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LaVidaCoreana Dec 28. 2018

꼭 보호자가 있어야 하나요?

스페인에서 외국인으로 살아가기 #10 수면 내시경

꽤 오랜 세월 자취도 하고 혼자 살아서 가끔 외롭기는 하지만 혼자서 무엇을 하는 데 있어서 힘들다거나 어렵다거나 한 적은 거의 없었다. 그런 내가 지난해 병원에서 내시경 할 때 혼자라서 서럽다(?)는 생각을 한 적이 있었다. 

수면 내시경인데 혼자 왔어?


내시경을 한지 약 5년이 지났기에 한 번쯤 검사해야 할 때가 된 것도 있고, 가끔 소화가 잘 안되고, 두통을 동반한 구토 증세도 있어서 의사와 상담 끝에 대장 내시경을 하기로 했었다. 


의사가 시키는 데로 쫄쫄 굶고, 관장을 한 후 오후에 예약한 병원으로 가서 내시경을 하기 위해 내 차례를 기다리고 있었다. 내 이름을 호명하기에 진료실로 들어가니 친절한 간호사 언니가 혼자 왔냐고 물었다. 당연히 혼자 왔으니까 혼자 왔다고 했다. 그러니까 그분이 잠시 기다리라고 하더니 잠시 후 다시 와서 지금이라도 부를 가족, 친구 등의 보호자가 없냐고 물었다. 이건.. 무슨 소리...?


일단 나는 스페인에 혼자 살고 있어서 가족은 이곳에 없고, 내시경을 예약한 날짜는 평일이기에 다들 일을 해서 친구가 보호자로 올 수 있는 상황도 아니었다. 그래서 올 수 있는 사람이 없다고, 그게 문제가 되냐고 물었다. 간호사가 당황한 표정을 보이더니 알았다고 하면서 들어가더니 한참 뒤 다시 나를 불렀다.

(간호사가 몇 번에 걸쳐 물을 때 그 이상함을 눈치를 챘어야 했다...)


들어가서 수면 마취제를 주사하면서 10부터 거꾸로 세라고 하길래 한 7까지 세었나... 그러고는 기억이 없는데 일어나 보니 검사가 끝이 나 있었다. 


나의 서러움은 이때부터 시작되었다. 


이 곳은 검사 결과를 바로 의사랑 다시 보는 곳이 아니라서 내시경을 한 뒤 그 검사 결과 종이를 주면 다시 담당 의사와 예약을 잡은 뒤 가서 결과를 보는 시스템이다. 그런데 나보다 먼저 온 사람들이 모두 결과지를 받아서 가고, 한 시간쯤 지나자 심지어는 나보다 늦게 온 사람도 결과지를 받고 돌아갔는데 나에게만 결과지를 주지 않았다. 


성격이 느긋하지 못하기에 진료실 노크를 하고 내가 먼저 왔는데 왜 난 결과지를 안주냐고 물었다. 그러니까 담당 간호사가 좀 더 걸릴 것 같다면서 오렌지 주스라도 한잔 하고 오라고...

그렇게 두 시간 여가 지나가니 배고프고 잠도 오면서 짜증이 치밀어 올랐다. 


마침 다른 대기자들을 호명하러 나온 간호사가 있길래, 나 벌써 두 시간 넘게 기다리고 있는데 결과지 언제 줄 거니 하면서 짜증 섞인 말투로 물으니까 너 벌써 오렌지 주스 다 마시고 왔냐고 가서 천천히 커피라도 한잔 더 하고 오라고 하면서 다시 진료실로 들어가 버렸다.


이 사람들이! 사람을 놀리는 것도 아니고.. 나한테만 왜 이러는 건지... 

이게 또 다른 의미의 인종차별인가 싶기도 하고...

가족력이 생각나면서 혹시 뭔가 안 좋아서 결과가 늦게 나오나 싶기도 하고...

별의별 생각이 다 들었다. 


불안하기는 하지만 물어도 돌아오는 답은 기다리라는 것뿐인데 어쩌겠는가... 기다려야지... 그렇게 4시간쯤 흐르고 도저히 더는 참을 수 없어서 다시 진료실을 노크했다. 




나: 나 4시간째 기다리고 있어! 결과지 안 주니? 무슨 큰 병이라도 걸렸어 나?

담당 간호사: 아니야... 잠시만 기다려봐.

나: 더 기다려야 해? 다른 사람들은 바로바로 갔는데?

담당 간호사: 여기 결과지 있어. 전체적으로 별 문제는 없어 그렇지만 주치의와 함께 봐

나: 별 문제가 없는데 왜 나만 4시간이 뒤에 결과지를 주는 거야?

담당 간호사: 그건 내시경 할 때 혼자 오는 사람이 없는데 넌 혼자 와서 그래.

나: 무슨 소리야? 혼자 오는 게 문제가 돼?

담당 간호사: 수면 마취제의 부작용으로 길가다가 쓰러질 수도 있고 구토 및 어지럼 등이 있을 수도 있어서 수면 내시경은 다들 보호자와 함께 와. 그런데 넌 혼자 왔으니까 마취의 약효가 사라질 때까지 기다리게 한 거지. 

나:....




그렇다. 수면 마취제가 다양한 부작용이 있기에 혹시 모를 불상사를 방지하기 위해서 4시간 동안 그들은 나를 지켜보면서 보내주지 않았던 것이다. 나중에 스페인 친구에게 물으니 자기 주변에 수면 내시경 혼자 가는애는 나밖에 못 봤다고 하면서 다음엔 꼭 자기에게 말하라고 했다. 이건 뭐지..? 난 한국에서도 혼자 갔다가 혼자 잘 나왔는데...


한편으로는 내 안전을 생각해 준 병원이고맙기도 하고, 다른 한편으로는 4시간 동안 기다리면서 느꼈던 불안감과 짜증이 떠오르면서 그러면 처음부터 말해주던가 하는 원망이 들기도 했다.


그리고 결과지를 들고 집으로 돌아오면서 이 외국 땅에 혼자라는 것이 절실히 느껴져서 잠시 서러웠다. 하지만 언제나 그렇듯이 잠시 그렇게 울컥하고는 다시 원래대로 돌아왔다. 어차피 인생은 혼자고, 서럽다고 모든 것을 접고 한국으로 돌아갈 것도 아니기에... 하지만! 다음 내시경 때는 기필코 친구에게 부탁해서 같이 갈 것이다!



By. 라비코

이전 23화 미혼, 1인 가구, 독거인이라서 드는 걱정
brunch book
$magazine.title

현재 글은 이 브런치북에
소속되어 있습니다.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