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LaVidaCoreana Sep 18. 2018

스페인의 벽들은 왜 다 얇은 걸까?

스페인에서 외국인으로 살아가기 #02 층간 소음? 옆집 소음! 

인터넷을 보다 보면 한국에서 층간 소음으로 언쟁이 일어났다거나 혹은 더 나쁜 상황이 발생하기도 했다는 기사들이 종종 올라온다. 한국 아파트에서는 살아본 적이 없어서 어떤지 정확하게는 비교할 수 없지만 스페인의 층간 소음 혹은 옆집 소음이 한국만큼 심했으면 심했지 덜하지는 않을 것 같다. 


스페인에 와서 마드리드에 완전히 정착하기 전까지 거의 1년에 한 번 꼴로 이사를 했다. 그리고 그 모든 집들에서 공통적으로 느낀 게 옆집이 우리 집 같고 우리 집이 옆집 같다는 것이었다. 아주 얇은 벽을 사이에 두고 동거 아닌 동거를 하는 느낌이랄까... 그래서 오늘은 내가 혹은 내 지인들이 겪은 스페인 층간, 옆집 소음 이야기를 간단히 적어볼까 한다.


난 당신들의 사생활이 궁금하지 않아!


스페인에는 오래된 건물들이 많다. 길게는 백 년이 넘은 역사적인 건물들부터 짧게는 몇십 년 된 건물들까지! 그래서인지 리모델링을 해서 내부는 깔끔하지만 건물이 새 건물인 경우는 거의 없다. 예전에 내가 살던 곳도 1980년대에 지어진 아파트였는데 거짓말 조금 보태서 옆집에서 티브이를 보면 바로 옆에서 보는 것처럼 생생하게 들렸다. 


그리고 어떤 날은 옆집 노부부가 부부싸움을 하는 소리가 생중계하듯이 들렸다. 본의 아니게 할아버지가 바람을 피운 것과 할머니가 그 여자에게 연락하겠다고 소리소리 지르는 사랑과 전쟁 스페인 버전을 라디오 중계처럼 생생하게 듣게 되었다. 제발... 나는 당신들의 티브이 프로그램도 부부사도 궁금하지 않아! 그만큼 스페인의 벽은 얇고 방음이라는 것은 다른 세상 이야기이다. 


벽에 난 구멍 두 개! 밤 사이 내 집 벽에 무슨 짓을 한 거니?


언젠가 주말에 옆집이 매우 시끄러웠다. 무슨 잔치를 하는 것인지 하루 종일 노래를 틀어놓고 사람들이 오갔다. 원래도 조용하지는 않은 집이었지만 그 날은 그 강도가 좀 심했다. 월요일 출근을 위해 일찍 잠자리에 들었는데 이날은 음악 소리와 함께 드릴 소리까지 들리기 시작했다. 옆집으로 가서 한소리 하나 마나를 고민하다가 결국 귀마개를 하고 잠들었다. 


그리고 다음날 아침 출근을 위해 거실로 나가다가 깜짝 놀랐다. 벽에 선명하게 얇은 구멍이 두 개 나있고 그 사이로 빛이 들어오고 있었다. 잠이 덜 깨서 잘못 본 줄 알았다. 

하지만 가까이 가서 보니 선명한 드릴 구멍 두 개였고 바닥에는 부서진 벽에서 나온 잔해들이 있었다. 벽이 얼마나 얇으면 드릴로 구멍이 뚫릴까! 그리고 옆집은 도대체 뭔 짓을 했길래 남의 집에 구멍날 때까지 드릴 질을 한 것일까!! 결국 각 집의 주인들에게 연락을 하고 보험사를 부른 뒤 해결은 됐지만 거실 벽에 구멍 두 개라니! 충격이었다.


콘센트 사이로 흘러들어오는 옆 집 향기


예전에 스페인어 수업 중 친구 한 명이 자기 집이 이상하다면서 이야기를 시작했다. 자기와 남편 모두 담배를 피우지 않는데 집에 자꾸 담배 냄새가 난다는 것이었다. 누가 집에 몰래 들어오나, 아니면 원래 배어 있던 냄새인가를 심각하게 고민했는데 어잿밤 그 의문이 풀렸다는 것이었다. 


범인은 다름 아닌 옆집! 하지만 한국 아파트처럼 베란다를 통해서 옆집이나 아랫집의 담배 연기가 들어오는 것이 아니라 옆집과 맞닿은 벽에 있는 콘센트를 통해서 담배 연기가 들어오고 있었다고 한다. 벽이 얼마나 얇게 되어 있으면 벽의 콘센트를 통해 담배 연기가 들어올 수 있을까? 옆 집에 뭐라고 항의할 수 있는 것이 아니라서 어쩔 수 없이 그 콘센트를 막았더니 담배 냄새가 좀 덜하다고 했다. 경악과 놀람을 동시에 준 웃픈 사건이었다. 


한 번만 더 그러면 경찰 부를 거야...


내가 살고 있는 연립 아파트(?)는 나이 드신 분들이 많이 살아서 비교적 조용한 편이다. 다만 옆 집에 사는 아줌마의 망나니 아들만 빼고... 때론 술 먹고 돼지 멱따는 소리로 노래를 부르기도 하고, 어쩔 때는 집안의 집기들을 부수는 소리가 들리기도 한다. 어떤 새벽엔 모든 집의 초인종들을 문을 열어 줄 때까지 누르기도 한다. 하지만 누구도 불평하거나 신고하지 않는 것이 이상했다. 


'내가 많이 예민한 건가?'라고 생각할 때쯤 왜 그런지를 알았다. 이웃의 절반 정도는 나이 드신 분들이라 소리에 민감하지 않으시고, 다른 잘 들리는 이웃들은 망나니 아들의 행동이 무서워서 말을 하지 않으시는 것이었다.(반장 할아버지의 말에 따르면 소음과 기물 파손에 대해 이야기하는 할아버지에게 가만 안 두겠다고 협박도 했다고 한다. 왜 신고하지 않느냐고 물으니 해도 변하는 건 없다고... 하긴 경찰도 주의만 주고 돌아가니까...) 혼자 살고 있는 나는 옆집에서 소음이 들릴 때마다 참을 인을 새기며 다짐한다. 한 번만 더 그러면 경찰에 정말 신고할꺼라고...


술 먹었으면 집으로 곱게 돌아가... 제발...


지인 중 한 사람은 바르셀로나 완전 중심가이자 바가 많은 곳에 산다. 가끔 그 집에 놀러 가서 자게 되면 주말 새벽에는 다양한 취객들의 고성을 들으면서 깬다. 중심가에는 더더욱 오래된 옛날 집들이 잘 보존되어 있고 그래서 이중창이 잘 되어 있는 집들은 흔하지 않다. 그 말은 방음은 기대할 수 없다는 말이 된다. 그래서 중심가에 살면 본의 아니게 주말 아침형 인간이 되고, 여행객들도 많기에 각 나라별 취객들의 주정 형태를 다 경험할 수 있다.  


나는 아직까지 방음이 철저하게 잘 되어있는 스페인 집에서 살아보지 못했다. 아마 어딘가에는 방음이 잘 된 집도 있겠지만 아직 살아보지 못한 내 경험을 바탕으로 말하자면 스페인의 층간 소음, 옆집 소음이 엄청 심하다 가끔은 욕이 절로 나올 정도로. 하지만 그런 것에 비해서는 소음으로 인한 불상사가 많이 일어나지 않는다. 뉴스를 통해서도 주변에서도 본 적이 거의 없다. 그건 아마도 이 나라 사람들이 많이 너그럽기 때문이라기 보단 한국보다 스트레스가 덜한 상황에서 살아가고 있고 그래서 같은 소음이지만 많이 예민하게 느끼지 않는 건 아니까라는 생각을 해본다. 


by. 라비코

이전 06화 피소 꼼빠르띠도, 남과 같이 산다는 것.
brunch book
$magazine.title

현재 글은 이 브런치북에
소속되어 있습니다.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