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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LaVidaCoreana Oct 06. 2018

외국에 살면 조금 더 애국자가 된다.

스페인에서 외국인으로 살아가기 #04 - 축구장에 나타난 전범기(욱일기)

요 며칠 일본 함대의 욱일기 계양 기사들을 보면서 독일의 나치 문양은 당연하게 전범기로 인식이 되어 있고, 나치 인사와 비슷한 포즈만 취해도 비난과 처벌을 받는데, 왜 일본은 아직까지도 전범기를 자신들의 당연한 국기라고 우기고 많은 사람들이 그에 대한 비난을 하지 않을까 하는 의문이 들었다. 

정확하게 무엇 때문이다라고 말할 수는 없지만 내 생각에는 아마도 많은 사람들이 욱일기 = 전범기라는 인식이 부족하기 때문이 아닐까 한다. 


스페인에서 살다 보면 정확하게 욱일기 모양은 아니지만 약간 변형된 비슷한 모양을 광고나 디자인에 사용하는 케이스를 간간히 보게 된다. 그들이 의도적으로 그 문양을 사용한 것은 아니라고 생각하지만 그래도 씁쓸한 마음이 드는 것은 어쩔 수가 없다. 


만약 욱일기가 전범기라는 인식이 나치 문양만큼 확고하게 퍼져있었다면 그런 일이 발생할 수 있었을까?


스페인에 살면서 간혹 축구장에 나타난 나치의 잔재들에 대한 이들의 강력한 대응 방식을 뉴스로 접하게 되었다. 그리고 그를 통해 유럽 사람들은 과거를 되풀이하지 않기 위해서 많은 노력을 하는 구나라는 생각을 하게 되었다. 


유럽뿐만 아니라 세계적으로 모든 스포츠 경기에는 정치적인 이슈가 개입되어서는 안 됨을 명시하고 있다. 그리고 나치 지배로 인해 전쟁도 겪고 엄청난 인명피해도 겪었던 유럽은 그 부분에 대해 매우 강력한 제재를 가한다. 경기장에서 나치 문양은 물론이고 손을 앞으로 뻗는 나치식 인사를 한다면 벌금은 물론 평생 경기장 입장이 금지되기도 한다.(간혹 훌리건이나 극우 세력들이 그런 행동을 할 때가 있고 그런 경우 해당 팀과 경찰은 끝까지 추적해서 처벌을 가한다. )


스페인에서 겪은 욱일기 사건


마드리드에 살기 시작한 지 몇 년 되지 않았을 때 챔피언스리그 경기를 보러 간 적이 있다. 그때는 손흥민이 레버쿠젠에서 뛰고 있었고 운이 좋게도 레버쿠젠과 아틀레티코 마드리드가 챔스에서 맞붙었다. 표가 저렴하게 나와서 부랴부랴 표를 사서 챔스를 직관하러 갔었다.


마드리드 팬으로 가득 찬 경기장에서 직접적으로 손흥민을 응원하지는 못했지만 마음속으로만 응원하면서 경기를 보고 있는데 전반전이 끝날 때쯤 문제가 발생했다. 내가 앉은 맞은편 자리에 큼지막한 욱일기가 펼쳐진 것이다. 잘못 본 것인가 싶어 사진까지 찍어 확인했지만 욱일기였다..


그것을 펼친 사람들은 모르고 그런 것일 수도 있다.(실제로 아틀레티코 경기에 가끔 비슷한 문양의 깃발이 날린다. 그 후 안 사실이지만 흰색과 붉은색이 번갈아 가면서 있는 팀 문양과 비슷해서 팬들이 모르고 쓴다고 누군가가 말해주었다.) 

하지만 그 날 내가 본 것은 명백히 스포츠 정신에 어긋난 것이었고, 또한 손흥민이라는 한국 선수가 뛰는 경기장에 욱일기가 펼쳐졌기에 다른 나라 말로 조목조목 설명하는 것과 혹시나 광팬들이 해코지를 할까 조금 두려웠지만 용기 내어 시큐리티를 찾아갔다.


나: (사진을 보여주며) 저기 맞은편에 전범기인 욱일기가 펼쳐져 있어. 저건 정치적인 것이고, 아시아 인들에게 독일의 나치 깃발이나 마찬가지야. 치워줘.

시큐리티: 정치적인 것은 경기장에서 사용할 수 없고 경기장의 깃발과 응원 도구들은 모두 허가받은 것들이야. 

나: 전범기가 어떻게 허가를 받을 수 있어? 확인해 줄래? 허가받은 것이 맞는지..?

(시큐리티끼리 무전기로 막 연락을 하더니 저와 같이 정확히 어디에 있는지 확인도 했다.)


시큐리티: 저건 허가받은 게 아니야. 치우도록 조치할게. 자리에 돌아가 있으면 곧 치워질 거야.

나: 고마워. 

(전문적인 정치적인 용어는 몰라서 비유와 손짓 발짓을 다해서 설명을 했는데 다행히 시큐리티들이 알아들었고, 처리해 주었다. 내가 그 정도의 스페인어라도 할 수 있음에 감사했고 내 말을 귀 기울여 들어준 그들에게도 고마웠다.)


조금은 뿌듯한 마음과 혹시나 훌리건들이라서 해코지를 당하면 어쩌나 하는 두려움을 안고 자리로 돌아와서 다시 경기에 집중했다. 조금 시간이 지난 뒤 시큐리티들이 욱일기가 있는 자리로 갔고 해당 깃발을 치우는 것이 보였다. 그때의 뿌듯함이란! 

작지만 보이는 욱일기 사진과 흐릿하지만 그게 사라진 후 사진 ^^

다행히 그 후 같은 자리에 다시 욱일기가 흔들리지는 않았다. 

아마도 아틀레티코 마드리드 팬들이 욱일기가 아시아인들에게 어떤 의미인지 모르고 그저 응원도구로 이용했을 수도 있고, 혹은 고의로 손흥민 선수를 겨냥해서 펼친 것일 수도 있다. 하지만 그 어떠한 경우에도 많은 사람들이 고통받았던 과거를 상징하는 어떤 것이 응원도구 혹은 상대의 사기를 꺾기게 하는 도구로 사용될 수는 없는 것이다. 


나는 불의를 보면 그냥 지나치지 못하는 정의로운 사람도 아니고...

애국심이 투철한 사람도 아니고...

정치적으로 어떤 신념을 가지고 활동하는 활동가도 아니다.

그냥 좋은 게 좋은 거다라고 생각하며 외국에 살고 있는 대한민국 국민 중 하나일 뿐이다.


하지만 외국에 살기 시작하면서 난민처럼 나라가 힘이 없어 불이익을 받는 사람들을 보게 되었고, 대부분의 국가를 무비자로 입국할 수 있는 것과 같이 대한민국 국민이기에 누릴 수 있는 많은 장점들을 경험하게 되었다. 


그로 인해 나는 내 나라의 소중함을 알게 되었고, 대한민국 국민임이 자랑스러워졌다. 그래서 부정적인 기사가 나와서 누군가가 한국에 대해 비방하면 내 나라에 대해 나쁘게 말하는 것은 정정하고 내가 하는 행동이 한국인의 이미지에 영향을 미칠 수 있다는 생각에 웬만하면 바르게 살려고 노력한다. 왠지 외국에 산다는 이유만으로 조금 더 애국심을 가진 애국자가 되는 기분이다.


여전히 자신들의 잘못을 생각하지 않고 욱일기를 전범기임을 인정하지 않는 일본에 대한 기사들을 보다가 몇 년 전 블로그에서 포스팅한 내용을 다시 줄여서 한 번 적어보았다. 언젠가는 욱일기가 전범기로 확실하게 인식이 되어서 더 이상 욱일기로 인한 기분 나쁜 일들이 일어나지 않았으면 좋겠다.


by. 라비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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