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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LaVidaCoreana Aug 31. 2020

그냥 이름으로 부르면 안 될까요?

스페인에서 외국인으로 살아가기 #17 이름

스페인에 10년 가까이 살다 보니 내겐 이름과 관련한 철칙 아닌 철칙이 생겼다. 미래에 혹시 결혼을 하게 된다면, 그리고 자식을 갖게 된다면 아이의 이름을 받침이 없는 부르기 쉬운 이름으로 혹은 한국적이면서도 글로벌한 이름으로 짓겠다는 것이다. 이곳에서는 회사에서도 직급이 아닌 이름으로 부르고 친구들도 언니, 누나 뭐 그런 호칭이 아닌 이름으로 부르기에 이름이 아주 중요하다. 


글로벌한 이름이 필요하구나... 


내 이름은 우리 할머니가 유명한 철학관에서 좋은 한자를 넣어서 지은 전형적인 한국 이름이다. 그리고 한국 사람은 별 무리 없이 발음 가능한 이름이다. 하지만 영국에 잠시 있었을 때도 그렇고 이 곳 스페인에서도 내 이름을 제대로 발음하는 경우는 잘 없다. 가령 스페인에서는 이름에 J가 들어가면 발음이 이상해진다. 


Jun의 경우 한국어로는 "준"이 될 텐데 여기서는 J가 Y 발음이 나기에 Jun은 "운" 혹은 "윤"이 된다... 이름이 완전히  바뀌는 것이다.


그리고 "어"라는 모음을 발음하기 힘들어한다. 특히나 모음 "어"에 받침이 들어갔을 때는 더 어렵다. 예를 들어

Jeong 또는 Jung로 쓰이는 "정"은 일단 J가 들어가고 "어"가 들어가기에 아주 힘든 발음이다. 그래서 "융"혹은 "영"으로 많이 발음을 하기도 하고 그나마 제이를 발음해 주려고 하는 사람들은 "쳥","청"으로 발음을 한다. 그러므로 이름에 받침이 있다거나 스페인에서는 다르게 발음되는 철자가 들어가면 이름을 알려줄 때 발음도 필수로 알려주거나 아니면 현지 이름이 필요하다.


안타깝게도 처음 왔을 때 나는 별 생각이 없었고 그래서 내 이름을 발음하기 힘들어하는 친구들에게 그냥 내 성을 부르라고 했었다. 내 성은 한국에서도 아주 흔한 "Kim"이고 발음하기가 엄청 편하니까... 그게 고착되어서 친구들 사이에서도, 대학원에서도, 지난 직장에서도, 그리고 심지어는 스타벅스 같은 카페에서 이름을 알려줄 때도 내 이름은 "킴"이었다. 


다행히도 옮긴 직장에서는 동료들이 약간 힘들어 하기는 하지만 내 이름을 그대로 불러주려고 노력한다. 그래서 내 본 이름으로 불리고 있지만 나는 여전히 말한다. 부르기 힘들지 않다면 내 이름을 부르고 아니면 그냥 내 성인 "킴"이라고 해도 된다고. 이름을 많이 부르는 문화가 자리 잡은 스페인인데 혹시라도 내 이름을 부르는데 부담스러워할까 봐. 


이건 비단 한국인들 이름에 국한하는 것은 아니라서서 다른 나라 친구들도 어려움을 겪는 경우가 있다. 실제로 러시아 친구 중 하나도 자기는 자기 이름을 스페인에서 제대로 듣는 것을 포기했다고 하면서 처음부터 자기의 애칭을 알려주었다. 


이런 이유로 그리고 국제화 사회고 앞으로는 어떻게 될지 모르니까 내 자식의 이름은 국가 상관없이 정말 편하게 부를 수 있는 이름으로 하던가 아니면 여기 애들처럼 이름 두 개를 지어 줄 것이다. 그 아이는 이름이 아닌 성 그리고 이상한 발음의 이름으로 불리는 해프닝을 맞이하지 않도록...


내 이름이 없어진 것 같아


내 케이스가 이 곳에서 이름이 발음하기 어려워서 내 이름으로 못 불린 것이라면, 한국에 사는 내 친구의 경우에는 결혼 후 어느 순간부터 이름을 잃어버린(?) 케이스라고 할 수 있다. 예전에 결혼한 친구가 그런 말을 한 적이 있다. 누구 엄마이고 누구 와이프고, 어느 팀의 팀장으로 불리기 시작하면서 자기 이름이 사라진 것 같다고. 


요즘은 그래도 많이 나아졌지만 아직도 결혼을 하면 시댁에서든 친정에서든 누구 엄마로 불리는 경우가 많다고 한다. 실제로 우리 엄마만 해도 내 이름이 엄마 이름인 것처럼 불리기도 했고 누구 엄마로 더 많이 불렸으니까. 또한 한국에서 워킹맘으로 살아간다면 직장에서도 직함으로 많이 부르니까 이름을 들을 일이 많이 없는 것도 사실이다. 스페인에서는 결혼을 했든 아니든 어딜 가나 이름으로 소개하고 이름으로 부르지만 한국은 그렇지 아니니까 친구의 저런 고민이 이해가 됐다. 


엄마의 이름도 그리고 내 친구의 이름도 태어날 때 부모가 고심하고 고심해서 지어준 소중한 이름일 텐데 어쩔 수 없는 경우가 아니라면 이름으로 불러 주는 것이 좋지 않을까? 하는 생각을 했다. 그래서 나는 엄마와 통화할 때 가끔 이름에 여사님을 붙여서 부르거나 시집간 친구들과 대화를 할 때 예전에 부르던 친근한 별명이 아니라 그들의 본명을 불러주려고 노력한다. 엄마도 그리고 친구들도 자기 이름이 없어진 것 같은 느낌을 받지 않았으면 해서......


왜 그렇게 직함에 목을 매는 걸까?


아는 지인 중에 스페인에서 가이드를 하는 지인이 있다. 그 지인과 이야기하다가 이름과 직함에 관련된 이야기가 나왔다. 스페인에서는 관공서나 공식적인 자리가 아니면 존칭을 붙일 일이 잘 없다. 나이가 많아도, 직장 상사라도, 안면을 튼 이상 이름으로 부른다. 하지만 문제는 스페인에 있지만 한국 사람을 상대할 때이다.  


그 지인이 한국의 공무원 팀 가이드를 맡았을 적에 생긴 일이라고 한다. 첫인사를 나눈 뒤 보통 팀들을 가이드 할 때처럼 누구누구 님, 혹은 성과 선생님을 붙여서 홍길동 님, 홍 선생님 이렇게 불렀다고 한다. 그런데 그 날 저녁 그 팀에서 그 지인을 따로 불렀다고 한다. 그러면서 누구는 주무관이고 누구는 과장이고 누구는 어쩌고 하면서 "홍 주무관님", "홍 과장님" 이렇게 불러달라고 요청했단다. 


한국어에는 존칭이 발달되어 있고, 예의를 중요시하기 때문에 그럴 수 있다고 생각한다. 하지만 그 단체에서 그들은 가이드와 손님으로 만난 것이고 직속상관과 같은 팀 부하 직원이 아닌데 꼭 그렇게 직함으로 불러달라고 요청해야 했을까? 직함이라는 것이 별도로 불러서 요청할 만큼 그렇게 중요한 것인가... 하는 생각을 잠시 하게 되었다. 


내 지인뿐만 아니라 내게도 비슷한 일이 있었다. 이 곳에서 오래 직장 생활을 하다 보니 직함이라는 것에 너무 무뎌졌다. 예전에는 스타트 업에서 일을 해서 한국 직원들과 일을 해도 직함이라는 것이 별도로 있지 않았고, 그 후 일한 다른 회사들도 외국계 회사여서 한국 팀과 일을 할 때 딱히 직함에 대해 신경 쓰지 않았다. 실제로 명함을 주고받거나 한 것도 아니고 전체 조직도에는 매니저, 디렉터, 뭐 이런 식으로 나오지 부장, 이사, 상무, 전무 이런 것들이 하나도 안 나오니까...


그래도 내 나름대로는 한국 팀에게 영어가 아닌 한국어로 메일을 쓸 때는 성과 이름 뒤에 꼭 "님"을 붙여서 그리고 예의와 격식을 차린 내용으로 메일을 썼었다. 그런데 한 번은 돌고 돌아 내 귀에 다시 들리는 말로 내가 홍길동 부장님, 홍길동 이사님이 아니라 홍길동 님이라고 적어서 뒷 말이 돌았다고 한다... 


글로벌 회사라며..."님"자 붙여서 존대를 해 줬는데... 그리고 내 직속 상사인 팀장과도 서로 이름 부르는데... 직함을 안 붙인 게 뒷 말이 돌만큼 큰 잘못인가... 난 그 사람의 직속 부하도 아닌데... 


하지만 회사 생활하면서 뒷말 돌아서 좋을 것은 없으니까, 그리고 앞으로도 계속 일을 함께 해야 하니까, 그 이후부터는 한국 팀에 메일을 보낼 때는 아는 한국 직원을 통해서 직함을 물어보고 메일을 썼다. 그리고 이런저런 루트를 통해서 한국어로 된 조직도도 받아서 참고하면서 일을 했었다.


이와 너무 대조되게 이 곳에서는 정말 너무 프리하게 이름을 부른다. 한 번은 유럽 세일즈 팀 부사장의 요청으로 온라인 마케팅과 관련된 트레이닝을 한 적이 있었다. 부사장이고 나이는 나보다 한참 많았지만 트레이닝 내내 서로를 부르는 명칭은 그냥 "마리아" 그리고 "킴" 이런 식으로 이름이었다. 


나도 한국에 있을 때 경험했었고, 한국 사회에서는 직함이 그 사람을 대신하기도 하기에 직함으로 부르는 것 역시도 한국의 문화라고 생각하면 이해하고 존중해야 하는 것이 마땅하다. 하지만 그것도 어느 정도의 선이라는 것이 있어야 하는 것이 아닐까? 같은 나라, 같은 팀 내에 있다면 직함으로 불러야 할 테지만 내 지인처럼 다른 이해관계 집단으로 만났는데도, 그리고 나처럼 아예 다른 지사에 속해 있고, 직함도 모르는데도 꼭 직함으로 불러야 하는 걸까 라는 생각을 해본다.


그냥 스페인에서 이름으로 부르는 문화를 그리고 발음이 어려운 한국 이름과 관련한 에피소드를 적으려고 했는데 적다 보니 이름, 역할 그리고 직함까지로 주제가 꽤 포괄적이 되어버렸지만 그냥 이름에 대한 에피소드들이라고 생각하고 글을 가볍게 읽어 주면 좋겠다. 



By. 라비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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