뿐...) 


교통사고, 내 삶을 20대에 마감하고 싶지는 않았다. 

고등학교 졸업 후 다양한 아르바이트를 했지만 회사 생활은 또 달랐다. 매일 사람에 시달리고, 격무에 시달리고, 내 한계에 부딪히고, 그러던 어느 날 이틀 동안의 야근을 끝내고 퇴근하던 새벽에 졸음운전으로 접촉 사고가 났었다. 아찔했다. 다행히 상대방도 나도 다친 곳 없이 간단한 보험 처리만으로 마무리할 수 있었지만 동이 틀 때쯤 자취방으로 돌아오면서 이렇게 살다가는 언젠가 정말 죽을지도 모르겠다는 생각을 했다. 하지만 아직 죽고 싶지는 않았다.


히스테릭, 가까운 사람들을 더 이상 상처 입히고 싶지 않았다.

몸이 피곤하고 스트레스가 늘어나니 매일 같이 짜증이 늘어갔다. 누가 좋은 말을 해도 곧이 곧대로 들리는 것이 아니라 비꼬아서 들었다. 그래서 가장 가까운 사람들에게 상처를 많이 줬다. 그리고 그런 내 행동에 대해 후회하고 자책하고의 반복이었다. 


부정적, 더 이상 세상을 부정적으로 보고 싶지 않았다. 

자주 가지도 못하는 부모님 댁이건만 가서는 별 것 아닌 일에 화를 내거나 아니면 잠만 자다가 오는 일이 반복되었다. 그리고 말 끝마다 그건 안될 거야, 그게 될까? 무슨 말도 안 되는 소리야 등 희망 없는 말만 반복했다. 그때 엄마가 물었다. '네가 원하는 삶을 살고 있느냐고, 넌 매사가 긍정적인 아이는 아니지만 이렇게까지 부정적인 아이도 아니었는데 요즘은 매 순간이 부정적이라고 그렇게 살지 말라고...'(우리 엄마의 팩폭... 딸인데 원래 긍정적이었다고 좀 해 주지... 그 와중에 거짓말은 못하시는...) 


전화 포비아, 전화벨 소리만 들어도 가슴이 가슴이 철렁했다. 

전화로 하는 업무 지시, 거래처 및 다양한 곳에서 수시로 걸려오는 전화, 주말, 저녁, 새벽을 가리지 않고 오는 문자(다행히 카톡이 상용화되기 전이었다.)... 전화와 문자에 답하지 않고 다음날 출근했을 때의 후폭풍 등… 결국 어느 순간부터는 전화벨 소리만 들어도 가슴이 뛰고 문자 소리에 깜짝깜짝 놀라서 경기를 일으켰다. 전화 포비아가 생기는 순간이었다. (그때의 경험 때문인지 지금도 내 폰은 항상 진동 모드이다.)


미친 X, 정신병자가 되고 싶지 않았다. 

'계단을 내려갈 때는 내려가다가 다리 하나 부러지면 회사를 안 가도 될 텐데...' 

'감기에 걸렸을 때는 이 보다 더 심하게 아파서 일어날 수도 없으면 회사를 안 가도 될 텐데...' 

'눈이 올 때는 눈이 엄청 내려서 현관문이 안 열릴 만큼 쌓였으면 좋겠다'는 생각까지... 들었다. 점점 미쳐가는 기분이었다. 


그러다가 문뜩 든 생각이 왜 타의에 의해서 회사를 안 가도 될 방법을 생각하는 걸까? 가장 간단한 방법이 있는데... 그냥 내가 그만두면 되는 것이다. 내 자의에 의한 결정으로! 


그래서 퇴사를 결심했다. 미치지 않으려고...


그리고 결심이 흐트러지기 전에 그다음 날 바로 팀장님께 퇴사 의사를 밝혔다. (왠지 시간을 끌면 또 결정을 못하고 또 조금만 더 견뎌보자라고 하며 회사를 계속 다닐 것 같았다.) 


왜 스페인으로 왔을까?


스페인이 내 꿈의 나라였다 거나 언젠가 한 번 살아봐야겠다거나 하는 거창한 이유가 아니었다. 그냥 여느 날과 다름없이 야근과 회식을 마치고 집으로 들어갔고, 같이 살던 친구가 너무 우울해 보인다면서 선물해 준 책이 내 방 책상 위에 있었다. 


내 인생을 바꾸는 결정을 하게 한 책이었는데 사실 책 제목도 기억이 안 난다. 그냥 스페인에 대한 내용이었다. 스페인이 얼마나 열정적인 나라인지, 사람들이 왜 느긋한지, 왜 그들이 웃음이 많은지, 그들은 왜 행복한지… 그냥 그래서 모두가 행복한 저곳에서 나도 한 번 살아봐야겠다.라고 생각했다. 그리고 퇴사 결정을 할 때 그 책이 다시 떠올랐고, 그래 난 회사를 그만두고 스페인으로 가야지라는 결심을 하게 되었다. 


어떻게 보면 무모할 수도 있는 그 단순했던 결정이 스페인에 오게 만들었고, 지금까지 스페인에서 살게 만들었다.


그리고  농담인 듯 진담인 듯 덧붙이면 나는 2002년 한일 월드컵에 스페인 대표팀의 이케르 카시야스에 열광했고, 그리고 2006년 독일 월드컵과 2010년 남아공 월드컵 때는 크리스티아노 호날두에 열광했다. 스페인에 오면 그런 남자들이 엄청 많을 줄 알았다. 그런 멋진 남자와 열정적인 사랑을 해볼 수 있을 줄 알았는데.... 뭐... 결론은… 꿈은 꿈일 뿐이다. 한국에 온다고 강동원이나 정해인이 길거리를 걸어 다니지는 않지 않는가... 그리고 호날두는 스페인도 아닌 포르투갈 남자다...


잠시 옆 길로 샛지만 나는 미치지 않으려고 퇴사를 선택했고 스페인 사람들처럼 행복하고 열정적으로 살아보려고 스페인에서 살기를 선택했다.


그로 인해 금전적인 여유, 가족과 좀 더 자주 보는 기회, 친구들과 만나서 한국말로 수다 떠는 시원함, 가정을 이루고 알콩달콩 살아가는 삶을 포기했지만, 나는 20대에 삶을 마감하지도 않았고, 더 이상 만사가 부정적이지도 않으며, 정신병자도 아닐뿐더러, 전화 포비아도 지금은 많이 좋아졌다. 


그리고 가장 결정적으로 나는 지금이 그때보다 조금 더 행복하다. 거창하지는 않지만 그때보다 조금 더 나아졌다면 그걸로 된 거다. 글이 또 길어졌지만 퇴사를 한 번이라도 생각해 봤거나, 아니면 지금 퇴사를 고민하는 사람들에게 내 글이 조금이라도 도움이 되었으면 좋겠다.


by. 라비코


이전 20화 자산이 얼마예요? 연봉은요?
brunch book
$magazine.title

현재 글은 이 브런치북에
소속되어 있습니다.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