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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LaVidaCoreana Oct 22. 2018

나는 한국 갈 때 다이어트를 한다.

스페인에서 외국인으로 살아가기 #06 타인의 시선

요 몇 달 움직임이 둔해지고 몸이 무거운 느낌이 들었다. '다시 다이어트할 때가 된 건가?' 하는 생각이 들었다.


학생 때부터 지금까지 나는 날씬해 본 적이 없다. 한국에서도 성공하지는 못했지만 드문드문 다이어트를 했고, 이곳 스페인에서도 마찬가지로 다이어트를 한다. 다만 다른 것은 다이어트의 빈도와 상황이다.


한국 살 때는 명절에 친척들을 만날 때 그리고 회사에서 등등 다양한 곳에서 사람을 만날 때 잘 지냈니 인사 다음으로 흔히 나오는 말이 "살 좀 찐 거 같은데?" 혹은 "다이어트하니? 날씬해졌다?"라는 이야기였다.


그때는 남의눈을 많이 의식할 때였고, 남이 하는 말에 꽤 많은 신경을 쓸 때였다. 그래서 그런 말을 자주 들으면 작심 3일인 다이어트를 시작하고 실패하고를 반복했었다. 하지만 스페인에 와서는 이곳 사람들의 시선과 말을 의식해서 다이어트를 한 적이 없다. 왜일까?


남을 의식하지 않는다.


단적인 예로 스페인 해변을 가면 나이 드신 분들도, 어린아이도, 뚱뚱하거나, 날씬하거나 상관없이 모두가 자신이 좋아하는 원피스 수영복 혹은 비키니를 입고 여름 해변을 즐긴다. 그리고 간혹은 선탠 자국을 방지하려고 토플리스를 해서 태닝을 하기도 한다. 그냥 자신이 원하고 좋아하기에 비키니를 입는 것이지 남의눈을 의식하거나 입어야 하나 말아야 하나 고민하지 않는다.


나는 고3 때 한 번 그리고 이곳 스페인에서 내 인생 최고 몸무게를 찍었다. 그리고 이곳에서 그 몸무게에도 불구하고 여름이면 비키니를 입고 태닝을 하고, 옷도 내가 입고 싶은데로 입었다. 아마 한국이었다면 '안구테러'라는 농담인 듯 진담인 소리를 듣지 않았을까... 그리고 한국에서처럼 남을, 남의 말을 신경 쓰고 살았다면 절대 하지 못했을 일이다. 실제로도 나는 한국에서는 비키니는 고사하고 원피스 수영복도 입어본 적이 없다.


하지만 스페인에 오고 몇 년간 남을 의식하지 않는 분위기에서 살다 보니 자연스럽게 자존감도 높아지고, 나도 남을 의식하지 않고, 내가 원하는 대로, 하고 싶은 대로 하고 살게 되었다. 남에게 피해를 주지 않는다면 그냥 내가 하고 싶은 것들을 마음껏 즐기는 것이다.


한국 가기 전 필수 절차 다이어트


스페인에 꽤 오래 살면서 내가 다이어트를 하는 경우는 딱 두 경우다. 내 몸이 내가 느끼기에도 불편할 정도로 살이 쪄서 일상생활에 지장을 줄 때, 그리고 한국을 가기 전에만 다이어트를 한다.


나도 모르는 사이에 살이 조금씩 조금씩 찌다보면 어느 순간 똑같은 자리에서 움직여도 모서리에 부딪혀서 멍이 들거나, 매일 오르는 계단인데 중간 정도 올라오면 숨이 심각하게 찰 때가 있다. 그럴 때 식이조절도 하고 운동도 해서 다시 불편하지 않은 몸무게로 돌아올 수 있는 다이어트를 한다.


나는 한국을 1년에 한 번, 혹은 1년 반에 한 번 정도 간다. 보기에는 규칙적으로 한국에 가는 것 같지만 딱 저 텀을 두고 한국을 가야 할 일들이 꼭 생긴다. 예를 들어 동생의 결혼식이라던가, 조카가 태어났다거나 하는 가족 행사가 일 년에 한 번꼴로 있다. 그리고 그때는 가족 행사이기 때문에 오랫동안 못 보던 친척들도 볼 것이고, 오래 안 보던 사람들을 만날 것이다. 그렇기 때문에 스페인에서는 내가 불편할 때 다이어트를 하지만, 한국 갈 때는 남을 의식해서 다이어트를 한다.

 

가장 처절하게 다이어트했을 때가 동생 결혼식 때문에 한국에 갈 때였다. 요즘은 흔하다고는 하지만 나이 많은 누나보다 동생이 먼저 장가를 가는 것이기에 동생 결혼식임에도 불구하고 내게 향한 시선들이 많을 것이 분명했다. 한국을 떠나 살면서 명절을 피해 듣지 않았던 소리들을 이자 붙여서 한자리에서 들을 것이었다. 그래서 한국 가기 한 달 전부터 처절한 다이어트를 했다. 결과는 성공적, 다행히 좋은 덕담들만 듣고 무사히 동생 결혼식을 넘길 수 있었다.


하지만 그때 친한 회사 동료가 내게 했던 말이 나를 다시 한번 돌아보는 계기를 만들어 주었다.



친구: 점심 나가서 같이 먹자

나: 나... 다이어트 중이라서 안돼. 다음에 다이어트 끝나면 같이 하자.

친구: 몸이 안 좋아? 왜?

나: 동생 결혼이 있고, 난 한국 기준에는 살이 찐 거기 때문에 잔소리 안 들으려면 빼야 해 어쩌고 저쩌고...

친구: 네가 살이 찐 거라고? 넌 정상이야. 신경 쓰지 마.

(고맙다 친구야... 흑)

나: 그냥 기준이 달라... 여기선 아무렇지 않지만 한국서 나는 뚱뚱한 편이야...



스페인에 살면서 자존감도 높아지고, 남의 시선을 신경 쓰지 않으며, 내 몸을 사랑한다고 생각했었다. 물론 그렇게 바뀌어 가고 있는 것은 맞다. 하지만 진정 그렇게 되려면 주변 환경이 어떻던지 상관없이 마이웨이로 나아갈 수 있어야 하는데 나는 아직 그 경지에는 오르지 못했다.


나는 아직도 타인의 시선에서 완벽하게 벗어난 사람은 아니다. 남에게 신경을 쓰지 않는 이곳에서는 내가 뚱뚱하다는 생각을 하지 않으며, 비교적 자신 있게 살아가지만 그렇지 못한 곳에 있으면 다시 옛날의 나로 돌아가 버린다.

언젠가는 조금 더 내공을 기르고 남의 시선으로부터 자유로와 져서 한국 가기 전에도 다이어트를 하지 않는 자존감 강한 내가 될 날이 오기를 바라 본다.


by. 라비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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