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번엔 분홍색 털실을 골랐다.
꽃이불을 뜨고 남은 실이다. 공간을 채울 때 큰 것부터 넣고 소소한 걸로 나머지 터를 채우듯이, 털실을 고르는 일도 마찬가지다. 커다란 뭉치의 이불을 먼저 뜨고 남은 자투리 실로 소품인 모자와 머플러를 짠다. '뜨개질'을 사전에 검색해 보면 "털실이나 실 따위를 얽고 짜서 옷, 장갑 따위를 만드는 일"이라 나온다. 그 실을 얽어서 짜다보면 맞춰야 할 게 많다. 인생처럼.
먼저, 코바늘 크기와 실의 굵기를 맞춘다. 이 모자패턴은 처음 22코로 시작한다. 코를 잡을 때는 4 mm 코바늘을 사용한다. 그 한 줄만을 뜨고 다음 선부터는 3mm짜리 코로 바꾼다. 큰 코에 작은 바늘이 잘 먹혀들어가면서 보다 더 촘촘하고 가지런한 편물로 짜기 위해서다.
두 번째, 코바늘과 실과 손이 의기투합한다. 나의 3mm짜리 이 바늘은 가끔 실 한가닥을 놓치는, 칠칠치 못한 성질머리를 갖고 있다. 그건 뜨는 사람의 손이 차분하게 정리하여야 한다. 게으른 이 바늘을 좀 더 눕혀서 잡고, 서로 얼굴을 마주 보듯이, 코를 내쪽으로 향하도록 돌려서 뜬다. 코바늘과 편물의 각도를 180으로 하여 손을 가볍고 날렵하게 움직일 때 실도 손과 비트를 맞추듯이 매끄럽게 잘 딸려온다.
셋째, 손이 어미처럼 인내를 감당한다. 이 코바늘은 불현듯 고집불통으로 돌변하는 아기처럼, 실을 뒤엉키게 하며 특별한 관심을 유발한다. 그때는 아이 달래듯 두 손, 아니 온 신경이 합심하고 온마음을 초집중하여 코가 가지런해지도록 엉킴을 풀고, 다음 코부터는 다시 엉킬지도 모를 코를 살살살 달래 가며 떠야 한다. 코가 지독히도 쎈 코바늘의 성질머리를 맞춰가며 실을 가볍게 당겨가면서, 날실과 씨실을 한 코씩 차례차례 인내하며 차분하게 짜나가는 수밖에 없다.
넷째, 색상을 상의하고 소품의 길이를 재단한다. 이번에 뜬 모자와 머플러는 블랭킷 바디스 교실의 미리암할머니와 상의했다. 어두운 브라운 색 모자에다 하늘색 폼폼을 달면 어떨지 그녀에게 물어보았다. 할머니는 동일 아이템인 자신이 뜬 편물을 꺼내보여 주면서, 이리저리 맞춰본 후 좋다고 하셨다. 옆자리 리자할머니도 베리나이스라 했다. 덤으로 머플러의 너비와 길이까지 어드바이스해 주셨다. 브라운 14칸에 하늘색 3칸을 떠서 총 17라인을 맞춰서 뜨라 하였다.
소소한 뜨개질도 서로 맞출 게 많다. 하물며 사람의 일은 어떤가. 하나의 점인 양, 따로 서 있던 한 사람과 또 다른 한 사람이 만나서, 두 사람으로 선을 이루고, 네 사람으로 면적을 만들고, 수많은 사람이 어우러져 서로서로의 사연으로 공간을 채워 부피를 이룩하기 위해서는 또, 얼마나 한 삶의 보푸라기와 톱니를 맞춰야 하는가.
풀고, 매듭 지우고, 의견을 듣고, 색상을 조합하고, 길이와 너비를 재고, 코바늘을 달래가며 오늘도 난, 시지프스처럼 털실을 코바늘에 걸어 모자와 머플러를 뜬다. 털실을 빌어 인생의 한 단면을 짠다.
내가 짜는 편물들이 어떤 사람에게로 가서 어느 옷들과 짝을 이루게 될지 궁금하다. 이왕이면 가난하나 성실하고 선한 사람에게 가면 좋겠다. 또 지금 뜨는 분홍털실이 어떤 모자가 될지 기대된다. 추운 사람을 따스하게 보듬어주면 좋겠다. 더불어 남은 내 생의 자투리 판은 또 어떻게 짜이게 될지 상상해 본다. 맞추고 조절하여 짜여지는 모든 생의 판이 다 존귀하고 아름답다.