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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예나네 Apr 22. 2023

실을 걸어 삶을 뜨다


인생은 균형이다.


오늘 새벽까지 42개의 큰 꽃을 뜨다가, 오후부터는 작은 꽃 56개를 시작한다. 동일한 크기의 동그라미 에다 뜨기 16개로 8 뭉치 꽃술을 넣는 일과, 24개로 12 뭉치 꽃술을 축조하는 작업은 확연히 다르다. 첫 꽃잎을 12개로 시작하는 겹꽃보다, 8개로 출발하는 홑꽃 뜨기가 월등히 수월하다.  와중에 실과 손은 제 각도를 온전히 유지하지 못한다. 실이 엉키는 건, 길 가다 어지는 사고와 같다. 넘어지지 않기 위하여는, 실과 손 사이의 각도는 물론, 서로 간의 힘의 균형과 거리조준이 온전해야 한다. 넘치거나 모자람이 없어야 된다. 그래 선이 면이 된다.




인생은 망각이다.


1년 동안 꽃을 번갈아 뜨고 있는데, 다른 꽃으로 넘어갈 때마다 이전에 떠 둔 패턴을 다시 들여다봐야 한다. 치와 뭉치 사이에 한코를 떴는지 두코를 떴는지 아리송하다. 눈을 크게 뜨고 마음을 다하여 코를 세밀히 들여다보고, 수를 정밀히 세어야 한다. 언제 즈음이면, 후루룩 넘기는 식은 죽 먹듯, 꽃의 패턴을 내 몸에다 정확히 새기게 될까. 혼자서 후루룩 뜰 수 있을까. 아직은 기억을 잠깐 놓쳤다가, 실에 코를 걸듯 기억을 뇌관에 다시 걸고 뜬다. 리고 내 코를 싱긋하며, 바늘에 걸린 코를 보고 혼자 웃는다.



인생은 통증이다.


웃음으로 시작한 뜨개질도, 지속하다 보면 통증이 온다. 오래전부터 지병인 오른쪽 어깨와 팔이 콕콕 쑤시기 시작한다. 몸속에도 군중심리가 작동되는지, 눈이 어깨를 따라서 시리고, 곧이어 허리가 아프기 시작한다. 그럴 때마다 뇌가 꼼수를 부린다. 오른쪽 팔을 최대한 오른쪽 옆구리에다 바짝 붙인 채 뜨개질을 하도록, 팔에게 명령한다. 그러면 팔이 움직이는 동선이 줄면서 통증도 줄어든다. 드라이 한 눈에는, 눈을 감은 후 아이 미스트를 3회씩 뿌려서 눈을 몇 번 깜빡거린다. 허리 뒤에는 곡물이 든, 다소 딱딱한 베개를 받추면 된다. 그러고 보니 역시, 통증엔 뇌다.




인생은 위로이다.


아이유는 세금을 얼마나 낼까. 누가 내게 이렇게 물었다. 엄청 많이 내겠지. 세금도 많이 내고 자선도 많이 한다 하대. 돈이 많아도 엄청 많은데, 자선도 해야지. 혼자 갖고 있음 뭐 해. 흘려보내야지. 죽을 때 갖고 가는 것도 아니고. 그러다 사기당하면 말짱 도묵이여.(다행히 이 말은 혼자 삼켰다.)  이 말을 하기 전에 그녀가 되받아친다. 그럼 너도 안 쓰는 돈 자선하지 왜. 아, 다행이다. 이불 뜨개질이라도 해서 누군가에게 자선?을 베니, 나 스스로에게도 위로가 다. 아이유까지는 안되더라도, 작은 일이라도 하여서 천만다행이다. 이 일은 내 생애 닿는 데까지 멈추지 말기를 빌었다. 


스스로 위로하기 위하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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