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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LaVidaCoreana Oct 14. 2018

때론 인종차별도 견뎌야 한다.

스페인에서 외국인으로 살아가기 #05 인종차별

많은 글에서 스페인에서 사는 장점에 대해서 이야기했었다. 이 곳에서 살면 다양한 좋은 점들이 있는 것은 사실이다. 하지만 그만큼 견뎌야 하는 단점들도 있다. 


그중 한 가지가 나랑 다른 인종들과 내 나라가 아닌 곳에서 살아가기 때문에 필연적으로 따라오는 인종차별 혹은 길거리 괴롭힘(불링?)이다. 스페인은 다양한 인종과 이민자들이 있기 때문에 인종차별이 심한 국가는 아니지만 아주 가끔은 인종차별 비슷한 것을 느낄 때가 있다.


스페인에도 무서운 중2가 있다. 


한국의 중 2병? 스페인에서는 무서운 혹은 철없는 청소년을 일컬어 차발이라고 한다. 그리고 길거리에서 그런 애들을 만나면 피해 가는 것이 상책이다. 괜히 마주해서 좋을 것 없으니까...


스페인에 온 지 한 2년 남짓 지났을 때 친구 집에서 크리스마스 파티를 하고 그 다음날 오전에 기차를 타고 다시 집으로 돌아오는 길이었다. 기차역에서 내려서 집까지 걸어가는데 길 건너편에 한 무리의 불량 청소년들이 보였다. 


그냥 걸어가고 있었는데 별안간 나에게 욕과 함께 레몬이 날아왔다. 살짝 스치기만 했기 때문에 평소였다면 그냥 넘어갔을 것이다. 역 주변은 원래 치안이 좋지 않고, 무엇보다 상대는 한 무리의 청소년이고, 나는 혼자 집에 가는 동양 여자애였으니까. 


하지만 그날은 전날 먹은 술이 아직 덜 깬 여파도 있고, 그냥 말로한 괴롭힘만이 아니었기에 나도 화가 좀 났다. 그래서 나에게 날아온 레몬과 날아오다가 실패한 레몬을 집어 들어서 그들에게 던지면서 내가 알고 있던 다양한(?) 스페인 욕들을 했다. 그 무리도 그냥 도망가거나 소리를 칠 줄 알았지 반격할 거라고 생각은 못했던지 잠시 당황한 듯 보더니 다시 제 갈길을 갔다. 


집에 와서 곰곰이 생각해 보니 아마 그들이 재 반격을 했다면 내가 큰 일을 당했을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들었다.(어디서 그런 용기가 났었는지...) 스페인이 인종차별에 대한 강력 범죄가 자주 일어나는 곳은 아니지만 차발(?)들은 겁이 없으니까... 하지만 그때는 정말 참을 수가 없었다. 다행히 그 후로는 이런 위해를 가하는 청소년들은 다시없었지만 그래도 중고생이 무더기로 모여있으면 멀찍이 떨어져서 간다. 똥이 무서워서 피하나... 더러워서 피하지...


설마 아시안이라고 음식 늦게 준 거니?


가끔 뉴스를 보면 미국의 유명 체인점에서 종종 일어나는 아시아인에 대한 인종차별을 접할 때가 있다. 이 곳에서는 그렇게 심하게 인종차별을 하지는 않는다고 생각했는데 얼마 전 직장 동료들과 간 유명한 햄버거 집에서 "인종차별"같은 어떤 것을 경험하게 되었다.


공교롭게도 그날 점심을 먹으러 간 모두가 아시안이었다. 미리 예약까지 하고 갔는데 일찍 갔음에도 불구하고 우리에게 주문받으러 오지를 않았다. 카운터에서 수다 떨고 있는 직원도 있고, 그리 손님이 많아 보이지도 않는데 눈짓으로 부르는 우리를 못 본 척했다. 


결국 최후의 방법인 손을 들어 웨이터를 부른 끝에 와서 주문을 받아갔다.(스페인에서는 웨이터를 큰소리로 부르면 예의가 아니라고 생각한다. 올 때까지 기다리던가, 눈짓을 하던가, 손을 살짝 들던가 하는 것이 이들의 주문 방법이다.)


한참을 기다려도 음식은 나오지 않았다. 우리보다 늦게 온 옆 테이블도 음식이 나오고, 그 보다 더 늦게 나온 뒷 테이블도 음식이 나오는데 우리 음식은 깜깜무소식이었다. 게다가 물어보고 싶은데 몇 번을 우리랑 눈을 마주쳤음에도 불구하고 우리 테이블로는 웨이터가 오지 않았다. 


참다못한 일행이 웨이터를 불렀는데 황당하게도 쓱 보고는 그냥 휙 지나갔다. 결국 다른 지나가던 다른 웨이터를 불러서 음식을 받을 수 있었지만 이미 음식을 주문한 지 한 시간여가 지난 후였다. 


아마 주문이 누락되었던가 그랬던 것 같다. 주문이 누락된 것은 너그러이 생각해서 그럴 수 있다고 생각하지만 우리가 몇 번을 부르는데 무시하고 지나간 것은 이해가 불가능한 처사였다. 비약일 수도 있지만 아마도 우리가 아시아인이라서 그랬던 건 아닐까 하는 추측을 했고, 우리 모두 아시아인인 우리가 말하면 무시하던 직원이 스페인 친구가 말하면 응대를 했던 경험이 한두 번쯤은 있은지라 이것은 인종차별이라는 결론을 내렸다. 


결국 화가 난 우리는 고객 불만 작성서(hoja de reclamación)를 달라고 했다. 이 곳에서는 오하 데 레클라마시온은 작성과 동시에 고객과 상점의 서명을 받고 바로 소비자 불만 처리 센터(?)에 제출하게 되어 있다. 그리고 이 것이 제출되면 조사가 이루어지기에 대부분의 식당들이 좋아하지 않지만 의무적으로 비치하는 것 중 하나이다. 


실질적으로 그 서류를 보내지는 않았지만 그 서류와 함께 달려온 식당 매니저에게 우리를 무시하며 주문을 받지 않고, 주문에 차질이 있었음에도 불구하고 사과 한 마디 없었던 그 직원의 이름을 묻고 이건 인종차별인 것 같다고 항의한 후 사과를 듣고 그 식당을 나왔다. 엎드려 절 받기로 사과를 받기는 했지만 우린 이제 그곳에 점심 먹으러 더 이상 가지 않는다. 


나는 치니따(Chinita)가 아니라 꼬레아나(Coreana)!


길을 가다 보면 많이 들려오는 말 중 하나가 치니따라는 말이다. 스페인어로 치니따는 중국인을 부르는 말이다. 보통 치나라고 하지만 여자에게는 치나보다 치니따라고 많이 한다. "치니따"라는 이 말은 캣 콜링이라고도 볼 수 있고, 인종차별이라고도 볼 수 있다. 동양인을 잘 구별 못하는 이들에게 동양인은 90% 중국인이다. 옛날에 우리가 머리 노란 외국인은 다 미국인으로 본 것과 비슷한 개념이다. 


사람들이 많은 광장, 밤 길거리, 역 주변 등을 가다 보면 휘파람 소리 혹은 치니따 치니따 하는 말이 귀에 많이 들려온다. 무슨 의도를 가지고 그러는 것은 아니지만 기분이 좋지 않은 것은 사실이다. 그냥 "중국인 여자"라고 부른다고 생각하면 그렇게 기분 나쁠 것은 없지만 예전에 어디선가 듣기론 중국인들이 이주했던 옛날에 매춘업을 많이 했어서 중국인 여자와 매춘을 연관해서 치니따로 부르는 경우가 많다고 했다. 그래서 그 소리를 들으면 더 기분이 좋지 않다. 


치니따가 아니라 한국인을 의미하는 꼬레아나라는 소리를 들어도 기분은 별로겠지만 그래도 가끔은 나는 한국인인데 왜 내게 중국인이라고 하는 것인지 하는 울컥한 마음이 들 때도 있다. 그럴 때는 에이 무식한 X라고 생각하면 한 번 째려보고는 내 갈 길을 간다. 그리고 좀 더 초탈한 지금은 치니따라고 해도 '너는 말해라, 나는 간다' 하고 쿨하게 무시하고 간다. 


이제는 스페인에 꽤 오래 살았기 때문에 어느 정도는 익숙하고, 잘 대처할 수도 있지만 그래도 가끔은 이러한 일들을 겪으면 화가 나고 서럽고 그렇다. 내가 좋아서 선택한 것이고, 다양한 장점들이 있기는 하지만 남의 나라에서 외국인으로 산다는 것은 결코 녹록하고 즐겁기만 한 것은 아니다. 인생이 항상 좋을 수만은 없고 장점이 있으면 단점 또한 있을 테니까..



by. 라비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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