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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LaVidaCoreana Sep 25. 2018

돈 때문에 아파서 죽는 사람이 없는 나라를 위하여...

스페인에서 외국인으로 살아가기 #03 병원

얼마 전 정기 검진을 위해 주치의를 찾았다. 

주치의는 콜레스테롤 수치 하락을 위해 팜유가 들어간 디저트를 먹지 말 것과 파상풍 예방 접종을 받을 것 그리고 산부인과 정기 검진을 받을 것을 권유했다. 아... 검진을 위해 또 예약을 해야 하는구나... 

그래서 오늘은 오랜만에 병원을 간 기념?으로 스페인의 병원 진료를 간단히 적어볼까 한다.


예약, 예약, 그리고 또 예약

응급실을 제외하고 의료보험이 적용되는 스페인의 모든 공립 병원은 예약을 해야만 이용할 수 있다. 일반적인 주치의나 담당 간호사와의 진료는 짧게는 하루 이틀이면 예약이 가능하다. 하지만 정기 검진이나 피부과, 산부인과, 정형외과 등 다양한 의사와의 예약은 가끔은 기약 없이 오래 걸리기도 한다


일례로 지난해 면역저하 알레르기 반응으로 피부과 예약을 잡을 때는 3개월 이후로 예약이 잡혔다. 어차피 2주 후 알레르기는 사라졌고 예약은 취소했다. 자연 치유라고 해야 하나... 처음에 예약을 잡을 때 3개월 후라고 해서 몇 번이나 다시 확인했다. 진짜냐고...  진짜였다. 예약이 그렇게 밀려있단다. 그런데 대부분의 예약은 항상 밀려있다...


그리고 올해 산부인과 정기 검진 역시도 8월에 예약했는데 10월로 잡혔다. 다행히 중간에 취소한 사람이 있어서 9월 중순쯤 받을 수 있게 되었다. 오늘 가서 오늘 바로 진료받은 것도 아닌데 왠지 복권에 당첨된 것만큼 기분이 좋았다.


스페인 친구들이 우스갯소리로 '뼈가 부러지면 정형외과 치료 기다리다가 붙는다'고 하길래 농담인 줄 알았다. 하지만 예약 잡히는 속도로 봐서는 그럴 수도 있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아직 중병에는 걸린 적이 없어서 큰 병일 때도 이럴까? 하는 의문이 들지만 왠지 조금 더 빠를 뿐 별 차이가 없을 것 같다는 생각이 든다.


스페인 병원 진료는 무료다. 

복지가 잘 되어 있는 국가이다 보니 스페인에서 병원 진료는 무료다. 물론 세금을 그만큼 많이 내기 때문에 무료가 되어야 하는 게 당연한 것이기도 하다. 하지만 세금을 내는 사람이던 아니던 일단은 스페인 국민이면 무료다. 그래서 이 나라에서는 돈이 없어 진료를 못 받는 상황이 생기지는 않는다.


학생은 공보험이 안되지만 난민과 불법 체류자는 적용받을 수 있다?!

위에서는 스페인 국민이면 무료다고 했지만 스페인 국민뿐만 아니라 나같이 스페인에서 근무하는 외국인 노동자, 불법 체류자 그리고 난민 등 스페인에 체류하고 있다면 의료보험 카드를 만들 수 있고 적용받을 수 있다. 나도 얼마 전까지는 몰랐는데 일부 자치주를 제외하고는 불법 체류자도, 난민도 여권과 엠빠드로나미엔또(주거 등록)만 있으면 사니타리아 카드(스페인 의료보험 카드)를 만들 수 있고 치료를 받을 수 있다고 한다. 


아이러니한 것은 학생은 안된다. 적용 범위가 자치주마다 다르기 때문에 되는 주가 있을 수도 있다 하지만 일반적으로 안된다. 학생은 학생 비자를 만들 때 필수 사항이 보험이기 때문에 안된다. 

왜? 그때 가입한 사보험으로 아플 때 치료받을 수 있기 때문에 굳이 공보험을 적용해 줄 필요가 없는 것이다.


'뭐지? 합법적으로 온 학생은 공보험 적용을 못 받고 불법체류자는 가능하다고?'


라는 생각이 먼저 들었다. 무슨 법이 그래라고 툴툴 거리는 나에게 친구가 말했다. 


법 이전에 인권을 생각하는 거라고... 이 땅(스페인)에 발을 들인 이상 빈부 격차, 체류 상황, 지위 여하 등을 떠나서 모두가 동등하게 진료의 기회를 제공받아야 하고, 돈이 없어 목숨을 잃는 상황은 없어야 한다는 것이 이 나라가 추구하는 이상이라고 한다. 


'아... 참... 멋진 스페인 사람들...' 

스페인 국민 혹은 합법적으로 거주하고 있는 많은 사람들이 동의하지 않을지도 모르지만 어쨌든 사람 목숨은 중요하고, 돈 때문에 사람이 죽어서는 안 되니까... 악용되지만 않는다면 그들의 이상은 맞는 것이고, 좋은 것이다.


그리고 궁극적으로 보면 인간이면 모두가 행복하고 보호받을 수 있는 복지국가로 가는 길일 수도 있다는 생각도 든다. 물론 월급의 많은 부분을 세금으로 내고 있는 나는 아직 이 제도를 100프로 이해하지는 못하지만 어차피 내야 하는 세금이고, 그 세금의 일부가 엉뚱한 곳에 쓰이는 것이 아니라 '돈 때문에 아파서 죽는 사람이 없는 나라를 위하여 쓰인다'라고 하니 처음 이 이야기를 들었을 때만큼 어이없지는 않다. 그리고 조금 더 좋은 사람이 된 것 같아서 기분이 조금 좋기도 하다.


by. 라비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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